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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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간

 

본문: 이사야 53:1-6; 요한복음 19:1-16

설교: 홍정호 목사 (2018.3.30. 성금요일)

 

[그 때에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쳤다. 병정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뒤에, 예수 앞으로 나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하고 말하였다.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하고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 폐하를 반역하는 자입니다하고 외쳤다. 빌라도는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론은 히브리 말로 가바다인데, ‘돌을 박은 자리라는 뜻이다.)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1.

 

오늘은 고난주간 성금요일입니다. 최후의 만찬일인 목요일 저녁부터 부활주일 저녁에 이르는 성삼일(聖三日)은 교회 전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교차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고, 다시 유대 사람들 앞에 나오셨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분, 사람들의 환호와 기대 속에 예루살렘에 오셨던 그분은, 이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그들 앞에 서셨습니다. 금 왕관 대신 가시나무로 만든 왕관을 쓰시고,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자색옷을 조롱의 의미로 걸치신 채 그분은, 흥분한 군중 앞으로 끌려 나오셨습니다. “보시오, 이 사람이오”, 빌라도가 주님을 내보이며 말하자,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노라 말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율법을 들어 예수가 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2:27)라고 하셨던 주님,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7:21)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 말씀을 떠나 방황할 때에도 한결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구원의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를 못 박으라고 외치는 대제사장의 무리들은, 생명을 살리라고 주신 율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길을 비웃었던 이들입니다. 율법의 전문가요 권위자를 자처한 이들, 선생님, 선생님, 추켜세우는 소리에 자기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착각에 길들어버린 이들, 그들은 지금, 말씀이신 분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2.

 

빌라도는 관저로 들어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아무 대답 없는 주님을 향해 빌라도는 엄포를 놓습니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빌라도는 지금, 자기의 두 손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밤톨만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어지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착각에 쉽게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권력 있다 생각하는 이들은 타인을 길들이려 합니다. 나에게 충성하면 살고, 나를 배반하면 죽는다는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예수를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이는 빌라도가 아닙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분은 아버지이신 하나님밖에는 안 계십니다. 십자가 신앙은 이 역설에 눈 뜨는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도에게 목숨을 구걸할 수도 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지금 청년 예수의 생살여탈권을, ,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을 권리 전부를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그분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에게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도록 기도하시면서, 그분은 이미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 마음은 십자가 위에서 하신 그분의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In manus tuas, Pater, commendo spiritum meum” (23:46)

 

아버지 손에 모든 것을 맡기신 분, 아버지의 뜻과 하나가 되신 그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죽게도 살게도 하는 이는 이제 빌라도가 아니라,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목숨이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맡겼으니,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모든 일에 수동적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삶을 맡긴이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믿고,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가 끝입니까? 목숨이 다 하는 날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지금부터 영원히,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생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영생에 이르는 모든 순간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에 영혼을 맡긴 이들을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에 흔들림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생탈여탈권을 쥔 빌라도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함 없이, 종말의 시간을 아버지께 맡긴 바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3.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한 민족의 종교 지도자라는 이들, 말씀의 언약을 계승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 민족에 펼쳐야 할 그들 대제사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당신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다는 대제사장들의 길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해치는 이들의 어리석음마저도 아버지의 뜻으로 받들어 모시는 이의 숭고한 삶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의 광기어린 죽임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 위에 계십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거듭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의 길을 나의 길 삼았다는 뜻 아닙니까. 주님께서 아버지께 당신을 맡기신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손에 우리를 맡긴 채 살겠다는 결단이 아닙니까.

 

주님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종말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창조의 첫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의 순종이 오늘 거룩한 성금요일 밤에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순종이 되길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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