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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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본문: 시편 66:8-20; 요한복음 14:15-21

설교: 홍정호 목사 (2020.5.17. 부활절 제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의 말씀도 요한복음 14장의 예수님의 고별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곧 떠나신다는 사실에 길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제자들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곧 아버지께로 가시지만, 성령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요, 그분과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그분과 계속 만나고, 그분과 영원히 동행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는 알겠는데, 성령은 무엇인가요,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성령은 숨입니다. 살아있는 존재의 숨결과도 같은 분이 성령이십니다. 육신의 생명이 들숨과 날숨을 통해 지속되는 것처럼, 성령은 신앙인의 생명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숨결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들숨과 날숨의 호흡으로 충만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숨 쉬지 않으면 살아있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신앙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된 모든 이들 가운데는 이미 생명의 숨결이신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성령이 이렇듯 숨결과도 같은 존재이시면,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성령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보게 하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보혜사의 역할을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계신 그분을 눈으로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을 따르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길을 모르면 여쭈면 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을 보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 안 계신 분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그분을 따르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시는 분이 안 계시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스스로 고민하며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렇듯 눈으로 뵙던 육신의 예수님이 눈앞에 안 계신 상황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일컬어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의 영을 채우면,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항상 체감하며 살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에는, 일상의 구조가 탈()영적이기 때문입니다. 영성과 감성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만, 구분을 지어보자면 영성은 확실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가까운 영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직업적으로 감성이 요구되는 분야도 있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감성은, 배제되어야 할, 사적인 영역에 치우친 감정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영성, 혹은 영적인 감각은, 일상의 다른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회활동에 있어서조차 부차적인 역할로 여겨지곤 합니다. 예컨대 제가 기도를 많이 하는데, 행정에서 중요한 실수를 반복한다거나, 기도하다 환상을 보고 병을 고치고 하는데, 셈이 흐려 교회재정을 주머닛돈처럼 생각한다거나 한다면, 결코 좋은 목회, 바람직한 목회를 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경우에 기도 많이 하는 게 아무런 덕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기도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정직하고 깨끗하게 행정 처리하는 훈련을 받는 게 더 나은 일이 될 겁니다. 성령에 충만하다는 것이 이렇듯 합리성이 배제된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2.

 

여러분은 지금 숨 쉬고 계신 것을 느끼고 계십니까? 정신을 호흡에 집중해야만, ‘,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의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없을 때도 숨을 쉽니다.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은 숨 쉬고 있다는 느낌 없이 숨을 쉬고 살아갑니다. 태어나서 지금껏 그렇게 하셨습니다. 호흡은,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지속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전 3:16)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느끼지 못할 때에도,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로 영적인 생명을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선언입니다. 빛이 우리 안에 계신데, 여전히 어두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빛을 가리고 있어서입니다.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데, 여전히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을 드러내십시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빛으로 우리를 밝혀야 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그분 안에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우리도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신 일을 하는 사람들, 성령에 이끌려 주님의 일을 자기의 일로 여기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예수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시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억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에 집중하고, 성령이 활동하시게 하고, 성령을 따라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3.

 

성령이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감각적인 에로스도 아니고, 신뢰와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도 아닙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행하는 자발적인 의지와 자유가 결합된 사랑입니다. 대중가요를 들어보면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들이 많습니다만, 헬라적 구분에 따른다면 이런 사랑은 대체로 에로스적입니다. 누군가에 끌려서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 끌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유명 대사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요?” 에로스가 사랑의 전부라면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에로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신뢰와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도 있고, 복음이 말하는 아가페는, 이 필리아조차 넘어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반한 의지적 사랑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아가페 사랑은, 에로스처럼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고, 필리아처럼 서로 신뢰하고 우정을 쌓을 만한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가페는 내 감정이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반한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성령은 이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도록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끌리는 사람에게 반응하고, 믿을 만한 사람과 신뢰와 우정을 나누는 것은 귀하고 좋은 일이지만, 이것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모두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좀처럼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끌리지도 않고, 신뢰할 만한 대상도 아닌데 도대체 왜 사랑해야 하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값없이 사랑하셨기에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돌려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배신을 당하더라도, 지금 주어야 할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말씀하신 이유입니다.

 

4.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시더라도 계속 그분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안에 행하며, 그분의 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일은 무엇입니까?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끌리는 사람과의 사랑, 신뢰를 나눌 만한 사람과의 우정도 귀합니다만,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조건을 따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고, 우리도 성령과 더불어 그 길을 따름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성령 안에 거하며,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주님의 신비와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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