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오늘 이루어지는 복음

 

본문: 시편 19:1-14; 누가복음 4:14-21

설교: 홍정호 목사 (2022.1.23. 주현 후 제3)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주현절 셋째 주일 아침에 교우 여러분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에 당신을 드러내신 주현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누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광야의 시험을 이기시고, 성령의 능력을 입어 갈릴리로 돌아오신 이후의 일을 복음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믿으며, 이를 전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분의 행적, 그분에 관해 전하고 있는 성경의 모든 내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복음(福音)이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행적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복음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며, 모든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하는 복음 말씀을 듣고, 이를 우리 삶의 이정표로 삼으며 살아가고자 힘씁니다.

 

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kerygma)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라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 즉 케리그마를 향합니다. 최초 기록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전하신 메시지 역시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1:15)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말뜻 그대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구원이 실현된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나라이며, 모든 일이 그분의 뜻 가운데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신학적 논의는 이 짧은 설교 시간에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깊고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안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신 주님의 기도 안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특정한 정치사회적 체제나 제도를 옹호하기 위한 용어가 결코 아닙니다. 신학적 설명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인간이 지닌 원죄 즉, 자기에게로 구부러지려는 욕망을 뜻하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과 탐욕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정치사회 체제나 제도도 하나님 나라의 완전성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드러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이며, 그 나라는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기에 오직 선포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복음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그 메시지의 핵심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을 전합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가 되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어”(1:35)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3:22)고 전합니다. 또한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4:1) 가셨으며, 이제 광야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4:14)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자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복음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에서부터 세례와 공생애의 모든 과정에서 성령께서 임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이끌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와 공생애뿐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신학 전체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의 일체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에 이르는 구원사의 전 과정에서 그분과 온전히 하나이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언제나 곁에서 사랑으로 돌보시며,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복음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불씨를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또한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신자로 산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이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리 인생의 이정표로 세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바로 신자이며, 거룩한 복음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인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이 복음의 길을 따라 신자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방향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물론 경제적 궁핍을 일차적으로 의미합니다. 갚을 수 없는 큰 채무를 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가난은, 경제적 궁핍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의미에 대한 갈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의미에 대한 갈망과 관련하여 저는 최근 인상깊은 책 한 권을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손꼽으며, 우리 시대의 에라스무스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존경하는 신학자이자 사제인 한 분의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습니다. 작년 46일 선종하신 한스 큉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하는 책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신학자이면서도 가톨릭교회의 교황무류성을 비판하고, 마리아의 무염시태(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 성모승천 신학 등에 비판적이었던 한스 큉은, 1962년부터 65년까지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최연소 신학자로 참여했고, 20세기 가톨릭교회과 개신교회의 대 신학자인 칼 라너와 칼 바르트 등과의 친밀한 교분 속에서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그 누구보다 힘쓴 사제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를 사랑했지만, 교회의 교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신학이 현대사회의 신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지적해 왔으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 아시아종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에도 큰 힘을 기울인 신학자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대한 극렬한 비판자들이나 냉소주의자들은 우리 개신교회에 더 많습니다. 아예 무교회주의를 설파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회의 제도나 조직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지 못한 채 형식주의의 위험을 앞서 경계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스 큉을 오래동안 존경하고, 최근 그분의 회고록 성격의 책을 감명깊게 읽는 이유는, 한스 큉이 그 어떤 신학자보다 명료하고, 그 어떤 사제보다 당당하지만, 그러면서도 신앙에 대한 맑은 통찰과 겸손, 교회에 대한 사랑과 순명을 잃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가톨릭교회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신학 교수직을 박탈당해 튀빙겐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평생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뿌리내린 교회 전통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톨릭교회의 한계를 넘어 그리스도교의 다른 형제들과 이웃종교에 이르기까지 일치와 화합을 위해 일평생 헌신했다는 점에서 큰 감명을 받습니다.

 

그러한 한스 큉은 우리 시대를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로 진단합니다. 이전 시대에는 비교적 명확하던 삶의 가치와 지향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누구도, 그 무엇도 어떤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캐물으라고 강요할 수 없는 의미-물음이 상실된 시대를 우리 시대의 풍경으로 지적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가 죄다 망가졌고 희망이 없다는 냉소를 품고 있으며, 현실의 변화를 위해 힘쓰기보다는, 현실에 어떻게 적응하여 살아가기만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한스 큉은, 이런 시대에 교회와 하나님 신앙이 삶의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슬그머니 언급합니다. 이전 시대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비할 바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의미에 대한 갈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담은 복음이 그 의미에 대한 갈망을 해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넌지시 건네고 있는 것입니다.

 

4.

 

누가는 이처럼 의미를 잃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다음의 몇 가지로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첫째,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다는 의식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 시대의 문제는 자유의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소외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롭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무언가에 매여 자유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은 강단의 말씀에 집중하고 계십니까? 혹 다른 생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유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자유의 다른 모습입니다.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행위는, 이처럼 무언가를 할 자유만이 아니라, 하지 않을 자유 역시 선포하는 것입니다.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둘째,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눈 멀었다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내가 눈 뜨고 산다는 자의식입니다. 우리 시대는 원죄에 대한 신학적 논의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근대인들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관한 의식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일견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눈 뜬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한번쯤은 자기에게 진지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지만, 본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것, 내가 보는 것이 전체의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의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심을 할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한다는 것은, 단순히 계몽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계몽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이 이성적이라는 자의식으로 충만한 우리시대의 사람들을 향한 눈 뜸의 선포이기도 합니다.

 

셋째,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되겠습니다만, 특별히 삶의 기본적인 필요들, 경제적이고 정서적인 필요들을 채워 그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억압을 오랫동안 당한 끝에 스스로를 지키는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입니다. 깨진 그릇이 되어 자기와 타인에게 날카로운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이, 복음서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치유하시고, 공동체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복음은 이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는 하나님 해방의 기쁜 소식입니다.

 

끝으로,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는 특별히 구약의 희년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서, 땅도 쉬고 사람도 쉼으로써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는 희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흔히 믿음은, 용납의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짐의 체험이 믿음입니다. 부모님에게, 가족에게, 교회 공동체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은해의 해는 이렇듯 희년의 쉼과, 안식, 모든 피조물의 조건 없는 받아들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입니다.

 

5.

 

주님은 이 말씀을 읽으신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위에서 말씀드린 복음은 단지 선포되었을 뿐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을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와 실현되었음을 믿는 것이 선포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아주 먼 나중의 이야기 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세상의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바로 그 시간 같은 자리에 있는 어떤 이에게는, “오늘 이루어지는 하나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요, 복음 말씀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현절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하신 주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그분이 하신 모든 일들을 기록한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한 주간도 오늘 이루어지는 복음 말씀에 대한 갈망을 품고, 성령의 동행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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