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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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오판

 

본문: 창세기 17:1-7, 15-16; 마가복음 8:31-38

설교: 홍정호 목사 (2018.2.25. 사순절 제2)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수난과 부활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당하실 고난을 예고하셨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31)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세히 이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하는 베드로의 반응을 볼 때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분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명확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32절입니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생업도 내려놓고 예수를 따라 나선 이들이 예수님의 심중(心中)을 어렴풋이나마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랬다면 제자의 자격이 없는 이들이었겠지요. 예수님의 뜻이 어떠하시다는 것을 그들은 눈치 채고 있었겠지만, 그분이 당신의 뜻을 드러내 놓고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분의 뜻은, 아니나 다를까, 십자가, 곧 죽음의 길을 향해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채고는 있었지만, 그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제자들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는 언제고,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 두고 그분을 따랐는데, 이제 와서 죽음을 말씀하시다니, 그것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그 길을 가시겠다니, 제자들로서는 여러모로 참담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2.

 

31절과 32절 사이에 시간이 축약되어 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실제로 그런지 본문비평을 통해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편의를 위해 임의로 생각해 본 것입니다. 31절 예수님의 말씀과 32절 베드로의 반응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일어난 일을 마가가 한 장면으로 기록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이에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그리고 제자들 무리 가운데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까요.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지 않은 갈등들이 31절과 32절 사이에는 생략되어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아니, 멀쩡하게 고기 잡고, 농사짓고, 세관원 노릇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불러 세우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죽겠다고 저러시나, 여러분이라면 그런 생각 안 하셨겠습니까. 저는 베드로의 심정이 일면 이해됩니다. 32절입니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항의를 했다니, 성경을 읽다가, 하도 이상해서 원문을 찾아봤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항의했다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항의했다고 번역된 데가 있는지 우선 찾아보았습니다. 없습니다. 개역개정판에는 아예 없고, 새번역에는 딱 한 군데,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인 반응을 드러내는 지금 여기에 단 한 번 등장합니다.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십니까? 베드로가 항의하였다고 했을 때 우리말 항의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티마오πιτιμάω는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실 때(17:18), 바람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실 때(8:26), 제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실 때(12:16) 사용된 낱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항의하다라고 번역된 에피티마오, 복음서의 다른 데에서는 꾸짖다는 낱말로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거칠게 해석을 한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점잖게 항의한 게 아니라,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어 악령을 내쫓으셨던 것처럼,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지금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귀신을 내쫓을 때나 쓰는 에피티마오라는 낱말이 여기 등장할 이유가 굳이 없습니다. 가톨릭과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아무튼 31절에 나온 말씀, 아마도 성서가 축약해서 전하고 있을 예수님의 이 메시지는 제자들의 격렬한 항의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충격적인 말씀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3.

 

33절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시고,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저는 한 주 내내 이 말씀을, 저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수십 차례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한 이가 아닙니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7-18) 주님께 약속을 받아 세워진 주님의 종이 아닙니까. 그런데 곧이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을 바싹 잡아당기며 그분에게 항의하는, 요나의 아들 시몬으로 돌아옵니다.

 

베드로는 거친 어부였던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불러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내는 것,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날지라도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 장담하던 열정과 확신으로 주님을 따른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잘못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 충성하면,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을 따르면, 주님께서 그 열정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자기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그 열정은 교만과 헛된 자부심이 되어 그릇된 길로 그를 인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난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에, 그것이 그분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항의하는, 그분을 꾸짖는’(ἐπιτιμάω) 잘못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앞서 예수님을 향해 항의했던 것과 똑같이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같은 낱말, ‘에피티마오33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베드로를 향해, 주님께서 사탄이라고 칭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시몬과 베드로,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교회의 반석과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탄이, 한 사람, 곧 바요나 시몬, 베드로를 칭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인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대신,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고, 그분의 뜻을 거슬러 그분에게 항의하는 한 그는 베드로라 할지라도, 사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 머물 뿐입니다.

 

4.

 

예수님과 제자들, 베드로가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예수님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베드로나,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칭하는 예수님 모두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곡해하기 쉽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인생에서 예수님이 너무나 소중하고도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분의 결단을 두고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그분의 삶에서 베드로가 소중하고 믿음직한 제자였기에 그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오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와 내가 한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 모두 하나님의 일을 위함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를 향한 너희의 인간적인 사랑과 헌신은 오히려 올가미가 될 뿐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요.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분이면 음식을 잘 대접하면 됩니다. 헤롯처럼 향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때에 따라 즐겁게 해 드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오셨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러나셨고, 이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시는 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만이 그분을 움직이는 힘이고, 그분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드는 근원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8:34-35)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말씀의 뜻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뒤에 오는 말씀을 끝으로 읽겠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음란하고 죄가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8:36-38)

 

예수님은 공생애에 나서시기 전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분입니다.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약속이 그분에게는 유혹이 되지 못합니다. 그분은 온 세상을 얻는 것보다 목숨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기신 분입니다. 여기서 목숨이란, 생물학적인 의미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여러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사회적 생명, 영적 생명, 관계적 생명입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는, 복음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신자라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복음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자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뿐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복음이 말하는 변화된 세상, 연약한 이들과 더불어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비웃는, 학식과 지위가 높은 고매한 이들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사는 이들이, 돌맹이와 같은 이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의 꿈에 냉소를 보낼 때, 그것도 신앙의 이름으로 그들을 비웃고 억누를 때 그들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도 그들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하든 신자됨의 본분을 떠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꿈을 잃어버리면, 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들이 복음적 세상의 꿈을 잃어버리면, 저는 신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교회는 없어지는 게 순리라고 줄곧 믿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 그리고 평신도지도자들이 크게 오해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어리석음에 다름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올라가는 것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내려오는 것도 뜻입니다. 이기는 것만 은혜가 아니고, 지는 것이 더 큰 은혜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신앙의 역설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이런 단순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다가가 그분을 붙잡고 항의하는 베드로의 오판을 반복하곤 합니다. 내가 없으면, 혹은 저분이 안 계시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쓰임 받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분에게 중심을 내어드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몬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렸을 때 그는 베드로가 되었지만, 그 베드로가 자기에 집착했을 때 그는 예수님에게 사탄으로 불리는 존재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은 무엇인지, 우리는 왜 교회에 모여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식탁을 마주대하고 있는지, 다시금 기도하는 가운데 근본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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