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27 댓글 0

다 이루었다

 

본문: 이사야 52:13-53:12; 히브리서 10:16-25; 요한복음 19:17-42

설교: 홍정호 목사 (2022.4.15. 성금요일)

 

1.

 

오늘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 성금요일입니다. 우리 개신교회의 뿌리가 되는 서방교회는, 일몰에서 그 다음 일몰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던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주님의 최후 만찬일인 목요일 저녁부터 부활주일 저녁에 이르는 성삼일(聖三日)을 교회 전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흘로 지켜 왔습니다. 이 사흘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다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의 건너가는 때입니다.

 

교회는 이 사흘 동안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유대인의 유월절 경험에 빗대어 파스카 성삼일’Sacrum Triduum Paschale라고 불렀습니다. ‘파스카란 유월절을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이집트의 바로에게 내리신 야훼 하나님의 재앙이, 문설주에 희생양의 피를 바른 이들의 집에는 미치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죽을 이들이 구원을 얻었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2.

 

올해 사순절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기와 겹칩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사순절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평화를 열망하는 세계인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평화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폐허가 된 마을과 희생당한 이들의 처참한 모습만이 뉴스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의 고통,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어버린 채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떠돌이 난민이 된 이들의 울부짖음이 그 땅으로부터 하늘로 울려 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 그 모습을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셔야만 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22:42) 주님께서 몸소 바치신 이 기도, 기도하는 모든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이 기도대로,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받드셨고,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독생 성자 예수님의 고통을 지켜보아야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라”(23:37)는 조롱을 당하실 때에도, 십자가의 크나 큰 고통 속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하고 탄식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그저 거기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만이 그분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라고 여겨 온 이들은, 이 무력하신 하나님의 모습,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시고 물러나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아니, 왜 하느님은 무고한 이들이 당하는 고통에 침묵으로 일관하시는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사상 많은 성직자와 신학자들이 적절한 대답을 내놓기 위해 달려든 주제입니다만, 그 누구도 모든 이가 납득할 만한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침묵하시는 그분의 뜻을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사실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이들의 울부짖음에 침묵하시는 이유를 알아야만 믿을 수 있다 한다면, 그 까닭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만 그분의 선하심을 인정할 수 있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바치신 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다 아시지 못하셨으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기도하신 그분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무력한 모습으로 애태우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린 아들을 바라보시며, 그저 그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임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3.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22:42) 기도하셨던 주님의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었기에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처참한 십자가 죽음 가운데 내어 주시면서도 침묵하셨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8:38-39)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독생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죄로 인해 어긋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지금 아프고 굶주린 이들을 굽어 살피시며, 갇히고 묶인 이들을 풀어 주시고, 떠도는 나그네를 보살펴 주시기를, 그리하여 죽어가는 이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4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 (2022.8.7. 성령강림 후 제9주) 홍목사 2022.08.07 13
1013 인심은 마음에서 난다 (2022.7.31. 성령강림 후 제8주) 김준영 2022.07.31 33
1012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2022.7.24. 성령강림 후 제7주) 홍목사 2022.07.24 29
1011 환대하는 삶 (2022.7.18. 성령강림 후 제6주) 홍목사 2022.07.17 35
1010 높은 뜻 위대한 삶 (2022.7.10. 성령강림 후 제5주) 홍목사 2022.07.10 42
1009 나아만과 게하시 (2022.7.3. 성령강림 후 제4주) 홍목사 2022.07.03 39
1008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2022.6.26. 성령강림 후 제3주) 홍목사 2022.06.26 60
1007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2022.6.19. 성령강림 후 제2주) 홍목사 2022.06.19 50
1006 경청과 실행 (2022.6.12.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 홍목사 2022.06.12 50
1005 너희와 함께 또 너희 안에 (2022.6.5. 성령강림절) 홍목사 2022.06.05 52
1004 주님이 바치신 기도 (2022.5.29.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홍목사 2022.05.29 37
1003 그 사람은 걸어갔다 (2022.5.22. 부활절 제6주, 웨슬리회심기념주일) 김준영 2022.05.22 50
1002 서로 사랑할 때 (2022.5.15. 부활절 제5주) 홍목사 2022.05.16 50
1001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022.5.8. 부활절 제4주, 어버이주일) 홍목사 2022.05.08 38
1000 회심과 성화 (2022.5.1. 부활절 제3주) 홍목사 2022.05.01 39
999 주님이 보내실 때에는 (2022.4.24. 부활절 제2주, 교회창립 기념주일) 홍목사 2022.04.25 69
998 부활의 아침 (2022.4.17. 부활절, 부활주일) 홍목사 2022.04.17 45
» 다 이루었다 (2022.4.15. 성금요일) 홍목사 2022.04.16 27
996 나라가 임하시오며 (2022.4.10.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고난주일) 홍목사 2022.04.10 43
995 주님을 위한 잔치 (2022.4.3. 사순절 제5주) 홍목사 2022.04.03 3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