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본문: 시편 132:1-12; 요한계시록 1:4-8

설교: 홍정호 목사 (2021.11.21.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십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인,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이자, 한 해의 모든 신앙 여정을 마무리 짓고 왕이신 주님 앞에 서는 왕국주일이기도 합니다. 매년 대림절을 시작으로, 성탄절과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나 긴 성령강림절 끝에 오늘 왕국주일에 이르는 신앙 여정을 떠납니다. 또 한 해의 교회력을 따른 신앙순례를 마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학교에 다니면 학기에 따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봄인가 싶으면 벌써 더운 여름이 되어 방학이 되고, 아직 덥다 싶은 때에 가을학기 개강을 하면 벌써 겨울에 이르러 있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일 년이 잘 구성된 시간 안에서 규모 있게 흘러가고, 그 시간 안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역동성이 일어납니다. 같은 시간 구성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은 매년 새롭습니다. 교회력도 그렇습니다. 교회력은 3년을 주기로 반복됩니다. 복음서 가운데 어떤 본문은 벌써 설교만 네 번째 하게 되는 본문도 있습니다. 말씀과 만나는 일이, 본문을 해설하고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었다면, 네 번째 만나는 본문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만나는 일은, 언제나 하나의 사건입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책을 읽어도, 혹은 똑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느끼고 다가오는 내용이 다 다른 것처럼, 말씀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에 그치지 않는, 우리 삶에 변화와 역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4:12)한다고 말했습니다. 말씀이 일상이 되는 반복 가운데, 생명이 자라나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올 한 해도 교회력을 따른 신앙순례를 마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우리에게 몇 번의 순례가 더 남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전도서의 코헬렛은,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되는 것도 아니”(9:11)라고 말합니다. 삶의 불행과 재난은, 그가 누구인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친다는 것이, 코헬렛의 통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항시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이란 무엇인가요? 바로 우리 삶이 그분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가고 서고 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실상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겸손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지만, 가까이 계신 그분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뜻밖의 고난을 만나거나, 갑자기 길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이르거나,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들이 어긋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예측하고 통제하고 조율하고 다듬으면, 어느 정도 삶의 불확실성을 벗어날 수 있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백번 중에 아흔아홉 번을 잘 하다가도, 한 번 크게 무너지면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이, 코헬렛이 인생을 통찰하며 우리에게 전달해 준 지혜이기도 합니다.

 

결국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한 번의 위기를 어떻게 잘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결국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임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가운데 용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위기 앞에서 돈을 의지하고, 인맥을 의지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자신의 지난 경험을 의지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그분이 우리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시며, 선하고 아름다움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굽어살피시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1:8)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3.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시간의 중력에 이끌려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처음과 끝이 다르고, 시작과 끝의 경계가 다른 것이 분명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3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설마 베드로가 현대 물리학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럼에도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통찰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인생의 유한함을 알고,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무한함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의 고백은,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그분의 무한성(infinity)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야구 명언이 있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입니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근데 야구는 9회 말이 있고, 길어져야 연장전이 있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삶에는 정해진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 축복기도의 문구를 기억하시지요?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제부터 시작해서 영원토록 이어지는 축복입니다. 9회 말이 되면 끝나고, 인생이 끝나면 축복도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받는 축복은 이제로부터 영원토록이어지는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이어지고,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기억되며, 하나님 신앙을 믿음의 유산으로 물려받는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이제로부터 영원토록이어지는 축복의 약속이 바로 예배의 끝에 축도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돌이킬 수 없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처럼 생각되고, 아무 소망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순간을 인생에서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최종 판단을 내가 임의로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이제로부터 영원토록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고, 그 축복의 지속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간적인 부족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삶,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을 일평생 놓치지 않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바울은, 숱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8:37-39) 이것이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겸손이 지닌 큰 힘입니다.

 

4.

 

계시록은, 1세기 말에 로마제국의 일부였던 소아시아 지역의 몇몇 교회들에 보낸 편지입니다. 저자인 요한은, 복음서 요한복음의 저자와 다른 인물인데, 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밧모Patmos라는 섬에 유배된 상태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암호화된 언어로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글입니다.

 

계시revelation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ποκάλυψις의 번역어입니다. 아포칼립시스에서 유래된 영어의 아포칼립스apocalypes는 흔히 세계의 종말, 파멸, 대재앙을 뜻하는 낱말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뜻하는 아포칼립시스와 영어의 아포칼립스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계시는,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꿈을 담아내는 책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케서린 캘러라는 분은, 계시록이 세상을 닫아버리는(close) 책이 아니라, 오히려 닫혀있는 것을 드러내는(dis/close) 책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캘러,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 계시라는 뜻의 의미가 원래 베일로 쌓여있던 것을 들춰내 보인다(uncover)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을, 지구종말에 대한 예견서로 읽는 것은, 계시록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계시록에 대한 오독은, 계시록을 통해 앞날을 예견하려는 책으로 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prophecy, 예견prediction이 아닙니다. 예언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통찰입니다. 예언자의 일은, 시대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니 조심하라는 식의 예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오독하는 이들은, 요한계시록이 장차 일어날 종말을 예견하고 있다고 믿곤 합니다. 그래서 역사적 맥락을 떠나 특정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비역사적 해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엇나간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계시록은, 두 가지 오해, 첫째는, 계시록이 종말에 대한 책이라는 오해, 둘째는, 계시록이 미래를 예견하는 책이라는 오해로 인해, 신약성서의 여러 책 가운데 가장 오독이 많은 책인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여러 복잡한 상징으로 암호화된 계시록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승리자이시라는 선언입니다. 박해와 고난이 지속 되는 상황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 승리자가 되시고, 그분의 교회는 새롭게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앞날에 대한 전망이, 계시록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다시 한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면, 저는 오늘의 이 말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과 끝이 되시고, 모든 역사와 만물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최후 승리의 선언이, 계시록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며, 오늘 말씀 앞에 선 우리들이 새겨야 할 메시지이겠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올 한 해 신앙의 순례를 마치는 왕국주일입니다. 한 해를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합니다. 뭐가 자꾸 감사하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목사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니, 클리셰처럼 생각하실 수도 있고, 저도 그런 성찰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무리 의지를 갖고 목회를 한다 한들, 제아무리 열심을 내겠다고 한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걸음도 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저를 등 뒤에서 밀어내셔서 한 걸음씩 걸어올 수 있었고, 올 한 해의 신앙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고백을 드립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왕국주일을 보내며 여러분은 어떤 고백으로 한 해의 신앙 여정을 마무리 하시고 계십니까? 우리 인생의 알파오 오메가 되시는 주님께, 더 큰 감사와 찬양으로 오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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