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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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본문: 이사야 64:1-9; 마가복음 1:1-8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29. 대림절 제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하기를, “보아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한 것과 같이,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나타나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되는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 촛불을 밝히며 희망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올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한 해였기에, 대림절 첫 주일 초를 밝히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하루 확진자가 다시 500명대를 넘어서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백신 개발 소식이 들려오고는 있습니다만,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올해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코로나19와 힘겹게 싸워 온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작은 힘을 보태며 예방에 힘써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

 

매년 대림절이 되면 세례자 요한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외친 세례자 요한을 두고, 예수님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11:7-15) 하는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복음서의 세례자 요한은 다리를 놓는 사람의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회개하기 이전의 옛 정체성과 회개한 이후의 새로운 정체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그리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그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한 조연이 된 사람이요, 겸손함으로 주님을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1:8)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한 예언자로서,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번째 복음 역시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뒤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1:14)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신 첫 번째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를 강조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정결례를 행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변화보다는 마음의 변화, 삶의 변화가 진정한 회개이며, 복음에 이르는 길이라 가르치신 것입니다.

 

회개(悔改)를 뜻하는 헬라어 낱말은 메타노이아’(metanoia)입니다. ‘메타’(meta-)라는 접두사는 ‘~이후’ ‘~를 넘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노이아’(noia)마음’, ‘생각’, ‘을 뜻하는 낱말인 누스’(nous)의 변형입니다. 그러니까 메타노이아, 곧 회개란, 마음을 이전과 다른 상태로 가져가는 것, 생각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 너머로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는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변화를 거부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돌이키게 된 상태, 복음을 이정표 삼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생각들을 넘어서게 된 상태가 바로 메타노이아, 회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의례가 세례입니다. 세례를 뜻하는 벱티그마는 사실 몸을 물속에 완전히 담그는 침례를 뜻합니다. 물속에 온 몸이 들어가는 순간은, 짧은 순간이나마 죽음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이전의 나는 이제 물속에 잠겨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 위로 올라올 때는 새 생명을 얻은 존재로 거듭납니다. 이전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벱티그마, 세례 의식에 담긴 상징적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회개한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만나기 이전 마음에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만나기 이전에 가졌던 생각이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에 머물지 않고, 복음을 향하여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는 존재가 바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이 한 목소리로 선포하신 메타노이아를 체험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과 생각의 변화가 없는 회개에 대해 세례자 요한은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많은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 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3:7-9) 그야말로 세례받겠다고 왔다가 말 폭탄에 봉변을 당한 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요한은 진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악인을 의롭다고 하거나, 의인을 악하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주님께서 싫어하신다.”(17:15)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마음과 생각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한낱 의례에 지나지 않는 회개를 요한은 비판했습니다. 그는 거듭난 사람이란 누구인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전했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3.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1:8) 물로 받는 세례와 성령으로 받는 세례가 따로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로 받는 세례나, 성령으로 받는 세례 모두 하나님께로 돌이킨 삶을 지향합니다. 이전과 다른 상태로 나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물로 받는 세례는 평생 한 번에 그치는 의례에 머물지만,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일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변화의 기적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늘 변함없이 푸르러 보이는 소나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 반복되는 변화의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생명의 본성을 반하는 일입니다. 처음과 끝이 동일하신 분, 알파요 오메가가 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변화란 생명의 조건과도 같은 것입니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입니다. 진화의 과정은 진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퇴행도 진화의 한 과정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변화가 아니라, 뒤로 물러나는 것 또한 변화의 한 양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원리는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은 발전시켜 나가고, 끊어내고 없애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없애버려야 삶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에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로 받는 세례는 일생 한 번의 의례에 그치는 것이지만, 성령으로 받는 세례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모든 과정에서, 크고 작은 회심과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좋고 아름다운 삶으로 가꿔나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와”(3:16) 임하시는 것을 보셨습니다.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로 나가 악마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마태는 그분이 성령에 이끌려”(4:1) 광야로 가셨다고 전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은,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언제나 그분과 함께 하셨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하는 요한의 말은,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이 누리는 참 평안과 축복의 선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제로부터 영원히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며, 시험을 당할 때에도, 인생의 모든 변화의 과정 가운데 그분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축복의 선언입니다.

 

4.

 

오늘 새로운 교회력의 대림절 첫 주일을 맞으며, 여러분과 한 해 동안 나눌 파송의 말씀을 두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갈라디아서 69절의 바울의 권면을 신앙실천의 방향으로 정하고, 매 주일 파송의 말씀으로 우리의 다짐을 되새겼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6:9) 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지난 한 해 코로나로 인한 고난을 경험하면서,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중심을 더욱 굳건히 세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올해 저는 여러분과 로마서 828장의 바울의 권면을 파송의 말씀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8:28)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 앞서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8:26)하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그분의 품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당하실 때에도, 그분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고, 성령의 도우심을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가 할 일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인해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는 감사하고, 어떤 일에는 감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범사에 감사드리는 삶, 그것이 성령 안에서 주님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거듭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분입니다. 대림절 첫 번째 초를 밝히며,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분을 기다립니다. 성령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총을 경험합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이들은, 파편적으로 흩어진 우리의 경험들이 하나로 모여, 결국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신비를 경험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거듭난 삶을 산다는 것은 이렇듯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감사드리는 삶을 뜻합니다. 모든 시간이 그분께 속한 것이요, 우리는 그분의 손에 붙들린 존재라는 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우리 믿음의 시작과 끝이 되는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성령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붙들린 바 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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