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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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본문: 예레미야서 17:5-10; 누가복음 6:20-26

설교: 홍정호 목사 (2022.2.13. 주현 후 제6)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주현절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예레미야는 주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수십 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아김, 여호야긴, 시드기야가 차례로 유다를 다스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예언자의 직무를 담당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의 직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약속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구약성경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 두 가지가 있습니다. 구약은 이 두 가지 낱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두 가지 낱말은 바로, ‘선택계약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당신의 백성을 불러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불러 선택하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선택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이유는, 구원의 대상인 동시에 도구인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는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12:1-3)

 

또한 모세에게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그 이름을 친히 알려주셨습니다. 이름에는 그 이름으로 호명되는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내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름을 통해 우리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우리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그 대상의 위상, 즉 내 삶에서 그의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상태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호명 속에 대상의 본질을 담아내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대상이 차지하는 위상(位相), 즉 위치와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이름이 갖는 이러한 무게를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중요한 당신의 이름을 친히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3:13) 그러자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친히 일러 주셨습니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3:14)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3:15)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모세를 통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시내산에서 당신이 선택하신 백성들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의 내용이 되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 전체에는 하나님의 선택과 그분과 맺은 계약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흐름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계약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구약의 예언자들의 직무에 대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구원의 대상이자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도구로 들어쓰시고자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선택계약을 잊고 살 때, 그러니까 그들이 마치 선택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살고, 하나님과 무관한 것처럼 살아갈 때 그들을 일깨워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 하나님의 선택과 그분과의 계약으로 돌아가도록 그 뜻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위기 때마다 모세의 이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하나님의 선택과 그분과의 계약이라는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이들이었습니다.

 

3.

 

오늘 예레미야서의 말씀은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계약이라는 존재의 근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절박한 외침이 바로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17:5,7)

 

예레미야에게 붙은 별명이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혼돈의 시대, 민족의 명운과 백성의 삶이 짙은 안개와도 같은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내몰리고 있던 시대에 그는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예레미야”(1630)라는 그림을 통해 혼돈의 시대 예언자로 부름 받은 예레미야의 인간적인 고뇌와 고독을 묘사했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이 무너진 뒤 새롭게 부상하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구명도생(苟命圖生)해야 했던 역사의 격동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예언자로 산다는 것은 참 고단한 일이었을 겁니다.

 

예언자로 사는 것이 고단한 까닭은, 예언자란 평형추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월터 부르그만 외/차준희 옮김, 신약의 렌즈로 본 구약개관, 새물결플러스, 2016, 393-395). 예언자는 모두 희망에 매달리고 있을 때는 심판을 설교하고 모두 절망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희망을 말하는 사람입니다(존 콜린스/유연희 옮김, 히브리성서 개론,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278). 그렇기에 예언자는 고독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위로받기를 포기하고, 오직 선택과 계명이라는 본질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격려와 사랑에 힙 입어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예언자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셨을 때 예레미야의 첫 마디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였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1:6)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1:5)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부르심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자신이 말을 잘 할 줄 모르고, 아직 어리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변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로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1:7-8)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여 시대를 거슬러 선택과 계약이라는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예언자로 살았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4:24)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단지 그 예언자가 고향 출신이라 그를 어려서부터 잘 알기 때문일까요? 그것이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의 전부일까요?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구약의 예언자의 역할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예언자들이 고향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이유는, 고향이 편안한 장소, 달리 말하자면, 길들여진 삶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해 왔던 방식 그대로 살아가도 아무 문제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 관습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장소가 바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선택과 계약이라는 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할 사명을 떠안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장소인 고향에서는 그 저항이 다른 곳보다 클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마저도 고향에서 환영을 받으실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부르시면서 그의 입에 손을 대시며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였다.”(1: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맡기신 일은 누구라고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세워주시는 것까지는 영광스러운 일인데, 그 다음 맡기시는 직무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들입니다. 앞서 세워 놓은 것들을 뽑고, 허물고, 멸망시키고, 파괴하라니! 입장을 바꿔, 앞서 세워놓고, 잘 세워놓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화나 날 일이겠습니까? 자기 존재를 온통 부정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하고 탄식했습니다. 저라도 이런 일을 맡기신다면 예레미야처럼 탄식할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선택과 계약을 떠나 잘못 세워진 것들을 뽑고, 허물고, 멸망시키고, 파괴하는예언자의 직무가 선행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하실 일, “세우며 심는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언자는 이 일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밭에 돌을 골라 낸 후에야 씨를 뿌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5.

 

이러한 직무, 길들여진 사람들의 장소인 고향에서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이러한 예언자의 직무는, 사실 모든 예언자의 공통 직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예레미야가 앞선 예언자들과 달랐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레미야는 다윗왕의 시대 이후로 수없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타락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내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불가능하고, 선택과 계약이라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7:9) 하고 탄식한 이유입니다.

 

예레미야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선택과 계약의 본뜻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께로부터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믿고 의지해야 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우리 삶의 구심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지 않고, 사람은 지금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을 의지하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한분이신 야훼 하나님뿐임을 상기시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과 계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약속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통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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