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본문: 시편 36:5-10; 요한복음 2:1-11

설교: 홍정호 목사 (2022.1.16. 주현 후 제2)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하였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하였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에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주현절 둘째 주일 아침에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당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주현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오늘의 말씀은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 기사(2:1-11; 4:46-54; 5:2-9; 6:1-15, 16-21; 9:1-12; 11:1-44)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전한 일곱 가지 표적 기사는, 오늘 본문인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은 이야기(4:46-54),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야기(5:2-9),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6:1-15),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6:16-21),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9:1-12),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11:1-44) 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이 일곱 가지 표적 기사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야기로서, 이후로 등장하는 다른 표적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더욱 확고히 믿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말씀입니다.

 

2.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면서 종종 혼인잔치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말씀(22:1-10),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다는 말씀(25:1-13), 그리고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맨 끝자리에 앉으라는 말씀(14:1-10) 등입니다. 또한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신다는 비난에 대해 응답하실 때에도 너희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을,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하게 할 수 있겠느냐?”(5:34) 하시면서, 혼인 잔치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혼인 잔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 하나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복음 말씀에는 크고 작은 잔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왕궁에서 벌인 헤롯의 잔치와 대비되는 광야에서 가난한 이들의 나눔을 통한 잔치 이야기,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람들의 환대를 받아 들어가 먹고 마시면서 벌인 여러 잔치 이야기들이 복음 말씀의 배경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혼인 잔치는 단연 으뜸이 되는 잔치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기쁨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길을 살아오던 두 사람이,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섭리가 담긴 신비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결혼을 성스러운 의례로 지킵니다. 둘을 하나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을 통해 앞으로 이루실 일들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믿음의 서약을 맺은 경건한 의례가 바로 성례로서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나 결혼식이라는 의례의 엄숙함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기쁨입니다.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도 기쁘지만, 그 잔치를 베풀어 손님들을 초대한 부모님과 가족들도 기쁘고, 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도 기쁘고, 손님을 접대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쁜 자리가 바로 혼인 잔치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일주일 간 이어집니다. 잔치가 지속되는 동안 신혼부부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잔치에 참여한 이들은 신혼부부를 축하하고 축복하면서 온 마을이 축제의 자리가 되는 때가 바로 혼인 잔치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수님 비유의 말씀 가운데,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는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크고 중요한 혼인 잔치에 초대를 했는데, 그것도 보통 사람이 아니고 임금이 온갖 음식을 다 차리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모든 준비를 바친 성대한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불렀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떠나가서,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러 갔다니(22:1-10), 그 잔치를 마련한 임금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래서 화가 난 임금이 군대를 보내 도시를 불살라 버렸고, 초대받은 사람들의 자격을 박탈하고, 네 거리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와서 잔치를 가득 채웠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혼인 잔치는,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천국 잔치에 비유될 만큼 모두에게 중요하고 모두가 기쁜 축제의 자리입니다.

 

3.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고 기쁜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잔치의 흥이 떨어지고, 기쁨이 식어버릴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이 기쁨의 혼인 잔치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이 여기서 끝맺음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잔치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그것은 귀한 손님에 대한 환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만군의 주님께서 베푸시는 잔칫상에 올라올 음식으로 포도주를 언급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25:6) 말합니다. 이만큼 유대인의 전통에서 포도주는 손님에 대한 환대를 의미하는 동시에, 잔칫상에서 빠져서는 안 될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주가 떨어졌다, 잔치를 마련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채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아차리시고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하고 알려드렸습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알린 마리아의 모습이 담긴 이 장면에 크게 주목하지 않습니다만, 그리스도교의 다른 형제들인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는 마리아론과 성인론의 중요한 신학적 근거로 가나의 혼인잔치의 이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몇 가지 특징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첫째는, 마리아가 이런 난처한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처럼 우리 신자들이 처해 있는 어렵고 난처한 상황도 가장 먼저 아신다는 믿음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베푸신 것은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 전구(轉求, intercessio)하는 기도,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의 신학에 대해 우리 일부 개신교인들이 마리아 숭배라는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만, 숭배는 모든 그리스도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드리고 있으며, 개신교회가 하지 않는 공경을 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개신교회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본문이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잠시 신학적 차이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4.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이 본문을 두고 성인의 전구하는 기도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반면, 우리 개신교회 성서해석의 초점은,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와 일꾼들의 전적인 순종에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여 그 기쁨을 누리며 삽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이 잔치를 준비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포도주가 떨어진 사람처럼, 우리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바닥을 드러내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포도주가 없어 잔치가 위기를 맞이한 것처럼,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서, 혹은 잘 준비하고 계획했다고 믿었던 것들이 뜻밖에 변수들을 만나 어긋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말한 마리아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지만, 예수님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하고 그 믿음과 순종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바로 이 마리아의 순종,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이야말로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 달라고 청하기 전에 그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일꾼들 역시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에 담긴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하신 말씀에 대해서고 그렇게 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일으키신 이적은, 마리아와 일꾼들의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이루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단지 주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포도주는 마리아와 일꾼들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은총의 신비이자 선물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잔치에 참여한 이들의 반응입니다. 그들 나머지 사람들은 이것이 어떻게 난 포도주인지를 모른 채,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고 말합니다.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본래 물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마리아와 일꾼들의 전적인 순종을 통해 이루신 기적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 은총의 선물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이들의 순종하는 믿음 덕에 혼인 잔치가 지속되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

 

5.

 

오늘 복음 말씀에 앞서 읽은 시편의 시인은,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은총의 선물이자 잔치의 장소인 우리 인생에서, 꼭 있어야 할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난처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을 잃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인간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으며,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고백했던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생명의 샘이신 주님께 자비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샘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난처한 상황을 만나서도 우리는 낙심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리아와 일꾼들의 순종을 본받아, 주님을 믿고 그분께 우리 삶 전체를 그분 손에 맡길 때, 끝을 향해 치닫던 혼인 잔치가 새로운 기쁨으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좋은 포도주가 뒤에 나온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말씀의 신비이며, 말씀을 받들어 살아가는 신자인 우리가 누리는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현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심으로 우리 삶에 환한 빛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만나서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그분에게서 솟아나는 참 생명이 주님 은총 가운데 우리를 가득 채울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도 이 믿음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순종함으로 그분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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