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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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

 

본문: 이사야 25:6-9; 요한복음 20:1-18

설교: 홍정호 목사 (2021.4.4. 부활절, 부활주일)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는 몸을 굽혀서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도 그를 뒤따라 왔다. 그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삼베가 놓여 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간은, 그 삼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그 다름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기쁜 부활절 아침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각 사람과,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온 세계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도교 교회의 최대 축일인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교회력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있어 그 어떤 날보다 뜻깊은 날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셨다는 이 믿음의 선언이야말로, 모든 교회의 반석이 되는 신앙고백이요, 교회에 속해 신자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삶의 끝이자,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의 시간인 죽음조차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일뿐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는 새 역사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그렇기에 부활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모두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종말의 시간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펼쳐 가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믿음이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모든 교회와 신자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 간단히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끝이 시작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끝은 말 그대로 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는 새로운 은총의 시간이 시작되는 새날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맞이하게 되는 많은 끝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그 끝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의미를 부여했던 인간관계의 끝,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던 생업의 끝,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던 명성과 영향력의 끝, 그리고 이 모든 끝의 마지막인 생명의 끝, 죽음이 있습니다.

 

삶이란, 그 본질을 들여다보자면, 이 끝을 조금 더 미루고, 이 끝을 어떻게든 피해보자는 몸부림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코헬렛의 말처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3:1)는 사실을 압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는 사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다가오는 종말의 시간을 잠시 피하거나 미룰 수는 있지만, 누구도 그때로부터 예외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아는 지혜로운 이들은 소극적이고 심약한 허무주의자로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끝이 있는 삶이니, 적당히, 대충, 그럭저럭 버티면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일까요? 답은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아닙니다. 인생은, 비록 시작과 함께 그 끝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이야말로 이 최고의 선물인 삶을 충만히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끄는 힘입니다. 끝났지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남들이 실패라고 말하는 순간조차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8:28) 그분의 뜻 가운데 있는 은총의 시간일 뿐입니다. 감당하기 버거운 고난 속에서도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고백했던 욥의 고백처럼,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이에게는 삶의 모든 순간이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다는, 이 신앙고백이야말로 모든 교회의 반석이요, 모든 신자들의 삶이 뿌리내릴 존재의 터전이 됩니다.

 

3.

 

오늘 본문은 이 부활신앙의 시작을 알리는 요한의 증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요한복음의 특이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에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다른 남성 제자들처럼 그 활약상이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복음서가 기록되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사도직 기득권 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마리아와 여성 제자들의 활동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곁에는 늘 여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남성 제자들에 비해 보조적인 등장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성서학자들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요한은, 부활의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찾아 온 제자가 예수님께서 아끼시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라, 다름 아닌 막달라 마리아였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나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된 이도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이를 통해 요한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의 참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를 복음의 수신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참 주님을 사랑하는 삶, 참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의 척도는 바로 충실함(pistos, faithfulness)이라는 가치에 있습니다. 주님께 충실한 삶이야말로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sophia)를 사랑했습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의 의미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현인들은 너나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탁월함’(arete)을 추구했습니다. 탁월함은 삶을 성공과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기술(techne)을 연마함으로써 얻게 됩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도덕적 차원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 탁월함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추구해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습니다. 플라톤 이처럼 지혜를 사랑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삶을 최고의 삶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가치관은 로마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최고의 덕목은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지혜도 아니고, 탁월함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이 참된 삶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가치는 바로 충실함입니다. 충실함은 헬라어로 피스티스이고 우리말로는 믿음으로 번역이 됩니다. 그런데 이 피스티스믿음이 뜻하는 바는,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 믿음을 갖되 거기에서 떠나지 않고, 끝까지 충실하게 그 믿음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바로 피스티스가 뜻하는 바입니다.

 

요한은 지혜를 추구하던 이들, 탁월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떠난 자리를 찾아가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된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소피아아레테를 넘어서는 이 피스티스’, 믿음충실함이야말로 부활신앙을 살아가는 이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이시지만, 주님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마리아의 이 충실함이야말로, 모든 신자의 모범이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지향하는 바를 담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4.

 

요한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20:18)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마리아는, 자신이 만난 주님에 대해 증언하고, 부활의 기쁨을 전했습니다. 주님은, 죄와 사망과 절망이 머물러야 할 자리에 계시지 않으시고, 부활하시어 하나님 나라의 새 역사를 열어가신다는 사실을 마리아는 이제 몸소 체험하고, 이 일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처럼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새 생명을 허락하신 것처럼, 곤고함에 처한 이웃들을 살리는 생명의 길에 나서는 것입니다. 나의 내 가족뿐만 아니라, 더 크신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된 이들을 돕고, 그들과 더불어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영상 하나를 같이 보려고 합니다. 기아대책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국제구호 기구에서 작년 이맘때 코로나19로 침체된 한국교회에 우리의 소명을 되새기게 만든 광고영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으로 인해 근심하는 가운데에서도 기뻐하며,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다른 이를 부요케 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부활주일을 맞아 이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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