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믿음으로 산다는 것

 

본문: 창세기 45:3-11,15; 누가복음 6:27-38

설교: 홍정호 목사 (2022.2.20. 주현 후 제7)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흉년이 든 지 이태가 됩니다. 앞으로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곧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하는 말이라고 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하나님이 저를 이집트 온 나라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센 지역에 사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여러 아들과 손자를 거느리시고,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나 더 계속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안과 아버지께 딸린 모든 식구가 아쉬운 것이 없도록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여쭈십시오./ 요셉이 형들과도 하나하나 다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제야 요셉의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 받았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현 후 일곱 번째 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말씀은, 창세기 45장의 요셉의 화해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는 오늘의 말씀은, 야곱이 그 형 에서와 화해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구약성경이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화해의 이야기로 손꼽힙니다. 성경이 전하는 모든 화해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무셨고, 자기 안으로 구부러져 서로에게서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랑으로 이으셨습니다. 오늘은 구약성경이 전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이 전하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요셉은 익숙한 이름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신자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습니다. 교회력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3년에 한 번 같은 본문을 만나게 됩니다. 저만 해도 벌써 우리 교회에서만 어떤 본문은 4, 어떤 본문은 3번째 만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본문을 여러 번 만나면서 다소 놀랍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습니다. 같은 본문으로, 같은 장소에서, 심지어 같은 사람들과 말씀을 나누는데도, 그 말씀을 통해 허락하시는 은혜가 때마다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지나간 시간만큼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하는 힘의 근원이 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함을 교회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세상 모든 이에게 처음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미리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낯선 시간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낯선 시간이라 할지라도, 삶의 뚜렷한 지향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며 사는 사람과, 복음의 말씀을 자기 삶의 뚜렷한 이정표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은 다릅니다. 교회력과 교회력에 따른 말씀은 우리 인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좌표이자 나침반입니다. 오늘 우리는 익숙한 요셉의 이야기를 낯선 시간 앞에서 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납니다.

 

3.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언약을 이어가는 가문에 속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에게서 얻은 첫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을 향한 야곱의 사랑과 관심은 특별했습니다. 야곱의 다른 아내인 레아에게서 태어난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시기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37:4)고 전합니다. 야곱의 집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던 형들이 요셉의 등장과 더불어 조연이 되어버렸고, 요셉이 성장함에 따라 그나마 조연도 맡기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리는 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하는 창세기의 기록은, 태초에 관한 기록이라 믿을 수 없는, 마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 같습니다.

 

요셉은 한편으로는 부유한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형들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사서 은 스무 냥에 이집트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옥동자에서 하루아침에 노에로 전락하는,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거기에서 바로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 관리인이 되었다는 말 한 마디에는, 그간 요셉이 흘린 눈물과 땀의 모든 결실이 담겨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모진 고생 끝에 그는 성실함과 탁월함을 인정받아 보디발의 집안일과 그 모든 재산을 맡아 충실하게 관리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어쩌면 이 때도 요셉의 마음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꼭 성공해서, 나를 여기에 팔아버린 형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이 그를 이곳까지 이끈 힘의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에 요셉은 또 뜻밖의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눈물과 땀으로 일군 모든 터전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이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모함에 의해서 이런 비극을 겪었으니, 그 억울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타지가 아니라, 감옥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에게 배신당해 팔려온 이집트에서, 이번에는 주인에게도 버림받아 언제든 죽을 운명에 놓이고 만 것입니다. 두 번 다 요셉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뜻을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의 상에 술을 올리는 시종장을 만나게 되고, 그의 꿈을 해몽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도 요셉도 그 일을 잊어버리고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책이 회복된 시종장이 바로에게 술을 올리던 때에 우연히 요셉을 떠올리고, 바로에게 요셉이 꿈을 해몽해 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요셉을 불러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고, 요셉은 바로의 꿈을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으로 해몽하면서 이집트가 흉년을 대비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합니다. 요셉을 눈여겨 본 바로는, 그를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형들에게서 팔려 이집트로 온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죽을 운명에 놓였다가, 시종장과의 뜻밖의 인연을 통해 이집트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총리가 된 요셉은, 흉년을 대비하여 이집트 곳곳에 기록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양의 곡식을 저장했습니다. 곧이어 요셉의 말대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시작되고, 곳곳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사람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구하러 찾아왔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다시 만난 때는 바로 이 때입니다. 요셉은 단 번에 형들을 알아봤지만, 형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 형들을 모른 체 하며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습니다. 그리고는 형들을 첩자로 몰아세워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둡니다. 영문을 모르는 형들은 당황했지만, 요셉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그들을 용서할 마지막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요셉은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45:5,8)

 

4.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아 넘겼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나쁜 기억에 붙들려 자신과 타인을 무너뜨리는 길을 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의미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재해석하는 길이었습니다.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고백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분노와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삶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뜻을 알 수 없는 일 앞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했습니다. 요셉은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을 고난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요셉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그의 영광만이 아닙니다. 주목할 점은 오히려 다른 데 있습니다. 그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분의 약속을 굳게 붙들었다는 것, 이것이 요셉의 위대함입니다.

 

형들에게 팔려 종으로 팔려가며 나락을 떨어졌을 때에도,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다 모함으로 다시금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감옥에 갇혀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길 모두에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용서는 이러한 믿음이 빚어낸 결실입니다. 자신이 겪어 온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고백하는 사람의 믿음의 열매입니다.

 

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6:27-2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원수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니 원수가 된 것인데, 주님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높은 윤리적 기준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길 원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그러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심지어 축복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6:35)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한 일, 보디발의 아내가 한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의 욕심과 시기가 빚어낸 잘못의 희생자가 되었음에도 그는 이 모든 일들을 한 인간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강요할 수 없는 일, 그야말로 믿음의 고백입니다. 교회는 피해자인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용서하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비겁함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신안인 더 이상 지난 일에 붙들려 살지 않고 새날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요셉처럼 지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고백하도록, 그의 신앙과 삶의 성숙을 도와야 합니다.

 

불행한 일입니다만,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원수와 같은 처지에 놓이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왜 없겠습니까? 예수님도 그런 이들에게 그야말로 둘러싸여공생애를 보내셨는데, 우리가 누구라고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사람이 없겠습니까? 타인과 대면하며 사는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적대적인 관계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다른 이유는, 이런 적대적인 관계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있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적대마저도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 사랑을 의지하여 원수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6:27,35)”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를 만나서도 잊지 않고 꼭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이가 받는 큰 상,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더 없이 높으신 분께 속한 사람, 그분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에게는, 고난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습니다. 그분이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로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오르막길에서만 아니라 내리막길에서도, 곧게 뻗은 평탄한 길을 갈 때만이 아니라 거칠고 굽은 길을 갈 때에도, 언제나, 어디에서나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은총과 사랑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11:38)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 위에 굳게 서서, 세상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라 고백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요,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받을 큰 상, 더 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된다는 말씀이 뜻하는 바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삶의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지 않은 요셉의 믿음이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를 만나서나 선하신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그분이 축복의 언약 가운데 우리가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주님 (2021.12.31. 송구영신예배) 홍목사 2022.01.01 22
33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2022.1.2.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홍목사 2022.01.02 57
32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2022.1.9. 주현 후 제1주) 홍목사 2022.01.09 36
31 생명의 샘이 주님께 있습니다. (2022.1.16. 주현 후 제2주) 홍목사 2022.01.16 52
30 오늘 이루어지는 복음 (2022.1.23. 주현 후 제3주) 홍목사 2022.01.23 66
29 주님 밖에는, 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2022.1.30. 주현 후 제4주) 홍목사 2022.01.30 59
28 모든 것을 버려두고 (2022.2.6. 주현 후 제5주) 홍목사 2022.02.06 53
27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2022.2.13. 주현 후 제6주) 홍목사 2022.02.13 70
» 믿음으로 산다는 것 (2022.2.20. 주현 후 제7주) 홍목사 2022.02.20 75
25 깨어나 영광을 보다 (2022.2.27. 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삼일절기념주일) 홍목사 2022.02.27 44
24 삶이라는 광야에서 (2022.3.6. 사순절 제1주) 홍목사 2022.03.06 71
2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2022.3.13. 사순절 제2주) 홍목사 2022.03.13 71
22 뉘우쳐 고치는 용기 (2022.3.20. 사순절 제3주) 홍목사 2022.03.20 66
21 삼 형제 (2022.3.27. 사순절 제4주) 김준영 2022.03.27 74
20 주님을 위한 잔치 (2022.4.3. 사순절 제5주) 홍목사 2022.04.03 30
19 나라가 임하시오며 (2022.4.10.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고난주일) 홍목사 2022.04.10 43
18 다 이루었다 (2022.4.15. 성금요일) 홍목사 2022.04.16 27
17 부활의 아침 (2022.4.17. 부활절, 부활주일) 홍목사 2022.04.17 45
16 주님이 보내실 때에는 (2022.4.24. 부활절 제2주, 교회창립 기념주일) 홍목사 2022.04.25 69
15 회심과 성화 (2022.5.1. 부활절 제3주) 홍목사 2022.05.01 3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2 43 44 45 46 47 48 49 50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