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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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

 

본문: 말라기 3:1-4; 누가복음 3:1-6

설교: 홍정호 목사 (2021.12.5. 대림절 제2)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그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고,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리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대망하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오미크론 변이가 전세계에 확산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끝날 것 같던 코로나의 위협이 또다시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코로나로 생계에 직격탄을 맞은 생활인들, 특히 자영업과 소상공인들의 한숨이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매출의 90% 타격을 입었다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여행업뿐이 아니겠습니다. 저마다의 생업에 종사하며 땀 흘려 생계를 이어가던 많은 이들이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았고, 아직도 그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오늘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습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3:4c) 외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 메시아이신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는 대림절의 희망이, 겉치레에 불과한 빈말이 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저는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지만, 기도가 코로나를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흑사병에 직면했던 중세교회의 경험은, 기도가 코로나를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 대신 기도는 코로나로 무너지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든든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병을 못 고치는 데 기도가 무슨 필요인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신체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이미 여러 객관적 증거들로 뒷받침되고 있는 주장입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리 잡고 있어야, 몸도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위협 앞에서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하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기도가 코로나를 막을 수는 없지만, 코로나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든든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흑사병의 위협에 무지하게 대처했던 중세교회의 지난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입니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의 전역을 휩쓴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유럽 전체 인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지금 코로나가 2년째 지속되는 것도 힘든데, 흑사병은 무려 200여 년에 걸쳐 지속되면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야 역사를 돌아보며, 흑사병이 중세의 종말을 고하고, 르네상스와 근대를 이끈 변환의 계기였다고 말하지만,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 공포와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흑사병이 왜 이렇게 많은 지역에, 오랜 기간 전파되었나를 연구한 이들은, 당시의 급속한 인구증가와 열악한 위생시설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교회사 연구자들은, 중세교회의 무지를 그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전통과 경험에 기초한 치료법들을 교회로부터 처방받았습니다. 기도하러 간 성당을 통해 감염이 확산되었고, 신체 접촉을 통한 교회의 치유의례를 통해서도 감염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지만, 누구도 그 잘못을 인지하거나 지적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신성한 종교적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의 무지와 왜곡된 종교적 권위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코로나를 흑사병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교회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이런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신앙적으로 지혜롭고 바람직한 길인지 그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되,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늘 갖는 것입니다. 내 믿음도 중요하지만, 이웃의 건강과 안전이 내 믿음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우리 신자들이 꼭 가져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자유, 자기희생의 기독교윤리이지, 다른 사람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정당화하는 근대의 면죄부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자기희생을 말하는 종교이지, 나의 자유를 위해 당신이 희생하라고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가져야만 우리는 교회의 역사 속 지난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교회를 향한 우리 시대의 불신을 조금이나마 극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매년 대림절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말씀과 만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외친 세례자 요한을 두고, 예수님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11:7-15) 하는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지난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하기 이전의 옛 정체성과 회개한 이후의 새로운 정체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 그가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같은 인물로 칭찬하신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세상에서, 기꺼이 예수님을 위한 조연을 자처한 사람이요, 겸손히 주님을 드높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한 방식은, 바로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1:8) 외치면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회개한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회개란 무엇인가요? 멈춰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悔改)를 뜻하는 헬라어 낱말은 메타노이아’(metanoia)입니다. ‘메타’(meta-)라는 접두사는 ‘~이후’ ‘~를 넘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노이아’(noia)마음’, ‘생각’, ‘을 뜻하는 낱말인 누스’(nous)의 변형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아, 마음을 이전과 다른 상태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마음가짐을, 절망하고 낙심하고 후회하는 마음에서, 은총의 새날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 생각 너머로, 복음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싫어서 거부했던 변화를, 어느 순간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사건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논리나 설득의 결과가 아닙니다. 회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신학적 논리나 설득은, 회개의 입구까지 사람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신학 이론들을 설명하고, 통찰을 제공하고, 지난 경험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잘 전달하는 것은, 목회자로서 의당 해야 할 역할이고 책임입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역할은 거기까지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회개를 선포하고, 회개한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목회자의 할 일입니다. 멈춰 돌아서는 역사,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복음적으로 바뀌는 회개는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있어야만, 그분과의 교통이 있어야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매 주일 예배를 마치며 드리는 축도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회개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를 주의 길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감화하시고 감동케 하시는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복음을 향해 회개한 신자로 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만약 지금 저와 여러분이, 복음의 말씀을 좋아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인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살았고, 이로써 주님께 칭찬받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4.

 

끝으로, 그렇다면 회개한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한 말씀을 짧게 나누고,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회개한 삶은,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한다하는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삶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자신을 날마다 돌아보면서, 산과 언덕처럼 솟아나 있는 교만한 마음, 사치와 허영으로 높아진 마음은 깎아 낮춰서 평평하게 하고, 골짜기처럼 낮아진 마음, 낙심하고, 위축되고, 냉소하고, 절망하는 그 마음은 채워 올려서 평평하게 하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3:6) 하고 선포했습니다.

 

산처럼 솟은 교만과 허영과 욕망은 깎아서 낮추고, 골짜기처럼 어둡고 캄캄한 낙심과 의심과 절망은 희망으로 채우는 삶이 바로 회개한 삶입니다. 굽은 마음을 곧게 하는 삶,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걷던 험한 인생길에서 돌이켜 평탄한 복음의 한길을 걷기로 다짐하는 삶이 회개한 삶입니다. 구원은 바로 그렇게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성령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대림절 두 번째 주일에 우리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주시는 복음의 말씀과 만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요한의 외침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골짜기는 메우고, 굽은 마음을 곧게 하며, 험한 길은 평탄케 하는 삶을 통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요한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을 통해 주시는 이 약속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비천한 자는 높이시는 주님의 은혜가, 돌이켜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길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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