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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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고 낮은 다가오는데

 

본문: 로마 13:11-14, 계시록 21:5-8

설교: 이계준 목사 (2020.12.27.)

 

코로나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이 팬데믹이 근 1년 동안 광풍노도처럼 몰아치면서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활동이 억제되고 삶 전체가 위축되었으며, 생명의 위협과 죽음에 직면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회는 어느 곳도 정상적인 데가 없고 정치 집단들은 민생을 저버리고 정권의 연장과 권력의 확대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 송구영신을 맞는 크리스천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혹시 묵은해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독재 권력, 환경파괴, 핵의 위협 등을 휩쓸어가리라는 환상에 미혹되지는 않았습니까? 자연의 시간 kronos는 사계절을 다시 불러올 것이고, 언제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행운이 따른다면 코로나 백신으로 진압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 kairos는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응답에 따라 경영되므로 기계적 반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송구영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지금은 구원의 때가 가까웠으니 자다가 마땅히 깨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다가왔으니 어두운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이것은 로마의 폭정 하에 있는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낡은 시대의 종말을 대한 예견인 동시에 정신 무장을 갖추어야만 새날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이자 권면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낡은 해가 저물고 한 세대의 낙조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지금 자연 발생적 역병과 함께 인재로 인해 역사의 밤은 깊어가고 새날이 밝을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렇듯 엄중한 때 깨달음 없이 허송세월하지 말고 새날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깊은 밤은 단잠이 아니라 새날을 위한 준비 시간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어떤 사건과 사물의 끝이나 마지막이 파멸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부활의 새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밧모 섬의 요한은 세계의 마지막 날을 파멸이나 대화재나 냉동상태의 죽음이 아니라 만물이 새롭게 창조되는 날로 보았습니다(21:6). D. 본회퍼는 플로센뷔르크 포로수용소에서 처형되기 직전에 동료인 죄수에게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모든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임을 체험하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바울은 새날 곧 새 역사를 맞이할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오니 대낮처럼 단정하게 행동하고 사치스러운 연회와 폭음,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 등 세속적이고 비도덕적 행태를 청산하고 그리스도를 삶의 축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13:12-14)

바울이 그리스도를 삶의 축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고린도서에서 강조한 믿음, 희망, 사랑(고전 13:13)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하느님의 구원을 믿는 것이고 그 희망은 다가올 하느님 나라에 대한 대망을 가슴에 품는 것이며 그 사랑은 오늘의 일상적 삶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실패한 것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광야에 머물 때 새로운 세계 곧 가나안에 들어갈 정신적, 도덕적 무장은 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의 종 모세에게 반항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옛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고 새 세대만 축복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우들의 새날에 대한 자각과 준비를 위해 암묵적 신호를 보낸 것 아닌가 추정합니다.

 

 

2.

 

2000년 전 사도 바울이 로마 크리스천들에게 새날을 위해 대비책을 권하였다면 오늘 우리 한국 크리스천에게 바울 같은 사도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세기에 등장한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아마도 우리 민족의 고난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평생 언행일치로 초지일관한 선각자는 함석헌 선생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란 글이 1950년대에 간행되었고 1960년대에는 <뜻으로 본 한국 역사>란 제하에 출판되었습니다. 고 노명식 박사에 따르면, 일반 역사가들은 이 책이 성서에 근거하였다고 무시하나 우리 역사를 역사관을 근거로 쓴 것은 이 책뿐이라고 했습니다. 함 선생의 역사관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역사는 비록 고난의 연속이지만 곤혹과 한탄에 그치지 않고 민족 구원의 길과 함께 세계사의 주연이 되라는 사명감을 제시한다고 하였습니다.

함 선생은 우리의 5.000년에 걸친 역사적 고난이 이 씨 조선 500년에 집약되었다고 하면서 고난의 근본 원인은 탐관오리의 수탈과 당쟁의 연속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에서 바울처럼 우리가 새날을 맞기 위해 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당쟁을 버리고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작은 생각을 버리고 서로 존중하며 뭉치는 것을 하느님의 뜻과 역사의 명령으로 알아야 역사적 민족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주인의식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인격적으로 서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거지에게도 자존심이 있듯이 인격은 자존(自尊)할 때 자존(自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격은 스스로 존중할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리적 및 역사적 환경에 핑계 대는 주체의식이 없는 얼빠진 민족이 되지 말고 우주를 등에 걸머지는 정신으로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독립정신입니다. 이것은 깊은 인생관과 높은 세계관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이 인생관과 세계관은 위대한 종교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란 곧 뜻을 찾는 것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인데 우리 민족의 빈곤 중의 빈곤은 철학의 빈곤이고 종교의 빈곤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일찍이 역사상에 위대한 종교 없이 위대한 나라를 세운 적이 없고 또한 종교가 잘못되고 망하지 않은 나라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3.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의 깊은 밤 한가운데 있습니다. 일제 40년이란 밤을 지나 분단이란 밤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궁핍, 무지와 무능의 밤을 극복하고 민주국가 건설과 선진국 대열인 OECD에 진입하는 새날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가나안인 줄 알고 터뜨린 샴페인 파티는 붉은 악마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밤의 세력은 우리의 존재와 삶 전체를 혼돈과 파괴로 끝장내는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것으로 기존의 무기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어두운 세력은 거짓과 독선을 미화하고 온갖 죄악을 생산하는 동시에 교회를 박해하고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며 저항하는 성직자를 투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중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실로 감사한 것은 우리는 어떤 적수와도 싸워 이길 수 있는 초월적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신앙은 일제에 대항하여 자주와 독립을 외친 3.1운동의 동력이 되었고 스탈린과 모택통이 지원하는 북한 독재자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정신적 보루가 되었습니다.

또한 희망의 신학자 J. 몰트만은 그의 마지막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에서 기독교 신앙의 창조적 위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세계의 불의에 대한 절망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세게 안에서 승리하게 될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죽음에 대항하는 생명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폭력에 맞서는 정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며 파괴에 맞서는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신앙의 유산과 힘에 더하여 바울의 권고와 함석헌의 과제를 걸머지고 시대적 사명을 실현할 결단을 해야 하겠습니다. 무책임한 행실을 초개처럼 버리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무장하는 동시에 역사의 주인으로서 참 신앙의 열매인 자유와 정의를 구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가 우리의 운명이 된 처지에 하느님의 의의 투사라고 자처하는 성직자들이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든 반면에 오히려 세속의 수 많은 율사들이 하느님의 새날을 위해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깝고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와 역설을 볼 때 깊이 참회하며 하느님의 새 역사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깊은 밤에 잠겨 있다는 것은 주인의식 없이 남이 만들어 준 나 자신과 가정, 교회와 나라에서 살아온 얼빠진 백성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믿음 가운데 각성하고 사랑으로 뭉치며 정의와 자유의 십자가를 질 때 어두운 밤은 지나고 희망의 새날은 밝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국제적 지탄을 받으면서도 주변의 민족들과 갈등과 전쟁을 그치지 않는 것은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받은 온갖 천대와 멸시, 핍박과 죽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라가 없거나 중국과 북한처럼 사회주의 독재하에서는 나와 가정도, 인권과 신앙의 자유도 없습니다. 스탈린에 의해 시베리아로 추방당한 고려인들이 88올림픽 때 영주권을 받은 것은 나라의 존엄성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위대한 종교에서만이 위대한 사상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가 참 종교인지 또한 우리가 참 크리스천인지 확인하고 공인하는 심판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기다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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