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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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영접하는 삶

 

본문: 창세기 22:1-14; 마태복음 10:40-42

설교: 홍정호 목사 (2020.6.28. 성령강림 후 제4, 순교자기념주일)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이며,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순교자기념주일에 함께 읽은 오늘의 두 본문 창세기와 마태복음은, 모두 순종과 순종하는 사람이 받는 복을 주제로 합니다.

 

앞선 창세기 본문은, 약속으로 주신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고뇌하고 갈등하면서도, 결국 순종을 택한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고난 끝에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을, 그것도 언약의 증거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아들을 하루아침에 바치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아브라함은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순종을 택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22:16-18)

 

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이 받을 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의인을 의인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그들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난 주 나눈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당할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악령을 제어할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만나게 될 박해의 상황 가운데에서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순진해져라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어려운 상황과 만나게 되겠지만, 그때에 두려움을 이기고,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오늘 예수님은, 복음의 증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시는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10:40) 복음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뜻을 대신하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합니다. 일종의 사신(使臣)과 같습니다. 사신은 누구인가요? 사신은 임금이나 국가의 명령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나가는 신하입니다. 다시 말해, 사신은 자기의 뜻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임금의 뜻, 국가의 뜻을 충실히 전달해야 할 의무를 맡은 이입니다. 사신은, 임금과 국가의 뜻을 올바로 전해야 할 것을 사명을 안고 있으며, 그 사명으로 인해 파견되는 나라에서 환대를 받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개인보다는 맡은 바 사명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인격과 학식을 갖춘 사신이라 하더라도 임금과 국가의 뜻을 왜곡해서 전달한다면, 그는 좋은 사신이 아닙니다.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흠이 많다 해도, 임금의 뜻을 가감 없이, 분명히 전달하는 사신이라면, 그는 좋은 사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신은 개인이 앞서지 않고, 공적 직무가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 그분의 제자들이란 요구하신 충실함이란, 이런 복음의 사신으로서의 충실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체로 배움이 많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에 속한 이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이 제자들에게 들을 말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달랐던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데 있어 그들은 말씀을 맡은 자로, 말씀을 맡은 자답게 살아가고자 힘썼습니다. 임금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의 뜻을 펼치고, 사리사욕 채우기에 눈 먼 사신이 아니라, 신자들의 임금이신 예수님의 뜻, 그리고 신자들의 국가인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는 교회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충실한 사신으로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향해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맡은바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하도록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3.

 

이 본문은 열두 제자를 향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분의 뜻 안에서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모든 신자인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갈등과 분열과 혐오를 부추기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들은 실상 미움을 전하고, 세상에 어떤 이들에게 느끼는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합니다. 말씀을 맡은 좋은 사신의 태도가 아닙니다.

 

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이 전하는 화해와 용서, 자비와 사랑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애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세상의 거친 시선과 마주하기 일쑤입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 자신도 지키지 못할 말들을 한다, 홀로 의인 행세를 한다는 등 냉대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속의 질서를 거슬러 복음의 길을 선포하고 따른다는 것은, 신자로 부름받은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이렇다 보니 세속의 지혜를 따르고, 복음의 길에서 뒷걸음질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이 우리 삶에 녹아들 때까지 배워 익히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가 아니라,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를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예배를 집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이가 누구냐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 성수는 이러한 복음적인 삶의 태도가 우리 삶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긴 과정입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모태신앙이 중요하고, 대를 이어 신앙의 가문에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도, 말씀이 긴 시간 동안 우리 삶에 쌓이고, 그 쌓인 말씀이 열매를 맺어 복음의 결실을 거둘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말씀이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되고,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떠나지는 마십시오. 교회 가까이에 계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말씀의 씨앗이 자라 열매 맺을 날이 올 것입니다. 복음의 길이 어느덧 우리 삶의 길이 될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이러한 삶의 태도에 모범이 되는 분들입니다. 세상에 존경할 만한 의사(義士)도 있고, 열사(烈士)도 있습니다.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타인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의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숭고함을 느낍니다. 순교자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입니다. 그들이 우리에 앞서 피를 뿌렸기 때문에 오늘의 교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순교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복음적 삶과 거리가 먼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면서 순교자 운운하는 이들이 우리 개신교 주변에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순교자는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을 택하고,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용서를 택한 결과 멸시와 핍박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적합한 이름입니다.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 펼치며 예수님과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이름이 아닙니다.

 

4.

 

예수님은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활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배울 때가 많습니다. 경험으로나 지식으로나 어른이 아이에 비할 바 아니지만, 아이들의 말이 우리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을 우리는 때때로 합니다. 만약 아이의 말이 아니라, 말하는 아이를 생각한다면 이런 깨달음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말에 주목할 때 우리는 어른으로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삶의 새로운 지평과 만납니다.

 

교우 여러분, 말씀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우리 삶에 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로서 저의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설교를 잘 하는 목사, 좋은 말 하는 목사로 기억되기보다는 복음의 전달자로서 충실한 목사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되도록 드러나지 않고, 복음이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나 듣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서로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며, 함께 복음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맞이하며, 주님을 영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목소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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