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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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낮추는 사람

 

본문: 시편 107:1-7; 마태복음 23:1-12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15. 성령강림 후 제24)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에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스물네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교회력이 이제 한 주 남았습니다.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이자 왕국주일인 다음 주일이 지나면, 우리는 대림절로 시작되는 2021년의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 해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올해 어려운 일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넉넉한 은혜에 감사하며, 남은 신앙의 여정을 잘 마무리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오늘의 복음은 마태복음 23장의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꾸짖으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를 높이는 위선을 피하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길을 살펴보고,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을 되새겨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위선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모세의 자리라는 곳이 실제로 성전이나 회당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이 유대 사회에서 모세만큼 존경받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빚으신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예수님이 그들을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당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배운 자로서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연구자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종교지도자가 곧 통치자이기도 한 정교분리 이전 사회에서 서기관은, 종교적 율법뿐만 아니라, 종교적 율법을 기반으로 통치되는 사회의 고급 관리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 이름에서 담긴 분리되다라는 뜻의 바리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유대사회의 성전 중심세력들과 분리된 개혁가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바리새라는 말에서 영어 바리케이드’(barricade), 장애물, 장벽, 혹은 방어벽을 치다라는 뜻의 바리케이드가 나왔습니다. 아무튼 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성전의 의례나 형식을 중시했던 사두개파 사람들과 달리, 경전을 연구하고, 경전을 당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유대교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이들입니다. 이를테면, 바리새인들은 당대의 종교개혁가 같은 역할을 수행한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시며, 그들을 위선자라 칭하셨을까요?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리기 때문입니까, 그들이 거짓 예언자들처럼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옳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23:3) 말씀하셨습니다. 이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이자 경전연구자로서 토라의 전통에 따라 정통적해석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정통적해석을 위해 필요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이런 철저한 훈련과정 없이 자기 신념과 열정에 사로잡혀 외마디 소리를 내뱉는 거짓 예언자들과는 분명 품격이 다른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이들을 위선자라 비판하셨을까요?

 

그들의 화려한 말과 글과 달리, 말씀의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23:3)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옳은 말이라, 지키고 따르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옳은말이라 할지라도, 말에 대한 충실함과 책임이 사라진 화려한 말들을 경계하셨습니다. 충실함이 사라진 말들, 책임을 벗어버린 말들은 결국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고, 그들의 인정을 이끌어 내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높임 받으셔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대신 말 하는 사람의 탁월함만이 돋보인다면, 말의 과잉을 살펴봄직 합니다. 익숙한 비유입니다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있는 빛나고 화려한 장신구들에 눈이 간 나머지, 봐야 할 달은 보지 않고, 장신구에 시선이 머문다면, 차라리 그걸 빼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목회자이자 성서학자인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신학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교육을 받은 후에 작은 교회에 부임해서, 많지 않은 교인들을 위해 평생을 목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성경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 번역해 내놓았는데, 그 책이 바로 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성경 옆에 두고 읽는 성경이라는 메시지 성경입니다. 멀리 유진 피터슨 목사님만이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숙하는 선배 목사님들 가운데도 유진 피터슨 목사님 못지않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늘 자기를 낮추려는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겁니다. 가까이에서 뵈면 탁월한 실력자이신데, 그 실력을 뽐내는 일이 없습니다. 박사학위에 연연하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학위가 손가락의 장신구가 되어, 본질을 가로막을까 늘 조심하는 모습을 뵙게 됩니다. 또한 선생님으로 모시고 그 밑에서 배우고 싶은 이들이 많지만, 이분들은 도망 다니시기 바쁩니다. 훌륭한 선생님이시지만, 선생이라 칭함 받기를 거부하시고, 존경할 만한 지도자이시지만, 지도자라 칭함 받기를 끝내 거부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렇다고, 선생님들, 지도자들을 폄훼하거나 싸잡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이 있고, 다만 당신은 그런 자리가 맞지 않는다고 끝내 거리를 두실뿐입니다.

 

여담입니다만, 박사과정 공부를 하다 회의감에 사로잡혀서, 그만둘까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 목사님 한 분에게 제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누구누구 목사님은 박사 이런 데 연연하지 않고, 이런 거 없이도 잘 하시는데, 저도 그만둘까 봐요, 그랬더니, 이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네가 여기서 그만두면, 네가 존경하는 그분들과 너의 공통점은 박사학위가 없다는 거 말고는 없는 거야라면서 찬물을 확 끼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 말이 옳습니다. 학위가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학위 따위 없이도 나는 잘 할 수 있다하는 그 생각도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형편에 걸맞게 길을 인도하시고, 달란트를 맡기셔서 그 자리로 이끄셨음을 믿고 성실히 마치는 것이 길이었는데, 잠시 딴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화려한 옷을 걸치는 것만 교만이 아니라, 누더기를 걸치는 것도 교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화려하다, 초라하다 하는 데 연연하지 말고, 그저 만나게 하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감사하며 그 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의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3.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위선에 빠지지 않고, 겸손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길을 오늘 복음의 말씀에서 알려주셨습니다. 그 길들을 되새기면서 오늘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첫째는, 다른 이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말이 옳다면, 그 옳은 말을 충실히 지키고 살아내려고 노력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고, 말씀을 이정표 삼아 갈 길을 가야 합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되,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따라 자비와 긍휼을 실천해야지, 남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으려는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힘써야 합니다. 나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눔이 강박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눔을 통한 인정에 목말라, 무리한 나눔을 지속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나누되, 기쁜 마음으로,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값없이 베푸는 나눔이 위선에 빠지지 않는 겸손한 나눔의 길입니다. 셋째로,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높아지기 위해 배우고, 일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욕망이 없다면, 삶에서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고, 그래야 마땅합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역설입니다. 높아지려면 높아지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낮아져야 합니다. 저는 골프를 못 칩니다만, 골프 치는 분들에게 말씀을 들으면, 대부분 하는 말씀들이 비슷합니다. 힘을 빼고 해야 한다.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힘껏 쳐야 공이 더 멀리 가는 게 아닙니까? 잘 하려고 노력해야 잘 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골프 치는 분들은 이런 얘기에 서로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골프만이 아니라, 모든 운동이 그렇고, 삶이 결국 그렇습니다. 잘 하려면, 잘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높아지려면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하셨습니다. 복음서 다른 곳에서는 낮은 자의 대명사인 어린이를 두고,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18:4)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잠언 2923절에는, “사람이 오만하면 낮아질 것이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을 것이다.”(29:23) 하는 말씀이 있고, 욥기에는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신다.”(22:29c)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율법의 지혜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잘 전달하셨을 뿐입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셨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당신을 낮춘 겸손하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길을 묻고, 그분 안에서 길을 발견하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그들의 인정과 존경을 당신 몫으로 돌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우리도 주님처럼, 늘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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