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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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본문: 시편 29:1-11; 누가복음 3:15-17, 21-22

설교: 홍정호 목사 (2022.1.9. 주현 후 제1)

 

[백성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던 터에, 모두들 마음 속으로 요한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더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1.

 

생명의 빛이신 주님의 공현(公現)을 축하하는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 아침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신 주님의 공적 현현, 즉 공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주현절(主顯節, Epiphany)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성탄절과 부활절 사이에서 예수님의 세례와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요, 새로운 창조를 선포하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절기이자 축일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우리 감리교회는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을 세례주일로 성수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빛이신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존재로 드러나게 되었음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세례는 거듭남의 의례입니다. 이전까지는 내가 중심이 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주님 뜻에 순종하며 복음의 길을 따라 살아가겠다는 신자의 결단을 그 자신과 공동체 회중 앞에서 공표하고 공동체의 형제자매 됨을 인정받는 행위가, 거듭남의 의례로서 세례에 담긴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새로운 삶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의례가 세례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생각하다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서 한병철 선생은 리추얼, 즉 의례가 사라진 시대의 풍경을 특유의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유럽에서 종교가 사라지는 현상, 그 가운데에서도 의례가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그 원인을 자본주의적 욕망이 불러일으킨 노동과 자아의 과잉, 현세적 쾌락을 부추기는 문화의 영향으로 진단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만남과 소통이 이전 시대에 비할 바 없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불어넣은 개별적 욕망에 따라 링크(link)를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단절적 만남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만남과 소통이라 할 수 있는, 인류가 종교 의례를 통해 오랜 시간 구축해 온 놀이와 축제의 장으로서의 공동체성은 심각한 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놀랍게도, 근대주의가 철폐해 버린, 그러니까 근대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우리 개신교가 종교개혁의 물결과 더불어 교회에서 추방시켜버린 의례를 다시금 소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손과 공경의 예가 담긴 의례야말로, 삶의 정처 없음을 극복하고 삶을 지속가능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이처럼 중요한 의례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성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오늘 복음 말씀 역시 예수님의 세례 장면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의로운 세례자 요한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가 자기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하고 일침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하고 말하면서, “속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세례자 요한은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가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권력자들이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을 두고, 이를 호연지기(浩然之氣)로 포장하는 일이 종종 있긴 하지만, 요한의 경우에는 광야에서 광인에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말에 목숨이 걸린 사람이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요한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기대감을 가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침없는 요한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나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하는 겸손의 고백입니다. 요한은 오실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권력자들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쓴 소리를 내뱉었지만, 주님을 향해서는 자기 존재의 자리를 아는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겸손이란 이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지지와 추앙을 받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반대와 탄압에 맞서서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분의 뜻 앞에서 겸손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한의 이 겸손을 배우고 싶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삶의 비결이 있다면, 바로 이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자신이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뜻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3.

 

주님은 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 사함의 세례를 받으신 이유를 두고 신학자들은, 그분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죄인 된 삶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세례를 받으셨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홀로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9:12) 말씀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은, 세례를 통하여 당신을 낮추시고,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성령과 불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는 소리가 울려왔다고 전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위하여 몸소 죄인 된 자리로 내려가신 주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향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시고, 좋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도 우리 자녀가 좋아하는 친구는 이름을 알고 좋아합니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라 기억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자녀가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기억하고 좋아합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으실까요? 내가 누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드님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니 그분의 사랑에 힘입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통해 우리는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과 하나 된 삶을 결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한 우리의 이 결단을 기억하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듯 우리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주현절 후 첫 주일을 맞아 세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주님께서 낮아지시어 세례를 받아 죄인들과 하나가 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따라 낮은 마음으로, 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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