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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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사랑으로 말하기

              

본문: 엡4:15-16; 고전 1:27-31 

신반포교회 이계준 목사 (2018.2.18.)

 

근자에 <목회자>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윌리엄 윌리몬이란 목사로서 그는 미국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교수와 대학교회 담임목사로 30년 넘게 봉직하였고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감독을 지낸 분입니다. 이렇게 귀한 책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에베소서 본문과 이 책에 수록된 교회 공동체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에베소서 본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은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포장해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을 통해 익힌 하느님의 진리를 전할 때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절대적 진리일지라도 그것이 사랑으로 표현되지 않을 때 역효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기의 의사표시나 소통을 위해 많은 말을 하게 되고 침묵도 역시 의사표시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진실을 사랑으로 코딩한 것인지 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말이 주로 자기의 의사전달이나 목적달성을 위한 한낱 도구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 없는 진리나 진리 없는 사랑은 백해무익하고 자타에게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독선과 강변에 그치고 진리 없는 사랑은 맹목과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E. 프롬이 <사랑의 기술>이란 저서에서 밝힌 바처럼 진리를 사랑으로 말하는탁월한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므로 상대와 심리적 갈등과 분열뿐만 아니라 실질적 이해와 위협마저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말하는 진리를 받아드리는 것보다는 자기의 이해와 체면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진실 없는 사랑은 결코 사랑이 아닐 뿐 아니라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인간의 지켜야 할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윌리몬 감독은 이런 실화를 소개합니다. 미국 켄터기 주 어느 교회에 글래디스 Gladys란 여성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가 교육위원회에서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부유한 집 아이들을 디즈니월드에 데리고 간다고 할 때 이 여성은 집 지어주기” Habitat for Humanity가 공동체 형성에 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때 80세의 할머니가 디즈니월드 여행이 목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가세하므로 그 회의는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글래디스와 할머니는 목사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의 반기를 드는 어려운 결단을 한 것입니다.


윌리몬 감독은 이와 반대로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 미국교회의 쇠퇴를 초래했다고 합니다. 세속주의에 빠진 교우들에게 세상의 풍조에 대항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이와 반대로 평신도와 세속주의란 배를 함께 탔다는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복음을 중심으로 서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을 때 교회의 불행을 자초했다는 말입니다.


실상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날마다 실감합니다. 지체 높은 분이나 동료, 교인이나 자녀에게도 바른 말을 하면 이해관계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하며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 나라와 교회가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자리에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수고를 계속해야 합니다.


근자에 여검사 서지현 씨가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여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남녀평등법이 제정 된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남존여비의 폐습이 잔존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오랜 고민과 아픔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랑으로 진리를 표출한 것입니다. 이러한 용단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들려주고 남성들의 퇴폐적 문화를 순결한 것으로 바꾸는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7-2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려고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 앞에서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


에베소서 본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때 우리가 모든 면에서 자라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랑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모습에까지 이르는 것이 목표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하루아침에 크게 발전하거나 완성되는 기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진리인 성서이해와 실천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날마다 조금씩 자라서 성숙해지고 완전에 이르는 것입니다. 감리교 교조 웨슬리 목사는 젊은 시절에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완전해 질 수 없다고 하였으나 말년에는 완전해 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함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으뜸인 것은 그것이 개인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 사랑으로 진리를 말할 때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YesNo’를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접근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할 때 성숙한 부모라면 자녀들이 듣기 싫은 말이나 하기 싫은 일이라도 사람됨을 위한 것이라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처럼 말씀 중심의 사람은 세상의 저속한 풍조와 왜곡된 가치관에 대결하고 시정하려는 강인한 정의의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속주의와 싸울 때 근심과 걱정이 앞설 수 있으나 누가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 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할까 걱정하지 말라. 성령께서 너희가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12:11-12)


그런 의미에서 윌리몬 감독은 교회는 예언자 공동체 prophetic community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언자란 예언과 예견이란 두 기능을 지니고 하느님이 직접 주신 말씀을 대변하는 동시에 인생과 역사를 미리 예감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선택하신 백성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시고 선견지명을 주시므로 우리는 모두 예언자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예언자의 참 원형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로마의 통치하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동시에 그것을 구현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성숙함을 보이셨습니다. 예언자란 오늘의 불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통치를 지금 여기에서 몸소 실현하는 것입니다.


작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 제가 이 강단에서 드린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그 절차가 잘못된 것뿐만 아니라 이 사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나라가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뒤바뀌는 자유의 종말까지 갈 것이다.’고 한 말 말입니다

 

제가 새로운 예언을 또 하나하겠습니다. 무자각하고 감성적인 국민과 기회주의자인 지식인 및 자기이익의 노예가 된 야당이 존속하는 한, 현 정부의 매뉴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한, 앞으로 적화통일은 필연적이고 사회주의 독재가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모든 자유 곧 인권, 언론, 소유, 직업, 거주, 신앙 등이 깡그리 몰수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북한 공산체제하에서 경험이고 지금 중국과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벌써 경제와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념이나 정치적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처럼 생존과 자유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 나라와 우리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가 다가옴을 예감해야 합니다. 나라 없이는 우리의 존재도 자유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말씀드리니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예언자의 역할을 다 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끝으로 에베소서 본문은 온 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속하고 몸의 각 마디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며 각 지체가 자기의 기능을 다 함으로 몸이 자라고 사랑으로 몸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공동체에 관한 것으로써 교회는 각 구성원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각기 맡은 사명에 충실하므로 사랑가운데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개인주의로 무장되었기 때문에 비록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집단에 앞서 개인의 존재와 가치를 우선시합니다. 이것이 그대로 신앙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중심의 공동체라는 의식은 망각하고 각자의 종교적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의 망각은 구성원과 공동체의 파탄을 초래하므로 우리는 공동체를 존중하고 책임을 다 하므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존속하고 발전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탁 Rodney Stark은 교회가 처음 3세기 동안 기적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교인들이 합심하여 자선사업을 통해 복음을 증거한 이유라고 하였습니다. 이교도인 로마 사람들이 영아 유기와 유산, 소년 남색은 물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을 일삼을 때 기독교인들은 약한 자는 물론 온 공동체를 돌보았다는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르샹봉이란 곳의 휴그노 Huguenot라는 개신교 공동체가 유대인 3.000명을 구원한 영웅적인 일화가 있습니다. 독일군 전령하의 프랑스 경찰이 숨은 유대인들을 잡으려고 교인들을 협박할 때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트로그매 목사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이 유대인 한 사람만 찾아 잡아갈 때 목사의 아들이 그에게 초콜릿을 주자 모든 교인들이 자기들의 먹거리를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경찰들을 적이 아니라 이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유그노 교인들로 하여금 이렇듯 위대하고 성숙한 능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들은 주일마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한 것 밖에 다른 정보는 없는데 목사가 자주 인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마음에 깊이 잠복했다가 폭발하므로 위대한 기적을 낳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대선 감독께서 북한에 계실 때 대구에 계신 선친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대구에 가서 부친께 병문안 드리고 곧 돌아오겠다.’고 교인들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박 목사님도 다른 목사들처럼 남쪽으로 망명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감독님이 약속한 날 돌아오시자 교인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남쪽의 교회지도자들이 월북을 반대하고 미국유학도 권유했으나 교인과 약속했기 때문에 순교를 각오하고 돌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6.25전쟁 당시 교인 댁에 은신하여 구사일생하셨습니다.


참 교회란 목자가 양을 사랑하고 약속을 지키며 양은 목자를 존경하고 따르면서 사랑가운데 서로 얽힐 때 온전한 신앙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에서 목자가 양을 자기 영달의 수단으로 삼고 양이 자기의 종교적 욕구를 위해 목자를 이용하는 풍토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없으니 실로 참담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한국이란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명에 충실하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다가가야 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전한 신앙공동체를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이 때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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