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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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계승

 

본문: 시편 78:1-7; 마태복음 25:1-13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8. 성령강림 후 제23)

 

[내 백성아, 내 교훈을 들으며,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가 입을 열어서 비유로 말하며, 숨겨진 옛 비밀을 밝혀 주겠다. 이것은 우리가 들어서 이미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우리 자손에게 전하여 줄 것이니, 곧 주님의 영광스러운 행적과 능력과 그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미래의 세대에게 전하여 줄 것이다. 주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의 규례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에게 법을 세우실 때에, 자손에게 잘 가르치라고, 우리 조상에게 명하신 것이다. 미래에 태어날 자손에게도 대대로 일러주어, 그들도 그들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전하게 하셨다.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스물세 번째 주일입니다. 2020년의 교회력이 이제 두 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나 온 시간을 돌아보면, 올해 초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상과 달라진 일들이 많겠습니다만, 이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한 은혜를 주시고, 때마다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주시고, 더 많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교회력이 끝날 때쯤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교회력이고, 3년에 한 번씩은 똑같은 교회력 본문을 만납니다만, 복음의 말씀을 대하는 내 자신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늘 새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말씀을 대하는 우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경험이 달라지고, 인식의 지평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4:12)던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기억하실 겁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생물학적 의미는, 지금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지 더딘지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예외 없이 이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생명 역시,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부로 다른 이를 판단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제한하면 안 됩니다. 타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날마다 새날을 맞이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복음의 말씀에 얼마나 더 가까워졌는가, 한 해의 교회력이 끝날 무렵 우리 스스로에게 물으며, 남은 여정을 잘 마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2.

 

오늘은 시편을 본문으로 신앙의 계승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원래는 복음서의 열 처녀의 비유강해를 준비했습니다만, 시편의 아삽의 노래(마스길)’에 눈길이 사로잡혀, 이 말씀을 전해야겠다, 급히 변경했습니다. 늘 미리 준비된 교회력 본문으로 말씀을 준비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오늘은 제가 부흥사가 된 기분으로, 마음에 감동이 오는 본문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력 본문 안에서 택했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아무튼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딱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신앙의 계승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무엇을 다음 세대로 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대답을 저는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대답은 이렇습니다. 신앙의 계승이란,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을 받들어 전하는 것입니다. 끝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신앙의 계승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후대에게 받들어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자부심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본토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라는 자부심, 희망을 하나님에게 둔 채 믿음의 길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라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입니다. 아브라함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수메르 문명권에서도 가장 발달된 도시인 우르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그곳 우르를 떠나 척박한 땅 가나안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안정된 삶의 토대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야 할 시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헤브론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만, 히브리민족의 긴 방랑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그리고 야곱에서 요셉을 포함한 열두 아들로 언약이 계승된 400여 년의 시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헤브론에 정착 이후에는 큰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가야했고, 거기에서 4백여 년간의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모세의 지도로 가까스로 애굽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광야 생활 40년을 만났고, 그렇게 고향에 돌아와서는 다시 아시리아와 바빌론에게 나라를 빼앗겨 포로로 끌려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로마제국하에서는 유대인의 영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디아스포라로 뿔뿔이 흩어진 채 그로부터 2쳔여 년의 세월을 유랑하며 보내야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를 간략히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떠난 이후 약 4년 동안, 히브리인들은 그야말로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우리 조상들은 이런 고난을 당했는지, 잊었어도 벌써 잊었을 긴 시간입니다만, 그 긴 시간 동안 흩어져 살았던 히브리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야훼 신앙의 정체성을 계승할 수 있도록 지켜 준 단 하나의 정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하나님에게 둔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희망을 하나님에게 둔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하는 공통의 자의식이 긴 고난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유대인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 백성의 장로들에게 분노하신 이유는, 이처럼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그들 민족의 지도자들이, 이 하나님 중심의 초점을 완전히 벗어나서 엉뚱한 경험과 관습들을 전통이랍시고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대손손 계승되어야 할 정신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하는 자부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큰 역경과 고난 가운데에도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결국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온 민족의 아버지요, 온 민족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그 믿음입니다.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을 철저하게 익히고, 가르치고, 계승한 덕분에 오늘의 유대민족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하는 자기 허위의식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희망을 두는이 믿음이 빠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의식은, 오히려 율법의 참된 계승을 가로막고,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보셨기에 선생이라 칭함받는 이들과의 갈등도 불사하신 것입니다.

 

아삽은 노래합니다. “그들이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셨다.” 아삽은, 오늘날로 말하면, 다윗왕조의 찬양대장이었습니다(대상 15:16-17; 대상 16:4-5).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담은 언약궤를 왕궁으로 옮길 때에, 언약궤 앞에 서서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리의 지도자가 바로 아삽이었습니다. 아삽의 시는 150편의 시편 가운데 12편이 실려 있습니다(50, 73-83). 언약궤가 가는 길을 앞서 열어가며 하나님을 찬양한 아삽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이스라엘 민족 앞에서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그는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라고 외쳤고, 자손들이 그 일들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손들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미래에 태어날 자손에게도 대대로 일러주어, 그들도 그들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전하게하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하나님 신앙을 계승하고,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는 법을 대대손손 가르쳐왔기에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교육, 문화, 경제 곳곳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면서,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승해 가고 있습니다.

 

3.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의 서두에, 딱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계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이 한 가지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심지어 미래에 태어날 자손에게까지 철저하게 받들어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도 아삽의 시편을 읽으면서,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어야 할까,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경험한 크고 작은 경험들을 자녀에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제가 한 실패들을 반복하지 않도록, 그래서 에둘러가지 않고, 덜 실패하고, 가능하면 탄탄하고 좋은 길로 가도록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산다면,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세월의 지혜를 후대에 전하는 것은, 신앙이 있는 부모나 없는 부모나 똑같이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세월의 지혜를 자녀에게 전하는 데 있어, 바르고 참된 신앙의 길은 때때로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더 빠르고 좋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본질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자녀세대에, 혹은 우리의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바는, 세상의 경험과 지혜가 아니라,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 법입니다.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우리의 일상이 반복되고 반복되면서, 우리 가정의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의 문화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훗날 장성하여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날 때에도,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면서그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나가도록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받들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 신앙 안에 있는 부모된 이들의 자리이며, 신앙을 계승해야 할 우리의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끝으로, 오늘 교회력 본문에는 7절까지로 되어 있습니다만, 8절에 있는 말씀도 함께 읽으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삽은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게하라는 노래 뒤에 다소 충격적인,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조상처럼, 반역하며 고집만 부리는 세대가 되지 말며, 마음이 견고하지 못한 세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대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78:8)

 

유대인들은 4천여 년의 유랑생활 동안 조상들이 잘한 일만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잘못도 잊지 않았으며, 후대에게 가르쳐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때로 말씀의 길을 벗어나 반역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집부리고, 믿음이 견고하지 못해 흔들렸던 지난 일들까지를 모두 기억하고, 언급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잘한 것만 말하고 보여주고 싶지,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 테고, 자기들의 역사를 신화화/신성화하려는 욕망이 모든 민족에게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하나님에게 둔사람은, 그들의 믿음의 조상들 또한 하나님 앞에 연약한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높임 받아야 할 분은, 그들의 조상들이 아니라, 조상들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은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의 잘못까지도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이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하나님에게 두는삶을 지속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삶의 태도가, 그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이며, 삶의 근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삽의 시편을 통해 우리 신앙을 계승한다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희망을 두는 삶의 태도가 우리의 일상이 되고, 우리 가정의 문화가 되어,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널리 전파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가문이 교회의 기둥이 되어, 순종과 열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길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가운데,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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