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본문: 시편 23:1-6; 에베소서 2:11-22

설교: 홍정호 목사 (2021.7.18. 성령강림 후 제8)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여덟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211절로 22절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신자의 본분과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

 

에베소는 오늘날 터키의 서부 에게 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아테네와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중해 동부의 중심 도시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에 에베소에 머물렀습니다. 3차 전도여행 동안에는 에베소에 2년간 머물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복음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분은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뵌 적도 없습니다. 물론 다매섹 도상에서의 체험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상 전체를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에 비할 바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스스로를 사도라 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진짜사도들, 그러니까 예수님을 실제로 뵈었고, 그분을 따라 길을 나섰으며, 그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 그룹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러한 갈등은 예상할 만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존경하는 스승님이 계신데, 그분 밑에서 오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우리 제자 그룹 바깥에서, 스승님을 뵌 적도 없는 이가 나서서, 마치 자신이 우리 스승님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면, 그것을 곱게 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꼭 이런 경우였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유대인 남성 제자 그룹들로부터 견제를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에 대한 그리스도교 역사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교회의 역사는, 바울이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사도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허물어 그리스도교가 보편 종교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놓은 인물이라 평가합니다. 어떤 이는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의 많은 운동(movement) 가운데 하나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바울이라는 인물이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은 독보적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이 신약성서의 서신에서 가장 즐겨 쓴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세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이 표현은 160회 이상 등장한다고 합니다. 오늘 이 짧은 본분에도 4번이 등장합니다. 아마 그리스도 안에서와 비슷한 표현들을 모두 어우른다면 160회도 훌쩍 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바울의 복음선교 사역의 정수를 담아낸 표현입니다. 누가 제게 바울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와 일치를 추구한 복음의 사도라고 말하겠습니다.

 

3.

 

바울의 삶은 복음선교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만난 공동체의 형편에 맞게 생계를 꾸리면서, 혹은 신자들의 후원에 힘입어서 복음 선교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선교 활동을 펼쳐나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선교 활동의 내용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이었느냐, 그가 펼친 선교 활동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이 본질적인 요소이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복음선교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의 복음선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화해와 일치의 복음을 전하는 말과 실천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끊어졌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말씀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말씀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그러면 선교란 무엇입니까?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말과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진 것처럼,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라져 있는 것을 메꾸고, 높이 쌓여있는 담장을 허물어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는 것, 이것이 바울이 행한 선교의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과 선교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이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말이나 하고, 뒤에다 대충 가져다 붙이는 말이 선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교는 항상 복음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활동,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님의 평화를 전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는 화해와 일치의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보여준, 그리고 우리 모든 신자와 교회의 모범이 되는 복음선교 활동의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분이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을 가르는 담을 가지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다말씀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이 말씀을 읽으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 복음의 정신을 잃어버리면, 신앙 생활하는 게 시간 낭비에 불과 하곘구나, 헛일에 불과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찬물로 세수를 한 것 같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붙잡아야 할 본질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무신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삶이 신자의 본분이요, 교회의 존재 이유구나, 다시금 그 뜻을 되새깁니다.

 

4.

 

끝으로, 어떻게 하면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선교의 삶, 십자가 사랑으로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 속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은,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갈등의 역사가 깊고, 갈등의 역사가 깊은 만큼 상처도 깊습니다.

 

이방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방 사람은, 유대인을 제외한 민족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민족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어떻게 한 민족이 모든 민족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일이 인간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제시한 해법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삶입니다. 민족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일치의 복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것입니다.

 

어려운 말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려고만 하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원수는 영원히 원수로 남고 만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교훈입니다. 타인을 사랑하되, 원수까지 사랑하는 길에 나서려면, 인간적인 사랑으로만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뢰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일전에 6세기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활동했던 교부 도로테우스라는 분의 원의 비유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둥근 원이고, 원의 가장자리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한쪽 끝에 있는 사람과 반대편 끝에 있는 사람은 생각도 다르고, 삶의 조건도 다르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이들이 가까워질 길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도로테우스는 이들 각자가 원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면, 다시 말해, 세상의 중심이신하나님을 향해 나아간다면, 멀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질 것이라 말헀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씀한 바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삷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우리 사회의 비판은, 슬픈 일입니다만, 이제 시대의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각자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하셨던 복음선교 활동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펼쳐나가야 합니다. 막힌 담을 허물어 하나 되게 하신 복음을 전하는 복음선교 활동을 통해 갈라지고 상처입은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물어진 것처럼,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시대에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맑은 샘물과 같은 교회, 빛나는 등대와 같은 교우 여러분 각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주님을 통하여, 복음의 빛이 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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