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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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 영광을 보다

 

본문: 출애굽기 34:29-35; 누가복음 9:28-36

설교: 홍정호 목사 (2022.2.27. 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삼일절기념주일)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현절 마지막 주일 아침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전쟁의 공포와 고통 가운데 있는 우크라이나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1.

 

러시아의 침공 소식이 알려지자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안타까운 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오는 재의 수요일을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는 평화를 위한 단식의 날로 지내자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선포했고, 어제는 교황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이례적으로 찾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와 스테판 코트렐 요크 대주교 역시 러시아의 침공을 큰 악행이라고 비판하면서 주일인 오늘을 평화를 위한 특별기도의 날로 지낼 것을 촉구했고, 앞서 재의 수요일 평화를 위한 단식의 날로 지내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안에 지지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국 정교회는 어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어 고국에 가족을 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로하고,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개신교회의 기도와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신교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 24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가 답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부다페스트협정의 이행과 러시아 군대의 즉각 철수를 촉구했습니다. 교회협의회 성명에서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세계 정교회를 향해 평화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실천하도록 요청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같은 정교회에 속한 교회들이지만, 정치적 소용돌이 가운데 지금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정교회 신자수로 최대 규모인 러시아 정교회를 향해 교회협의회가 평화의 사도로서 사명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는 점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극심한 대립과 갈등 상황에서도 주님의 교회의 한 지체임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책임이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 양심에 따른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할 것 없는, 세계 그리스도교회의 모든 갈라진 형제들이 우크라이나에 큰 고통을 안기고 있는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며 군대의 철수와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교회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보편정신에 비추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주현 후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변화주일인 동시에 감리교회가 삼일절기념주일로 지정하여 지키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삼일절을 국가기념식이 아닌 교회의 기념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삼일운동에 나선 신앙의 선조들의 비폭력 평화정신을 오늘 감리교회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로 만세운동에 나선 이들, 그들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회는 교회가 속한 장소의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후대에 계승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은 단지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기억은 신앙의 기억이고, 교회의 계승은 신앙의 계승입니다. 유대 신앙의 핵심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영웅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민족의 역사를 후대에 계승하는 유대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선조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오늘 김수경 장로님의 1주기 추모예배를 교회에서 드리고자 했습니다만, 지난 주 코로나 환자가 급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교우 여러분의 건강을 염려하는 유가족 교우들의 뜻을 존중하여 급히 추모예배를 취소하였습니다. 김수경 장로님 추모예배를 교회에서 드리시자고 여러 차례 권고를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김수경 장로님의 하나님을 우리 모든 교우들이 기억하고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는 것은 그 가족의 일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의 기억은 신앙의 기억이고, 교회의 계승은 신앙의 계승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고인을 함께 기억하며 추모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분이 만난 하나님, 고인과 일평생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경배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김수경 장로님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의례가 바로 추모예배에 담긴 의미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추모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만, 교우 여러분 모두 이러한 뜻을 기억하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듯이, 김수경 장로님과 일평생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한 분이신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일인 변화주일입니다. 변화주일에는 높은 산에 올라 변모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만납니다. 성경에서 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입니다. 구약성서의 산은,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고독과 결단의 장소입니다. 모세는 깊은 고뇌 속에서 시내 산에 올라 하나님을 만나고 십계명을 받아 길 잃은 민족의 나아갈 바를 알렸습니다. 선택과 계약이라는 구약의 거대한 두 흐름이 완성되는 장소가 바로 산입니다. 또한 산은, 하나님의 승리가 선언되는 장소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이들 850명과 대적하여 승리한 장소 역시 산입니다.(왕상 18:17-40) 또한 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견고한 요새이자 피난처, 성전이 있는 장소입니다. 이처럼 산은, 구약성서의 역사적 사건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신약에서도 산은 특별한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앞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9:23)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9:24) 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이것저것 다 취하면서 따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등산 경험이 있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겠습니다만, 산에 올라갈 때는 사람마다 지고 갈 수 있는 짐의 한계가 있습니다.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다 챙겨 떠났다가는 중턱에도 이르지 못해 지쳐 나가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길이며, 때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할 길입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취해야 따라나설 수 있는 길이 바로 예수님의 길입니다. 버릴 것이 무엇인지는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무얼 버려야 할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산에 가면서 물이 없으면 큰일 납니다. 가지고 가든지 산에서 얻든지 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 따라가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금방 탈진해버리고 맙니다.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도 이내 지쳐 떨어져버리고, 인간적인 기대와 친목관계로 시작했다가도 기도하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서 이런 저런 계기로 처음 뜻에서 멀어져버리고 마는 것이 유약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로 살겠다고 한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탄탄한 기도가 반석이 되어야 그 위에 믿음도 쌓고 지식도 쌓을 수 있습니다. 탄탄한 기도가 밑바탕에 쌓여야 좌우로 휘청거리더라도 중심을 잡고 복음의 길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때마다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온전히 하나이신 주님이셨지만, 한 사람으로 살아가시는 가운데 기도가 아니고서는 아버지의 뜻 안에 온전히 머무실 다른 방법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산에 당신의 사랑하시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4.

 

변화산 사건은 이렇게 기도하시던 예수님에게 일어난 변화를 전합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고 전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 피부에서 광채가 났다고 말하는 대목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선택과 계약이 이루어진 장소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이 빛났던 것처럼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계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예언을 상징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은, 율법과 예언의 완성이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의 증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러 올라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잠을 이기지 못해 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을 이기지 못해 그분 곁에서 졸고 있으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곁에서 졸고 있는 이 장면은, 오늘 본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올해 변화주일에 제자들의 이 모습이 유독 눈에 밝혔습니다. 어쩌면 그분 곁에서 졸고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모습이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불러주신 제자들입니다. 당신의 일을 함께 하자고 제자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러 올라가실 때 함께 데리고 가신 제자들이 바로 이 세 사람입니다. 주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서는 졸고 있다니, 예수님 곁에 가까이 오고 싶어도 못 온 사람들도 많을 텐데,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함께 산에 올라가서 곁에서 졸고 있다니, 그 모습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도 나고,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도 들곤 합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신자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 특별히 목회자를 도와 교회를 섬기는 일꾼으로 부름 받은 직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특별한 사랑 가운데 있는 이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일전에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 한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교인 한 분에게 직분을 추천하셨는데, 그분이 고심 끝에 목사님께 대답하길 목사님, 저는 부족해서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하셨다는 대답이 잊히지 않습니다. “알어. 능력 있어서 맡기는 게 아니라, 능력주실 줄 믿고 맡기는 거야그러셨답니다. 저는 때때로 이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마치 예수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처럼 듣곤 합니다. ‘주님, 저 부족해서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예수님께서는 알어. 너 능력 있어서 맡기는 거 아니야. 능력 주려고 맡기는 거야하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들을 데리고 산에 가셨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이 특별히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에 참여케 하시고자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변화산 사건은, 잠들어 있던 제자들이 깨어나 주님의 영광을 본사건입니다. 제자들은 주님 가까이에 있었으나 잠을 이기지 못해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주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잠을 이기고자 했으나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졸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산에 올랐지만, 인간으로서 지닌 자기 한계와 씨름하며 어떻게든 잠을 이겨보고자 했습니다. 아마 그 상태로 시간이 더 지났다면 제자들은 이내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졸고 있었으나 주님 곁에서 졸았습니다. 밀려오는 잠과 씨름했지만, 주님 곁에서 씨름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깨어 주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변화주일을 맞는 오늘 우리는 주님 곁에 어떤 모습으로 있습니까? 주님의 부름을 받아 그분 곁에 있으면서도 잠을 이기지 못해 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깨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도의 모습으로 있습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 깨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깨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본 제자들이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신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영혼의 잠에서 깨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은총을 체험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전쟁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우크라니아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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