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맡은 자의 본분

 

본문: 5:1-7; 21:33-46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0.4. 성령강림 후 제18, 세계성찬주일)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보아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다.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하였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다. ‘이 사람이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의 예수께 말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채고,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무리가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코로나 이후 매월 두 차례씩 거행하던 성찬식을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흩어진 세계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성찬을 나눔으로써 주님의 한 몸임을 고백하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무시고, 화해와 구원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성찬에 참여함으로 화해의 성사(聖事)가 되고자 하는 고백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성찬에 담긴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핵심은, “자신을 내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일평생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앞에 당신을 내려놓고 비워내시는 겸손한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겸손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일상화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의 이 수동성을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능동적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적으로 행동하면서, 내 자유, 내 권리, 내 세계를 더 넓게 확장해야한다는 시대의 에토스(ethos)가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칭송하는 시대 문화와 관습 속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화해와 구원의 메시지를 불편하게 여기는 까닭은, 십자가의 본질이 주체성이 아닌 수동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고, 나는 겸손히 그분의 뜻을 받드는 수동적 주체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십자가 속에 담긴 신앙의 의미입니다. 성찬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종이 되셔서 당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분의 살과 피를 우리 안에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도 그분처럼 겸손한 종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성찬을 받는 즉시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솟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싫었던 사람이 일순간에 좋아 보이고, 꼭 움켜쥐었던 손이 한순간에 펼쳐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우리 가운데 모셔도, 우리는 그대로입니다. 보기 싫은 사람은 여전히 보기 싫고요, 하기 싫은 일은 여전히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할 힘을 얻습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인생을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끌어가는 큰 변화입니다.

 

사랑하기 싫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성찬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합니다. 사랑을 실천할 힘을 얻습니다.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은 성찬을 받기 전이나 후나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렇게 할 힘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종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살기로 다짐했고, 내가 따르기로 한 그분께서 사랑하라, 나누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랑하고, 나누라 하셨으니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된 이의 본분입니다. 성찬은 그렇게 조금씩 우리를 주님의 종으로 바꿔 나갑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중심의 삶으로, 우리의 안목과 경험을 바꿔나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서의 삶, 맡은 자의 본분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에 이어 또 하나의 비유를 들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과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어떤 집주인이 멀리 떠나기 전 자신의 포도원을 일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어 가꾸게 했습니다. 돌아와 열매를 거두어들일 생각이었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포도원을 맡긴 농부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출을 받으러 간 주인의 종들을 소작농들이 때리고 죽여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더 많은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못된 짓을 했습니다. 설마 내 아들한테까지 그럴까 싶어 이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하면서 그를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 비유를 하신 끝에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열매 맺어야 할 책임을 맡은 이들의 나태함과 타락에 경종을 울리셨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은, 좁은 의미로는, 성전과 율법을 뜻하고, 넒은 의미로는, 우리의 일상을 뜻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대제사장과 장로의 직임을 맡기셨을 때는 그분의 뜻을 이 땅 가운데 펼치고,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포도원에 열린 것은 향기롭고 탐스러운 포도가 아닌 사람들이 먹을 수 없는 들포도 뿐이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자비, 공의를 펼치라고 당신의 종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직무를 맡기셨지만, 하나님께서 거두신 것은 참포도가 아닌 들포도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앞서 예언자들을 죽였고, 이제는 아들이신 예수님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정확히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앞서 봉독한 이사야서 5장에도 포도원의 노래가 나옵니다, 어떤 이가 포도원의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망대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포도원을 뒤엎고 담을 허물어 그곳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5:7b)

 

3.

 

주인의 종들을 죽이고, 주인의 아들마저 죽여버린 악한 농부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그 밭은 자기의 밭이 아니고, 주인이 잠시 맡긴 주인의 밭이었으나, 주인이 멀리 떠나 있는 동안 그들 속에는 욕심이 자라났습니다. 주인은 언제 올지 모르고, 지금 이 밭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니, 이 밭을 내 밭으로 삼아야겠다, 그들은, 주인의 밭은 사유하기로 했습니다. 주인의 밭은 실은 모든 이를 위한 밭입니다.

 

이 비유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면, 주인의 뜻은 포도원을 경작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먼저 온 일꾼이나 늦게 온 일꾼들이나 똑같은 임금을 주었던 주인의 뜻은, 포도원을 통해 모두가 함께 일하고, 모두가 함께 보람의 결실을 거두는 데 있습니다. 말하자면, 포도원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그분의 공의가 펼쳐지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일찍 올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장소가 바로 예수님의 비유 속 포도원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을 맡은 이들은 이러한 주인의 뜻을 저버리고, 그곳을 사유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이 어긋나려고 하자, 주인의 종들도 죽이고, 심지어 아들마저 죽이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포도원 그 밭은 맡은 이들의 사유화 대상이 아니라, 날로 풍성해져 더 많은 열매, 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장소입니다. 그래야 그 수확물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포도원을 맡은 이들의 보람이요, 그들의 할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맡은 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포도원의 주인 노릇을 할까, 어떻게 하면 지금 주인 노릇하고 있는 이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궁리에만 골몰하는 동안 포도원에 맺혀야 할 참포도는 보이지 않고, 들포도만 무성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은 그런 종을 악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교회를 통해 펼쳐져야 할 주님의 선하신 뜻이 펼쳐지는 대신 적대와 미움이 펼쳐지는 장소를 주님은 들포도뿐인 포도원이라고 하시고, 그 맡은 이들을 악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4.

 

세계성찬주일을 맞아, 온 세상에 흩어진 주님의 교회가 십자가의 화해와 일치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주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장소로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인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 흩어진 교회들에는 어떤 열매가 맺혀 있습니까? 특별히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안에서 참포도가 풍성히 맺혀야 할 주님의 교회들에는 어떤 열매들이 맺혀 있습니까? 사람들이 교회 담장 안에서 들어와 포도의 향기에 매혹되고, 그 열매로 인해 행복해지는 그런 포도원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맺혀야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뿐인 포도원이 되어 있습니까? 오늘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의 말씀처럼 우리의 교회가 없어져 버릴 포도원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우리 교회의 민낯이 교회 밖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교회의 이기심과 욕심, 이웃사랑은커녕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릇된 모습에 사람들은 교회라면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억울하다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 줄 압니다. 말하고 탓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교회에 모든 탓을 돌린다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겸손히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참포도를 맺으라 세워주신 포도원에 들포도만 열려있는 것은 아닌지, 더불어 풍성한 삶을 힘써 이루어야 할 교회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욕심으로 인해 망가져 버린 것은 아닌지, 회개하며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가 주님의 한 몸임을 고백하는 오늘, 우리의 교회가 무너진 포도원의 담장을 다시 세우고, 들포도가 맺힌 나무를 잘라내, 주님이 기뻐하시는 포도원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일을 위해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귀한 포도원을 맡은 일꾼으로써, 주님의 뜻 받들어 충성스러운 종으로 살아가는 저아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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