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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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믿음

 

본문: 시편 138:1-8; 마태복음 25:14-3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1. 성령강림 후 제22, 추수감사주일)

 

[“또 하늘 나라는 이런 사정과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가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 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난 2월 이후로 계속 비대면 온라인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서, 추수감사절 예배로 모일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모처럼 여러분들의 얼굴을 뵙고 마주하니, 더욱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19라는 불청객으로 올해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가 세워진 이래로 온라인예배도 처음이었고, 오늘처럼 9시와 11시로 나눠서 두 번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배당에 함께 모여 은혜를 나누고, 예배 후에는 서로 웃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친교 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이전과 같은 일상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오늘처럼 때때로 모여서, 우리가 주님 안에 한 몸이 된 사랑의 공동체임을 확인하며, 감사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올 한 해 땀 흘려 얻은 결실을 그분 앞으로 가지고 나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렵고, 살림살이가 위축된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이라,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지 막막한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에도,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껏 수고한 데 대한 결실의 크기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오늘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분의 자비와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사실에 눈 뜨면, 우리는 예언자 하박국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을 기억하시지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하나님의 은총에 눈 뜬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더 큰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생명운동가 장일순 선생님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말씀 하셨습니다. 쌀 한 톨이 익어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씨 뿌리고 돌보는 이의 수고가 있었지만, 그 수고가 무르익을 수 있도록 여러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쌀 한 톨이 익어 밥상에 올라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삶이 하나의 신비라는 사실에 감격하는 사람, 매일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상에 감사하는 사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50:23) 참 예배자요, 참 신앙인입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두고, ‘주님의 믿음이라고 설교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 본문은, 전통적으로 주인이 주신 달란트로 많은 이윤을 남긴 이가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관점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런 해석이 아주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본문에는 이윤을 더 많이 남기는 삶을 칭송하는 자본주의적 독법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여러분과 이 본문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바로 종들에 대한 주인의 믿음에 주목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비슷한 내용을 전하는 누가복음에는 이 어떤 사람의 지위와 정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날 때에”(19:12) 하고 이야기의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이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종들에게 나눠 맡기고 떠나야만 할 만큼 중요한 어떤 일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먼 여정이었습니다.

 

주인은 떠나면서 그간 자신이 봐왔던 종들의 능력에 따라서 각기 다른 달란트를 나눠주었습니다. 마태는, 주인이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능력이란 단순히 재무관리 능력만이 뜻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종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지내는 종들 각 사람이 어떤 면에서 뛰어나고, 또 어떤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각 사람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편견과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공정할 수는 없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공평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는 것이 인간 실존의 자리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완전히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좋은 길로, 그를 인도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이 주인은, 자신의 종들 각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이라면 이만큼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에 대해 같은 똑같은 기준을 들이댄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다른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이것은 차별적 대우라기보다는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된 배려이자 신뢰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상징인 이 주인은 종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으면서 그가 가장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그에게 맡깁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고,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여기에 이 비유의 핵심이 있습니다. 종들이 주인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먼저 종들을 믿고 맡겼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주님을 따른다, 하는 고백에 익숙합니다만, 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믿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각 사람의 능력대로맡기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종의 믿음에 앞서 주님의 믿음이 있었다는 것, 내가 하나님을 믿기에 앞서 그분이 나를 먼저 나를 아시고, 나를 믿고 당신의 일을 맡겨주셨다는 것, 이것이 이 달란트 비유의 핵심입니다.

 

3.

 

문제는 이 주인의 믿음에 대한 종들의 반응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없는 동안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누가복음의 표현대로라면, 이 주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려고 먼 나라로 길을 떠난사람입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습니다. 주인은 왕권을 넘보는 정치적인 위험인물로 현 권력체제에 낙인찍혀 있습니다. 견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위험한 인물이 맡긴 재물을 가지고, 그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와 한 약속을 지키며 충성을 다하고, 재물을 두 배로 불릴 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종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주인의 재산을 성공적으로 불린 것이 되겠습니다만, 심층적으로는 종에 대한 주인의 믿음에 그가 충실히 응답했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를 믿고 나에게 당신의 일을 맡겨주신 주님께 충성을 다해 그 일을 해냈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이렇듯 주인의 믿음에 신실한 실천으로 응답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누려라.” 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종은 결실 대신 변명을 가지고 주인 앞에 섭니다.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장황한 설명을 다 듣고 보니,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이 종에게 벼락같이 화를 냅니다.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는 그가 주인의 재산을 불리지 못했기 때문이겠습니다만, 심층적으로는 그가 한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믿음에 신실함으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아시고, 당신의 일을 맡겨주셨음에도 그는 불신과 원망,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믿음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는 쓸모 없는 종이라 칭함 받았고, “바깥 어두운 데로내쫓김을 당했습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의 한 해 결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종의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서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저나 여러분이 얼마만큼의 달란트를 받은 사람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아시고,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달란트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기에 앞서, 주님이 먼저 나를 아시고, 나를 믿어 주셨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할 수 없을까, 혹은 남들은 다섯 달란트가 있는데 나는 왜 한 달란트 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먼저 믿으시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한 달란트가 사람이 보기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만,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주님의 믿음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이 다섯 달란트이든, 두 달란트이든, 한 달란트이든,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먼저 믿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신 주님의 믿음에 응답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으며,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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