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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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이정표

 

본문: 출애굽기 33:12-23; 데살로니가전서 1:1-1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0.18. 성령강림 후 제20)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두루 퍼졌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영접했는지,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그 아들 곧 장차 내릴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기를 기다리는지를, 그들은 말합니다. ]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입니다. 오늘로 성령강림 후 스무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올 한 해 신앙의 여정도 한 달 남짓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와 신자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있는 이때에, 남은 올 한 해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에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말씀입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는, 보존되어 있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신약성서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글입니다. 이 편지는 주후 50년경에 쓰인 글로서, 주후 70년경 기록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보다도 약 20년 앞서 기록되었습니다. 집필 연대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범을 살펴볼 수 있고, 신자로서의 삶에 바르고 참된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는 오늘날 그리스 북부의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의 성서적 표기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으로도 널리 알려진 테살로니키는,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문화가 접촉점을 이루는 항구도시입니다. 매년 많은 신자들이 성서의 무대가 되는 이곳을 방문합니다. 우리교회도 몇 년 전부터 성지순례여행을 준비하면서 이스라엘을 다녀올까 바울의 선교지를 따라가 볼까 고민하던 중에 코로나로 진행이 중단된 상태입니다만, 언젠가 우리 교인들이 함께 성서의 배경이 되는 도시들을 여행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아무튼 이곳은 바울이 선교활동을 펼치던 때부터도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도시로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접촉점을 이룬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실루아노(실라)는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 빌립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 일로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 있다 풀려난 후에 데살로니가로 왔습니다. 바로 이때 바울과 실루아노의 전도로 몇몇 유대인들과 그리스사람들이 열매를 맺어 세워진 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였습니다. 다문화가 공존하던 데살로니가답게 문화종교적 배경이 다른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한 몸인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소동이 일어나(17:1-10) 바울 일행은 또다시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베뢰아에서 아테네로 옮겨갔습니다.

 

아테네에 도달한 바울은, 거기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습니다(살전 2:17-3:5). 문화적 배경이 다른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연합하여 세운 교회가 갈등 없이 원만히 성장해 가는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충실히 머물러 있는지 목회적 관찰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명을 받고 데살로니가를 다녀온 디모데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 머물고 있으며, 바울 일행이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데살로니가교인들 역시 바울 일행을 간절히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살전 3:6). 디모데로부터 이 소식을 (말과 글로) 전해 듣고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보낸 편지가 바로 오늘의 본문이자,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글인 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나타난 그곳 교인들의 신앙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혼탁한 이 시대에 교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나게 됩니다. 참된 신자, 참된 교회로서의 나아가야 할 길이, 초대교회의 모범이 된 교회, 모든 신도들의 모범이 된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습니다.

 

2.

 

바울은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하는 인사말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으며,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 일행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떨어져 있지만, 기도 안에서 만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나오며 그곳 신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당장에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바울로서는, 기도 가운데 그들을 떠올리며, 맡겨주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 말 여러분들에게 기도 제목을 제출하시도록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이 적힌 수첩을 보며 아침마다 기도드립니다. 그것은 올 초에 제가 드린 목회적 약속이기도 했고, 목회자로서 제 자신에게 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마침 데살로니가전서의 본문에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하는 바울의 인사를 읽으며, 저는 코로나로 우리 교인들이 서로 흩어져 있는 이때에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만나고 기억하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각 가정의 간절한 기도 제목을 보면, 하나님께서 올해가 가기 전에 이미 기도의 제목대로 다 이루어 주신 가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기도의 제목대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가정도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듯 흩어져 있는 이들을 믿음 안에서 만나게 하고, 하나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있을 수밖에 없는 문화적, 경험적 차이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가 되고, 기도하는 가운데 장벽이 무너지고 더 큰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합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믿음을 통해 세 가지 교회의 이정표를 발견합니다. 특별히 교회가 가야 할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 길을 잃어버린 시대에 다시금 새겨야 할 우리 신자들의 길이요, 교회의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은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믿음의 행위요, 둘째, 사랑의 수고요, 마지막으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첫째, 교회의 첫 번째 이정표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여기에서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신자 각 사람과 그들이 모인 모임, 곧 에클레시아를 일컫습니다. 믿음의 행위란, ‘믿음을 통해 생겨난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예컨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누군가의 행동은,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이웃사랑의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의 행위’, 믿음을 통해 생겨난 행동에 모범이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일반 사회복지단체들과 다른 이유는, 교회의 실천이 믿음에 따른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위해서 선행을 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선한 행동을 하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의 모범은, 이 모든 일들의 바탕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사랑하셔서 크신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우리도 이 믿음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첫 번째 이정표 믿음의 행위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 역시 믿음의 행위와 같은 맥락입니다. 수고하되, 이 수고가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생겨난 수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뜻밖에 영상예배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여러분들이 우리 예배를 위해 계속 수고해 주고 계십니다. 대면예배 때 성가대와 친교실에서, 여선교회에서, 남선교회에서 사랑의 봉사를 하셨는데, 비대면예배가 되면서 새롭게 수고해 주시는 분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주일아침에 만나면 이분들 얼굴이 밝습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예배를 위해서 봉사하는 기쁨 때문에 오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수고란 이런 것입니다. 어떤 보상이 있어서, 혹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하는 수고가 아닙니다. 사랑해서 자처하는 수고입니다. 귀한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수고입니다. 이것이 교회와 신자들의 두 번째 이정표가 됩니다.

 

마지막은, 소망의 인내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루 이틀, 혹은 한 해 두 해 하고 마는 무슨 체험이나 이벤트가 아닙니다. 일평생에 걸쳐 하고, 대를 이어가며 계승해 가야 하는 거대한 정신의 물줄기와 같은 것입니다. 작은 물줄기들이 합쳐지고 또 합쳐지면서 거대한 강이 되고,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은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지헤를 바탕으로 큰 정신의 물줄기를 이루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작게 보면 실패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일들도 있습니다. 교회생활에 회의감을 갖게 되고, 목회자와 교우 관계에서 낙심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우리의 신앙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모두 쌓여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은혜의 강물이 됩니다. 흘러넘치는 은혜의 강물이 됩니다. 이를 믿고, 오늘 맡겨주신 자리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당장에 기도제목이 이루어지지 않고, 당장에 원하는 바가 달성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소망의 인내에 머무는 신앙이 아닙니다. 인내를 통해 소망을 이루는 삶,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본 신앙의 마지막 이정표가 됩니다.

 

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교회의 이정표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가 그것입니다. 함께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주님 안에 한 몸이 된 이들은 기도 가운데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다는 것이 참된 믿음 안에서는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하나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간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우리도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인간적인 한계들을 넘어 더 큰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데살로니가 교회가 소문난 교회가 된 것처럼, 복음 안에서 아름다운 일치를 이루며,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참 교회와 신자들로 성장해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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