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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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려두고

 

본문: 시편 138:1-8; 누가복음 5:1-11

설교: 홍정호 목사 (2022.2.6. 주현 후 제5)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밀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절기상 입춘을 지나 맞이하는 오늘은, 빛이신 주님께서 온 천하에 당신을 드러내신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누가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주님은,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이들을 말씀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갈릴리로 돌아오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 부름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부름 받은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주님께 부름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갈 주제가 있습니다. ‘사도직의 의미입니다. 사도직에 대한 이해는 교회의 전통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때문에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임원교육을 통해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μίαν, αγίαν, καθολικήν καί αποστολικήν Έκκλησίαν)라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주님의 한 몸인 교회가 동/서방 교회로 분열되고, 서방교회가 다시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 개신교로 분열되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고백을 우리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기억하고, 신앙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갈라진 신자들의 일치와 화합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바치신 기도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17:11)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기도를 기억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갈라진 형제들은, 매년 118일부터 125일까지 8일 동안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으로 정하여 다양한 전통과 신앙 고백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지향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정교회, 한국천주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개신교회가 참여하고 있으며, 갈라진 모든 교회들이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교회임을 기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라진 그리스도교의 형제들 간의 일치와 연합의 노력은, 개신교회가 주축이 된 20세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오랜 노력이 바탕이 되었고, 가톨릭교회 개혁의 결실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1992-65)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 100주년을 기념할 만큼 오래된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연합의 노력은, 교회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와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라는 기구가 생겨나면서, 그리스도교회의 갈라진 형제들인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노력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갈라진 형제들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노력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 길에 접어들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개신교회의 전통을 비교하며 장단점을 서로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는 우리 감리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부터 갈라져 나온 헨리 8세의 영국국교회(성공회) 개혁운동에 그 뿌리를 둔 까닭에 성공회와 더불어 감독교회의 제도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개신교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갈라진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이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 신앙의 과제라는 근원적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개신교회는 서로의 풍부한 신앙전통과 유산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이로써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교회로서의 본질을 추구하는 형제들로 함께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한 면을 서로에게 배우려는 겸손과 관용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가톨릭교회의 전통만으로는 오늘날 탈권위적인 자유주의 문화 속에서 출현하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에 동시대적으로 응답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가톨릭교회 내 개혁적인 성향의 신학자들이 이런 문제들을 오랫동안 지적해 오고 있지만, 위계적 질서가 공고한 탓에 수용이 제한적이라는 반성이 있습니다.

 

반면, 개신교회의 전통만으로는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장점은 개방성과 다양성이라 할 수 있지만, 개혁의 이면이 분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각종 명분을 앞세워 갈라지고, 새로운 종파를 만들고 다른 교회를 세우는 것을 두고 개혁이나 대안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우리 개신교회의 문화인만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대적 자유와 주체성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성숙을 위한 노력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차원의 성숙을 위한 노력이란, 달리 말하자면, 자유의 자발적 포기와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체적인 사람들이지만, 모든 일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이루기 위해 힘쓰는 종의 삶을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내려놓고 주님 뜻에 순명하는 신앙인의 겸손을 우리는 가톨릭교회로부터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또한 정교회 역시, 제가 잘 모르긴 합니다만, 오랜 서방교회와의 대립을 통해 동서분열과 갈등의 역사가 깊은 만큼, 이슬람권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평화적 공생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방교회인 가톨릭과 개신교회가 정교회의 역사와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이 모든 교회들이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교회라는 신앙고백 가운데 일치와 연합을 이루겠다는 다짐과 실천이 바로 매년 118일부터 25일까지 지키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의 의미입니다. 동서로 갈라지고, 같은 종파 안에서 수많은 분파로 갈라진 형제들이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17:11) 하신 주님의 기도에 응답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회의 전통과 신앙고백의 내용이 다양한 만큼 사도적 교회이라는 고백이 갖는 의미도, 갈라진 교회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사도직의 의미를 사도 베드로로부터 계승되는 주교에게 안수를 받은 성직자를 통해 평신도에게 전달되는 직무로 이해합니다. 반면, 개신교회는 모든 신자의 사도직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오래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회 내에서 위계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목사는, 모든 신자에게 부여된 사도직의 하나로서 목사직을 수행하는 것뿐이며, 성직 안수를 받은 사람만이 아닌 모든 신자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사도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개신교회의 사도직해석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베드로를 부르신 이야기는, 특별한 사도 한 사람을 부르신 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모두를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이 됩니다.

 

3.

 

주님은 어부 시몬을 부르셨습니다. 갈릴리의 거친 바람과 싸우며 어부로 살아온 시몬에게 생업인 고기잡이는 삶의 터전 그 자체였습니다. 시몬은 밤새 고기잡이를 위해 애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시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 기운은 빠졌겠지만,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일들도 그렇겠습니다만, 고기잡이는 더욱, 열심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몬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잘 잡히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아주 안 되는 날도 있다는 것을 갈릴리의 어부 시몬은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몬에게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5:4b)

 

고기잡이에 대한 경험이라면 시몬이 예수님에 비할 바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응답했습니다. 시몬의 이러한 응답은, 같은 복음서인 누가복음 9장에 나오는 어떤 사람의 주저함과 대비를 이룹니다. 주님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람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주님, 제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9:59)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또 다른 사람도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

 

누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사람들의 주저하는 모습과 시몬의 즉각적인 응답을 대비합니다. 시몬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하신 말씀에 즉각 순종했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시몬만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에 대해 전하는 복음서는 공통적으로 버려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그들 손에 쥔 것들을 버리고(1:18; 4:20)” 떠났고, “남겨두고(1:20)” 떠났고, “버려두고(5:11; 5:28)” 떠났고, “놓아두고(4:22)” 떠났습니다.

 

4.

 

이러한 시몬의 모습을 통해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신자로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 덕목을 말씀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는, 순종입니다. 시몬은 고기잡이에 능통한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앞세우기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가 고기잡이에 있어 예수님보다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하신 분이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씀하셨느냐가 아니라, 누가 말씀하셨느냐, 시몬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시몬이 순종한 이유는, 그것이 주님께서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겸손입니다. 시몬은, 주님 앞에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크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달리 말하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죄인인 우리가 감히 영접할 수 없는 분이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이유는, 그분이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를 만나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 믿음과 관습으로 굳어진 신앙생활은, 이러한 겸손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가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고 여기며,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이 만나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몬은,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안 사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는, 실천입니다. 시몬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한 결정적인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실천입니다.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도,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실천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앙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하신 예수님 말씀에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는 요청도,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먼저 나누고 오겠다는 말도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예수님을 따라간 실천, 이것이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5.

 

이러한 사도 베드로의 모범을 철저히 따르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전통에는 교회와 더불어 수도원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만, 수도원은 따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데, 수도원에 속한 수도자들은 세 가지를 서원하고 일평생 이를 지킵니다. ‘순명순결청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완덕)을 철저히 추구하기 위해 교회의 명령에 순명할 것, 독신으로 살면서 주님만을 섬길 것, 개인 소유를 갖지 않고 청빈하게 살 것이 그 약속들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주님을 따른 사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모든 신자의 사도직을 주장하는 우리 개신교는 이런 수도자들을 따로 두지 않습니다. 큰 교회들은 교외에 기도원을 가진 경우들이 있습니다만, 이는 수도원과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명과 순결과 청빈이라는 수도회의 서약을 기억하면서, 우리 일상에서 이를 신앙의 원칙으로 삼아 생활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재가 수도회입니다. 개신교회 영성은, ‘재가 수도회의 영성입니다. 비록 세상에 몸 담고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명과 순결과 청빈이라는 완덕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지키고자 삶의 터전에서 힘쓰는 사람들이 신실한 개신교인들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은 교회의 직무뿐만 아니라 생업에 있어서도 그것을 주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으로 알고 주님께 하듯 성실히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우리 개신교회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주님을 따른 사도의 모범을 따르는 신앙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베드로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어떤 응답을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신 은혜에 순종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따르며, 생활의 실천으로 부르심의 열매를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순명과 순결과 청빈의 약속을 통해 주님의 복음을 전한 수도사들의 모범을 따라 우리의 생활 속 주님의 뜻을 전하는 거룩한 부름 받은 일꾼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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