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주님이 보내실 때에는

 

본문: 시편 118:14-29; 요한복음 20:19-31

설교: 홍정호 목사 (2022.4.24. 부활절 제2,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주일)

 

[그 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1.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는 부활절 두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40주년을 맞는 감사주일이기도 합니다. 해서, 특별한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고자 40주년 준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오늘은 본당을 떠나 이곳 히스토리캠퍼스에서 하나님께 기쁨의 예배를 올려드립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나 공동체의 여정에 있어서 40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이 마흔은 까마득한 나이입니다. 우리교회 아홉 살 아이들에게 '너 언제 마흔 되니?' 한 번 물어보세요. 마흔은 그 아이들 생각 속에는 없는 나이일 겁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에는 나이 마흔을 생각하면 한참 좋을 때다’, ‘정신없이 바쁠 때다하는 생각 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1982년 첫 예배를 드릴 때 교회창립 사십 주년은 정말 까마득하게 먼 훗날의 얘기였습니다. 그 시절 기쁨과 설레는 마음으로 첫 예배를 드리고, 교회개척에 힘을 모은 우리 교우들의 생각 속에는 ‘40’이란 없는 숫자와도 같았습니다. 우리 한이나, 솔이에게 나이 마흔이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나이인 것처럼, 그때 함께한 분들의 마음속 교회창립 40주년이라는 시간은, 먼 미래의 꿈에 불과한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한없으신 사랑과 자비하심의 결과로, 그분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창립 40주년이라는 기적같은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2.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주일이니, 숫자 ‘40’ 얘기를 좀 더 해 보겠습니다. 개인에서 있어서 나이 마흔이 삶의 전환과 성숙이라는 의미를 갖는 만큼, 공동체의 여정에 있어서도 40주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때입니다. 특히 성경 속에 등장하는 40이라는 숫자는, 어떤 중요한 전환을 상징합니다. 한 시기가 무르익고, 새로운 또 한 시기가 다가오는 때를 나타내는 중요한 종교적 상징을 담은 숫자가 바로 40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창세기에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노아의 때 하나님께서는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를 내리셔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의 은총의 언약과 새로운 창조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을, 창세기는 사십 일 밤낮이라는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기다리며 시내 산에 올라 기도한 날수도 40일입니다(24:17). 애굽의 종으로 살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의 주인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 전환의 시간이, 역시 시내 산의 40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마귀와 싸워 승리하신 기간도 40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기억하는 사순절도 사십 일이고, 사순절이 끝나고 시작되는 부활절부터 주님의 승천일까지의 기간도 40일입니다. 40은 이처럼 중요한 영적인 전환의 시간, 한 세대가 무르익고 다가오는 은총의 새날을 맞이해야 하는 전환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역시 ‘40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세의 광야 40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모세는 120살을 살았다고 합니다(34:7). 그런데 이 모세의 향년 120살 역시, 그의 삶을 40년을 기준으로 세 시기로 나눈 상징적 의미를 지닌 숫자입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보낸 40, 미디안 땅에서 목동으로 보낸 40, 그리고 모세를 역사에 각인시킨 출애굽 광야에서의 40년입니다.

 

모세의 인생 처음 40년 동안, 하나님은, 나일 강 갈대 상자에 숨겨져 있던 모세를 애굽의 왕자로 자라게 하시며 그가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7:23) 그는 동족 히브리인이 괴롭힘 당하는 모습을 보고, 분을 이기지 못해 애굽의 감독관을 살해하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하루아침에 하층민에 다름없는 목동의 삶을 살게 됩니다. 40년을 왕자로 살아오면서 지배계층의 삶이 몸에 밴 모세에게, 이 목동의 삶은,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법을 배우는 겸손한 지도자로서의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세월이 또 40년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나이 여든이 되었을 때(7:7),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 전면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40년이 지나, 이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그곳을 바라보면서,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합니다. 애굽의 왕자로 40, 미디안의 목동으로 40, 그리고 광야에 선 민족의 지도자로 40, 모세는 40년이라는 시간을 분기점으로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는 새로운 삶의 여정에 자신을 내맡긴 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나간 시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왕자에서 미디안의 목동이 되었을 때에도, 미디안의 목동에서 다시 출애굽의 소명을 안고 애굽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도, 그의 눈은 언제나 오늘 여기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어 가실 은총의 새날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 속 가장 뛰어난 왕으로 기억되는 다윗과 솔로몬 역시,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가 각각 40년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40이라는 숫자는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나, 신앙과 민족 공동체의 운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하는 종교적 상징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이 뜻깊은 4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나고 있습니다. 교회창립40주년이라는 시간은, 거저 얻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모여 함께 이룬 시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간입니다.

 

3.

 

오늘은 창립 40주년을 감사하는 날이지만, 감사할 일이 또 하나 있죠? 오늘 우리 교회의 새로운 장로님 한 분이 세워지는 기쁜 날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속을 끓였나 모르겠습니다. 장로를 안 하시겠다고 해서. 성경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 앞에서 여섯 번 거절을 했는데, 김진일 장로님은, 다섯 번쯤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장로님을 아십니다만, 제가 하시라고 해서 할 분이 아니죠. 하나님이 세우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세워주셨으니, 이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세에 대한 말씀을 좀 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 온 모세에게도 시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냐 하면, 약속의 땅을 향해 함께 가는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이 모세를 흔들었을 때입니다. 다 어려운 시기에, 지금 한 마음이 되어서 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도 갈 길이 먼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백성들을 갈라놓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심지어, “이집트에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겁니까?”(14:11) 하는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고기 가마 곁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16:3) 하는 한탄도 들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그 자신의 삶을 두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왕궁이든 광야든, 어떤 삶에 처하더라도 그는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맡기신 목자의 책임 앞에서 모세는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아주 깊고도 내밀한 탄식을 하나님 앞에 내뱉기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이렇게 대하십니까? (중략) 제가 이들을 낳았습니까? 제가 이들의 어미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어찌하여 이 백성의 무거운 짐을 저에게 지우십니까? 왜 저에게 아이를 품은 어미처럼 이들을 안고 다니라고 하십니까? (중략) 이 일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백성을 모두 안고 가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입니다. 저를 이리 대하시려거든,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저는 볼 만큼 보고, 겪을 만큼 겪었습니다. 저를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11:11-15, 메시지성경)

 

여러분, 이게 지금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탄식이라는 말이 믿어지십니까? 소명 앞에서 여섯 번 거절한 끝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든 모세는, 동상이몽(同床異夢) 하는 백성들을 참다 참다 못해 어찌하여 저를 이렇게 대하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처절한 탄식에 어떻게 응답하셨을까요? 민수기 1116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서, 네가 백성의 장로들 또는 그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일흔 명을 나에게로 불러 오너라. 너는 그들을 데리고 회막으로 와서 그들과 함께 서라.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내려 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성 돌보는 짐을, 그들이 너와 함께 지게 하겠다.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는 그동안 이 말씀을, 칠십 인의 장로를 세우신 이야기로만 읽었습니다만, 왜 하나님께서 일흔 명의 장로를 세워주셨는지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돌보는 일을 함께 하라고, 그 짐을 함께 나누어지라고 세우셨구나, 하는 깨달음입니다. 오늘 세워주시는 김진일 장로님, 우리 네 분의 시무 장로님들, 원로장로님, 그리고 우리 교회에 속한 교우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구나, 자비하신 주님의 은총이구나, 하는 사실에 새삼 눈 뜨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보내실 때에는,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이렇게 돕는 사람들, 주의 일을 함께 하는 동역자들을 불러 세우셔서 보내시는구나, 혼자라면 넘어지겠지만, 함께 세워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면 넘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칠십 인의 장로를 세워서 모세가 그 소명을 다하도록 이끄시고 도우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가 4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누가 조금 더 수고하고, 누가 조금 덜 수고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사람의 손길로 하는 일이니까요. 누가 조금 더 헌신하고, 누가 조금 덜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조금 더 돋보이고, 누가 조금 덜 돋보이는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창립 40주년이라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속한 여러분 각 사람의 수고와 헌신을 모두 기억하시고, 이를 기쁘시게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인 줄 믿습니다. 한두 사람의 열심과 노력만 가지고는 절대로 40년이라는 이 믿음의 결실이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십시오.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었습니까? 교회가 좋기만 하셨습니까? 목회자와 교인들이 다 여러분 마음에 들고, 서로 대하기가 주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처럼 마냥 좋기만 하셨습니까? 그런 분은 아무도 안 계실 겁니다. 그럴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는 게 솔직한 말입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서로 마주하기도 싫고, 얼굴 보면서 밥도 안 넘어가는, 그런 때도 있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각자 자신의 기대와 기준이 없는 분은 아마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좋았다 싫었다, 고왔다 미웠다, 그렇게 주님의 한 몸을 이루며 함께 지나 온 시간이 40년입니다. 그 시간의 무게만큼 이제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의지할 언덕이며, 하나님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라는 시를 아시나요? 첫 구절이 이렇습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옆자리에 계신 분의 얼굴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십니까?

 

교회가 어떤 곳인가요? 이 시인의 노래와 같은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의 못난 얼굴만 봐도 흥겨워지는 사람들의 장소가 주님의 교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모난 부분이 있어도, 같이 참외도 깎아 먹고, 잡담도 나누면서 인생의 여정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이 세상의 쉴 만한 그늘이 되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참 못난 사람인데, 주님은 우리를 보시고 못났다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참 예쁘다’, ‘참 귀하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교회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4.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제자들은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문을 걸어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 주님을 배반하고, 살기 위해 그분을 떠난 제자들의 마음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을 버리고 떠났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오히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주님은 놀란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분이심을,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한 번 평화를 빌어주신 다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제자들이 주님께 보내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요?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그들의 자리가 어디인가요?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고, 주님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치겠다(13:37b)고 다짐하던 이들이 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나 숨어있는 자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버린 이들을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두 번씩이나 먼저 인사를 건네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격 없는 이들에게 찾아오시어 그들을 품어 안으시고 주님의 일꾼 되게 하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 은총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품어 안으신 이들을 보내실 때에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분입니다. 눈 어두워 길을 찾지 못하고, 길인 줄 알아도 용기가 없어 가지 못하고, 용기 내어 가다가도 세상 풍파에 흔들려 마음이 약해지고, 쉽게 낙심하고, 차마 다시 일어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주님은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평화를 빌어주시는 분입니다.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자격 없는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세워 보람의 열매를 나눠 갖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보내실 때에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능히 그 일을 감당토록 도우시는 분,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회창립 40주년과 신천 장로님 취임을 감사하는 이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크신 자비를 베푸시어 교회창립 40주년이라는 뜻깊은 시간을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나 온 시간 동안 교회를 위해 헌신한 여러분 각 사람의 노고를 사람들은 잊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소망으로 삼는 우리의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을, 우리 교회의 새로운 40년을 향한 첫 걸음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모세처럼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열어 가실 은총의 새날을 바라봅시다. 오늘 세워주시는 장로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함께하라고, 제 곁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곁에 불러 세우신 칠십 인의 장로와도 같은 사람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올바르고 꾸준하게, 진리의 길을 걷는, 우리 신반포교회의 모든 교우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09 나아만과 게하시 (2022.7.3. 성령강림 후 제4주) 홍목사 2022.07.03 8
1008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2022.6.26. 성령강림 후 제3주) 홍목사 2022.06.26 38
1007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2022.6.19. 성령강림 후 제2주) 홍목사 2022.06.19 37
1006 경청과 실행 (2022.6.12.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 홍목사 2022.06.12 39
1005 너희와 함께 또 너희 안에 (2022.6.5. 성령강림절) 홍목사 2022.06.05 45
1004 주님이 바치신 기도 (2022.5.29.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홍목사 2022.05.29 30
1003 그 사람은 걸어갔다 (2022.5.22. 부활절 제6주, 웨슬리회심기념주일) 김준영 2022.05.22 41
1002 서로 사랑할 때 (2022.5.15. 부활절 제5주) 홍목사 2022.05.16 43
1001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022.5.8. 부활절 제4주, 어버이주일) 홍목사 2022.05.08 34
1000 회심과 성화 (2022.5.1. 부활절 제3주) 홍목사 2022.05.01 34
» 주님이 보내실 때에는 (2022.4.24. 부활절 제2주, 교회창립 기념주일) 홍목사 2022.04.25 59
998 부활의 아침 (2022.4.17. 부활절, 부활주일) 홍목사 2022.04.17 43
997 다 이루었다 (2022.4.15. 성금요일) 홍목사 2022.04.16 22
996 나라가 임하시오며 (2022.4.10.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고난주일) 홍목사 2022.04.10 39
995 주님을 위한 잔치 (2022.4.3. 사순절 제5주) 홍목사 2022.04.03 26
994 삼 형제 (2022.3.27. 사순절 제4주) 김준영 2022.03.27 60
993 뉘우쳐 고치는 용기 (2022.3.20. 사순절 제3주) 홍목사 2022.03.20 61
992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2022.3.13. 사순절 제2주) 홍목사 2022.03.13 62
991 삶이라는 광야에서 (2022.3.6. 사순절 제1주) 홍목사 2022.03.06 60
990 깨어나 영광을 보다 (2022.2.27. 주현 후 마지막 주, 변화주일, 삼일절기념주일) 홍목사 2022.02.27 3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