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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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계신 곳

 

본문: 사무엘하 7:1-11; 누가복음 1:26-38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2.20. 대림절 제4)

 

[주님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에게서 다윗 왕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으므로, 왕은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습니다.” 나단이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바로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곳곳에서 성탄을 맞이하는 노랫소리가 들리던 때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모로 예년과는 다른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부활절에 이어 오는 금요일 성탄절 예배도 비대면 영상예배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고 장기화 되는 가운데, 경계심이 느슨해진 틈을 타 의료진과 방역당국 종사자들의 피로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생활을 지탱하던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비천한 자리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유가 있는 이들도 이전처럼 풍요로운 삶의 조건들을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높으신 주님께서 낮은 곳에 임하셔서, 비천한 자들의 소망이 되셨다는 성탄의 소식이 그 어느 해보다 체감되는 이유입니다. 올 해 우리는 너나없이 가난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이리저리 가르고 나누던 장벽들이 코로나19라는 큰 고통 앞에서 무너지고, 한마음이 되어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은 한 해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는 대림절 결단찬송의 노랫말처럼 가난한 우리에게 새 기쁨 주시려오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을 마음 깊이 맞이하는 대림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의 말씀은 사무엘하 7장에 나오는 나단의 예언입니다. 예언자 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곁에 두신 종으로서, 다윗이 자기 부하의 아내인 우리아를 범했을 때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으며 다윗의 회개를 촉구했던 올곧은 인물입니다. 예언자 나단이 절대 권력인 왕 앞에서도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언자의 본분에 충실한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단은 자신이 전하는 말씀으로 인해 당할 지도 모르는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왕 앞에서 해야 할 말을 다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단을 다윗 곁에 두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신 분(삼하 7:8)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언자 나단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51:10-12) 나단의 말씀을 듣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린 시편 51편의 내용 일부입니다.

 

다윗이 나단의 지적에 주저함 없이 자기 잘못을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나단처럼 다윗 역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적들을 피해 도망 다니며, 수난을 당하던 시절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편 51편이 다윗의 회개를 담았다면,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다 광야에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실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 입술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내가 손을 들어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렵니다.”(63:3-4) 노래합니다.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도 다윗은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나단과 다윗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윗에게 회개를 촉구한 나단과, 나단의 지적 앞에서 지체 없이 회개한 다윗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한 분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한 나단이나, 회개한 다윗이나, 사심이 없습니다. 둘의 자리는 다르지만, 이 둘은 한 분이신 야훼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나단과 다윗이 서로를 바라보았다면, 인간적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적대적 관계가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이 둘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함께 한 분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왕과 예언자라는, 야합하지 않는다면 결코 편히 지내기 힘든 서로의 자리에서, 사심 없이 행동하고, 서로를 깊이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비결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말씀을 전하신 원로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회자는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말씀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말씀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속으로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분이 어떻게 저렇게...’ 그런데 그 말씀이 잊히지 않고, 때때로 떠오르고, 옳은 말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는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은 욕심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씀이 아니라, 욕심이 있더라도, 그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이 참 신앙인입니다. 나단과 다윗처럼, 서로 입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목회자라면, 그리고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서로를 바라보면서 차이에 주목하는 대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며, 함께 눈을 들어 그분이 계신 곳을 바라보면서, 믿음 안에서 연합하고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단이 사심 없이 다윗에서 회개를 촉구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다윗이 사심 없이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이런 신실한 다윗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안에 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있으면서, 정작 영광 받으셔야 할 하나님은 임시로 설치해 놓은 장막에 계시다는 사실이 다윗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실한 다윗으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가질 법 합니다. 그런 다윗을 보고 나단이 말합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슨 일이든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나단의 말에 힘을 얻은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삼하 7:7)

 

신실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장막에 거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종교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장막이 아닌 화려한 성전으로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나오신 날로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집에도 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옮겨 다니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그들이 떠돌아다닐 때 하나님도 함께 떠돌아다니셨습니다. 달리 말해, 그분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백성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하시는 분이시지, 장막이나 성전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그분을 만나려면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있는 곳,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 곁으로 가야 합니다.

 

4.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서초구 방배동 한 빌라에서 30대 발달장애 아들을 둔 60대 여성이 숨진 지 반년이 지나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은, 돌아가신 어머리를 향해 자신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다 취한 후 도움을 구하려 밖으로 나와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53일의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 많은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갔지만,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가 그에게 말을 걸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서른여섯인 아들은,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고기잡이배에 끌려갈 수 있으니,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는 엄마의 당부를 기억하며, 정미경 씨의 계속된 선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복지사는 끈질긴 대화 끝에 아들의 마음을 돌이켜 도움을 받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달장애 아들의 마음을 돌린 정미경 씨의 말은,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나를 보내주셨어. 밥 한끼를 꼭 사먹이라고 엄마가 부탁하셨어.”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때서야 정말 엄마가 보내셨어요?‘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복지사의 손을 잡고 식당에 갔다고 합니다.(국민일보, “‘방배동 그 천사가 저도 구해주셨어요노숙인의 글.” 2020.12.19.) 덕분에 늦게나마 어머니 시신을 수습하고, 장애인 등록을 해서,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이 눈물 흘리는 그곳에 어디든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들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 그분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만나려면 장막이나 성전이 아닌, 그분이 계신 곳에 가야 합니다. 찾아갈 수 없다면,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 함께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정미경 씨가 신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림절에 임마누엘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신자들에게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새기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어 준 데 감사합니다.

 

기사 밑에 달린 어느 분의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거의 매일 운동한다고 저 앞을 지나다녔다. 저 글씨를 봤는데, 당연히 구걸하려는 약은 속셈이라고 넘겼다. 그런데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내가 그동안 세상에 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남자분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가 생각하니 울컥하게 된다.” 내가 저 앞을 지나갔더라도 달랐을까? 댓글을 보면서 신자로서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높으신 주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오셔서, 비천한 자들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구원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36)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에게 두는 우리의 대림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막이나 성전에 머물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과 함께 다니시며 그들을 돌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닮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한 주간도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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