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주님께 한 일

 

본문: 에스겔 34:11-16; 마태복음 25:31-46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22.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할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의 모든 신앙 여정을 마치고, 우리의 왕이신 주님 앞에서 그분을 뵙는 왕국주일이기도 합니다. 올 한 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도 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올 한 해의 신앙 여정을 은총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연초에 계획하고,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코로나로 지연되고, 어긋난 것들도 많이 있겠습니다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뜻 안에서, 우리 각 사람과 가정, 그리고 교회도 더욱 든든히 세워져 갈 것을 믿습니다. 한 해의 교회력이 마감되고, 다시 새로운 2021년의 신앙 여정이 시작되는 이 뜻깊은 주간에, 돌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2.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본문은 앞선 달란트의 비유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초점은, 주인의 재산을 얼마나 더 많이 불리느냐, 하는 데 있지 않다, 얼마 전 말씀 드렸습니다. ‘달란트 비유의 초점은, 주님이 멀리 떠나 안 계신 동안에도, 주님의 뜻을 얼마나 충실히 지키며 살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기에 앞서서, 주님께서 먼저 나를 아시고, 나를 믿으셔서, 그분이 가지신 귀한 것을 맡기고 떠나셨습니다. 맡은 자로서 우리의 할 일은, 주님이 안 계신 동안에도, 주님이 맡기신 달란트를 가지고 그분의 일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안 계신 동안에도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불려간 종들처럼, 예수님이 맡기신 복음의 뜻을 가지고 그분이 안 계신 동안에도 그뜻을 풍성하게 불려 나가야 하는 것이 신자로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란 바로 이 주님의 믿음에 신실한 실천으로 응답하는 이들이며, 그들은 주님을 다시 만나는 날에 주님과 함께 기쁨을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달란트의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최후의 심판비유는 달란트의 비유에 뒤이어 나옵니다. 이 비유는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마지막 날에, 인자가 오실 때에, 그분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갈라 양은 임금의 오른쪽에, 염소는 임금의 왼쪽에 세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임금의 칭찬과 상이 주어집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그러나 왼쪽에 있는 이들에게는 심판이 내려집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말씀합니다. 이렇듯 최후의 심판의 비유에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그룹이 등장합니다.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 임금의 나라를 차지하는 이들과 악마와 그 졸개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내던져지는 이들입니다.

 

얼마 전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나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인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습니다.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법의조사관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이라는 건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죽을지 한 번쯤은 고민을 해 보시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많이 죽고, 그래서 생각보다 너무 허무해요. 어떻게 이렇게.. 어떻게 이런 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지) 이런 경우들을 되게 많이 봤어요” (tvV, “죽은 자의 진실을 마주하는 부검 전문가.” 유퀴즈, EP.79. 2020.11.4.) 국과수의 법의조사관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그 죽음의 이유를 마주하면서, 거창하고 멀게만 생각했던 죽음이, 실상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그것도 정말 뜻밖의 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일종의 허무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법의조사관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성서 전도서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7:2)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평범하지만 모두가 잊고 살아가는 진실을 마주하고 상기하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치집에 가 있다.”(7:4)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을, 하나님의 선물로 값없이 주어진 이 귀한 삶을, 어떻게 더 귀하고 보람 있고, 기쁘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의 문제입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이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이자, 왕국주일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한 해 신앙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주님 앞에 서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달란트를 맡기고 떠나신 주인이 돌아오신 날, 인자가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 오시는 날, 그리고 우리가 짧은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왕이신 그분 앞에 서는 날이 바로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시간입니다. 오늘 비유처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씀을 드리지면, 여러분과 제가 인생의 여정을 갑자기 마치고 죽어서, 주님을 뵙는 자리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여러분들이 계신 바로 그곳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왕국주일에 담긴 교회력의 의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니, 당황스러운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니, 주일에 은혜 받으려고 예배드리는데 갑자기 웬 죽는 얘기를 길게 하시나? 재수 없게’, ‘아니, 지난 주일에 왕국주일이 이런 의미라고 광고라도 좀 해 주시지,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게’, ‘오늘은 몰랐으니까, 다음 주로 미뤄주세요. 아니면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잠깐이라도 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죠.’ 이런 생각들이 들지 않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고 갑작스레, 그리고 뜻밖에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3.

 

예수님은 이렇듯 뜻밖의 일로 우리의 인생 여정을 마치고, 그분 앞에 서는 날이 온다 해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그때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최후의 심판이 지금 이 순간에 임한다 하더라도 두렵지 않을 삶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하신 말씀을 사는 동안 잊지 않고, 그 말씀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선행은, 주님께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당황합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저희들은 주님을 뵌 적도 없는데요?)” 주님이 떠나신 후로 그분을 뵌 적이 없는데도, 그분은 어째서 너희는 내가주릴 때에, ‘내가목마를 때에, ‘내가나그네로 있을 때에, ‘내가갇혔을 때에나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하시는 걸까요? 바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 가운데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원하신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 가운데 주님이 계신다, 그가 곧 주님이시다, 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누가 그들을 돌보지 않았을까요? 앞서서 모시겠다고 나서고, 식사 한번 하시자고 나서고, 도에 넘치는 선의를 베풀겠다고 그 앞에 줄을 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동도 선행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만, 보다 정확하게는 투자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입니다. 하나를 주고, 둘을 받을 심산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를 주고, 적어도 이 하나는 잃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에서 선행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내 눈 앞에 있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주님이라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누가 그를 도우려고 하지 않을까요? 지금 작은 걸 드리면, 나중에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을 돌려받을 수 있을 텐데, 누가 이 기회를 놓치려고 할까요? 아마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기고, 인생을 다 걸어서라도 그 사람 눈에 들고자 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이 재미있는 것은, 아무도 그들이 주님이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도 그들이 주님이실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율법의 가르침대로, 믿음의 올바른 뜻대로, 선행을 베풀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 살아가고자 했을 뿐인데 그분이 주님이셨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에 주님께 칭찬받은 이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은 이들에게 값없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돌려받을 생각은 아예 하질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보아하니, 그들에게 돌려받을 것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값없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행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은 그때 비로소, ‘그것이 내게 한 것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복음서인 누가복음 14장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14:12-14) 말하자면, 당장에 은혜를 갚을 길이 요원해 보이는 이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직접 갚아 주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복음의 말씀을 굳게 믿지 못한다면, 사기꾼의 말도 이런 사기꾼의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주면 나중에 다 갚아 줄 거다, 말이 안 됩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믿음의 실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익하고 어리석은 말일 될 뿐입니다.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복음의 말씀을 대하면 그 길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전통에서는 믿는다하지 않고, ‘믿어진다하는 수동형을 즐겨 사용합니다.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자비를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신다, 하는 이 말씀이 정말로 믿어지고, 그 믿음 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은혜입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 앞에 설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을 물으실까요? 한 해의 신앙 여정을 마치며 그분 앞에 서는 왕국주일인 오늘, 정말로 우리 인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선 때가 바로 지금이라면, 주님은 우리를 두고 어떤 일로 착하고 신실한 종의 삶을 살았는지를 판단하실까요? ‘너 사도신경 한 번 외워볼래? 주기도문 외워봐, 십계명 외워봐, 1계명부터 말고, 10계명부터 거꾸로’, 설마 이런 걸 물어보실까요? 얼마나 주목받는 삶을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부와 권세와 명예를 누리다 왔는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판단하실까요?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대했는가, 지극히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생 앞에서도, 세상에 보잘 것 없는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믿음으로, 그분의 자비와 사랑의 복음을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왔는지, 그걸 물으실 겁니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까요?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새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남은 시간을 주를 위하여, 주님이 맡기신 복음의 달란트를 불리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 대하듯 하면서, 마지막 그날을 준비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범이 되시고, 스승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길에 있어, 그분이 우리에 앞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복음의 이정표를 따라, 한 해의 신앙 여정을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날을 은총 가운데 맞이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각 사람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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