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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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믿음

 

본문: 출애굽기 17:1-7; 마태복음 21:28-32

설교: 홍정호 목사 (2020.9.27. 성령강림 후 제17)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맏아들은 대답하기를 싫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 가겠습니다, 아버지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옳은 길을 보여 주었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았으며,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열 일곱 번째 주일입니다. 9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1장의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응답하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청중들에게, 특별히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그분을 옭아맬 명분을 찾고 있던 불의한 이들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이 본문은,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하며 끝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21:31c) 예수님은 누구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습니다. 오늘의 본문 앞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행하신 몇 편의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제물을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 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24:12-13) 이 사건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인상과 질문을 남겼습니다. 둘째는,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입니다.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가 잎사귀 밖에 없는 것을 보시고는,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21:19b)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21:22)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시던 중 그분은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의 주인 노릇을 하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와서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는지물었습니다. 불청객이 성전에 들어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품격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활동을 점잖게 제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질문한 이들이 바란 것은, 응답이 아니라,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당장 나가시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질문은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과 달리, 성전에서 나가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과 설전을 벌이시는 중에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하고 질문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시는 대신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21:28a) 하는 질문을 던지신 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맏아들은, ‘싫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말씀 불순종한 것입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 가겠습니다, 아버지하고 대답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의 대답과 상반됩니다. ‘싫습니다대답한 큰 아들은, 그 뒤에 뉘우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일하러 갔고, ‘, 알겠습니다, 아버지대답했던 작은 아들은, 대답만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끝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님께서 하신 질문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아버지의 말씀에 잘 대답하였느냐?” 혹은 누가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드렸느냐?”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대답이 어떠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였는지, 누가 참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사람인지를 묻고 계시는 겁니다.

 

처음에 싫습니다하고 대답한 아들은 솔직하고 올곧습니다. 포도원을 주인인 아버지의 뜻을 정면으로 어기면 어떤 불이익이 따르겠습니까? 미움 받겠지요? 미움으로 그칠까요? 나중에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데도 불이익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데 어떤 불이익이 따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닙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정직하고 용기 있는 아들입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어떻습니까? 꾀가 많아 보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적당히 눈앞에서 위기를 모면하고, 나중 문제는 나중 가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입니다. 그는 결국 포도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눈앞에서는 순종하는 아들이지만, 결국 아버지의 포도원을 망치는 아들입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님은 이 두 아들의 비유 끝에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3.

 

예수님은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맏아들과 같은 이들을 아끼셨습니다. 말과 행실이 때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정직하고 올곧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들, 맏아들과 같은 이들을 예수님은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때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대신, ‘싫습니다말합니다. 마음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데 허투루 아멘’, ‘네 그렇습니다하고 값싼 동의를 보내는 대신, ‘싫습니다’, ‘못 믿겠습니다하는 부정적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볼 때 이 맏아들과 같은 이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불순종하는 이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처럼 그들이 언젠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회심의 때를 만난다면, 그들의 정직하고 올곧은 마음은, 복음의 길을 굳건히 걷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한편 둘째 아들과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무슨 말이든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습관이 된 이들입니다. 긍정은 열린 마음의 표시이고, 좋은 것입니다. ‘아멘으로 응답하고, 실행도 한다면,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신자이겠습니다. 그러나 비유 속 둘째 아들처럼 하는 응답은 빠르지만, 실행은 한없이 느린 이들도 있습니다. 긍정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부정해야 할 때 부정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아니오말하면서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 때도 이런저런 조건들을 생각해서 그냥 하고 어물쩍 넘어가 버리게 됩니다. 당장에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싫고, 불편한 관계와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싫어, 마음에도 없는 를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니오를 잊어버린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선 이들, 그분의 뜻을 행하는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하신 세리와 창녀와 같은 이들은 그 시대에 죄인이라 이들의 대명사였습니다. 거룩한 율법에 대하여, 율법이 가르쳐 준 삶의 길에 대하여 그들은 싫습니다하고 말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꾼으로 다시 세우셨습니다. 삭개오가 그러했고, 예수님을 만난 어떤 여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싫습니다하는 부정에서 출발했지만, 예수님을 만나 종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삶으로 나갔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아니오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 그것이 은총 가운데 거듭난 삶입니다.

 

반면, 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율법에 대해 싫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율법을 수호하고, 율법의 길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하고 말하지만, 그것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신뢰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종교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율법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맡겨진 일에 충성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겉보기에는 충성스러우나, 정작 그 안에 들어 차 있어야 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린 이들을 향해 세리와 창녀들이 오히려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어떤 자녀입니까? 처음에는 싫습니다하고 말했지만, 돌이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녀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 알겠습니다, 아버지했으나, 끝끝내 포도원에 가지 않은 자녀입니까? 하나님은 진실한 믿음으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믿지 못할 것을 믿으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고, 하지 못할 일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진실한 응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시며, 우리를 향해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지금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는 대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할 때와 아니오할 때를 분별하고, 진실한 행동, 행동하는 믿음으로 우리의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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