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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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본문: 시편 23:1-6; 요한복음 10:22-30

설교: 홍정호 목사 (2022.5.8. 부활절 제4, 어버이주일)

 

[예루살렘은 성전 봉헌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하시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가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그 일들이 곧 나를 증언해 준다. 그런데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도 더 크시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1.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부활절 네 번째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감리교회가 어버이주일로 정해 지키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버이주일은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은, ‘어머니 주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감리교회의 형제 격인 구세군이 1930년 처음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고, 195558일을 어머니 날로 제정하면서 오늘날 어버이날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날하면 떠오르는 떠오르는 동요가 있습니다. ‘어머님 은혜라는 곡입니다. 감리교 동부연회 초대 감독을 지내신 윤춘병 목사님이 작사하시고 박재훈 목사님이 작곡하셔서 1953<어린이 찬송가>에 수록된 노래입니다. 1절과 2절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습니다. “1.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2.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아.” 이런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3절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3절의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3.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이 노래가 일반 동요집이 아니라 <어린이 찬송가>에 실린 이유는, 어머니의 사랑이 거룩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닮았기에 윤춘병 목사님은 그 사랑을 거룩한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희생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 은총으로 거듭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라난 많은 이들이 부모님의 신앙을 통해 이 예수님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쥐고 타인 위에 군림하는 삶을 두고 성공한삶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신앙의 어머니들은 예수님처럼 타인을 섬기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빛과 소금의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요, ‘거룩한 사랑을 실천하는 보람된 삶이라는 진실을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신앙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주님 닮은 거룩한 사랑을 실천하기를 다짐하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2.

 

주님은,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10:45a) 말씀하셨습니다.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는 섬기러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처럼 다른 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하는 사람, 혹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잠시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난 경험을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남들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계신가요? 그런 사람은 그 일을 함께하는 동료들의 마음까지 환히 밝히는 빛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동료 중에 있으면, ‘,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귀한 일이었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일의 맛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소금 같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일 하는 사람, 혹은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은 함께 있는 동료들까지 어둡게 만듭니다. 잘 하던 일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하기 싫어지고, 내 일이 가치 없게 생각되고, 내가 이거 하자고 그 고생을 해서 여기 와서 맨날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고 의욕도 사라집니다.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고, 여러분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10절에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큰일에는 모두 주목하지만, 작은 일은 눈 여겨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중요한 결과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변곡점은 이 작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요식사업가 백종원 씨가 나오는 식당 창업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손님이 별로 없는 가게에 들어가서 몇 주간 여러 솔루션을 제공해 맛집이 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백종원 씨가 그 식당 주방에 들어가더니, 냉장고과 벽면 사이에 낀 먼지를 살피고, 바닥 구석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내야 한다고 화를 내듯 지적하는 장면입니다. 아니, 음식을 가르쳐 주러 왔으면 조용히 레시피만 전수해 주고 가면 될 일인데, 왜 화를 낸 걸까요? 왜 난데없이 냉장고 안도 아니고, 냉장고와 벽면 사이에 낀 먼지부터 없애라고 지적하고, 손님들이 절대로 보지 않을 주방 바닥에 낀 기름때를 닦아내라고 말했을까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분이 괜히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하신 예수님 말씀이 딱 들어맞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릇이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레시피를 전수해 준다 한들 그 맛이 날까요? 며칠, 몇 달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맛을 담아 낼 그릇이 준비가 안 되면 그 맛을 지속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릇은 어떻게 준비가 될까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삶의 태도로부터 그릇이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십년 단골도 그 집 주방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죠? 게다가 냉장고 틈에 낀 먼지를 지적할 손님은 정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중요하지 않은 곳, 가장 주목받지 않는 그 장소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 하는 이 작은 차이가, 비교할 수 없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님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25:40)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큰 일만, 남들에게 드러내기 좋은 일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기독교 정신이 깊이 뿌리내린 사람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를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 하는 사람이 좋은 신자이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다른 이를 섬기는 일, 남들이 돌보지 않는 낮은 자리를 살피고,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보는 일이 복된 일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하신 일이고, 주님 닮기 원하는 우리 신자들의 길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일평생 주님 닮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잘못된 길로 갔을 때 우리를 찾아오셔서 양의 우리로 데리고 오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따뜻함과 인자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이신지를 분명하게 말해달라는 유대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 왜 어떤 이들을 향해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신 걸까요? 요한복음 1027절의 말씀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 주님의 양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그래서 따르지 않으면 주님의 양이 아닙니다. 차가운 말씀처럼 들리지만, 양 치는 목자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 예수님의 청중들에게 이 말씀은, 피부에 와 닿는 비유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양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양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목자 없는 양인 경우입니다. 현대인들이 생각할 때, ‘목자 없는 양이면, 자유롭고 좋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마치 감독관이 없는, 직장에 상사가 없는 것처럼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문화에서 목자 없는 양이란 자유의 의미가 아니라, 누구의 보호도 없이 죽음으로 내몰린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10:16a)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당신의 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까지도 이끌어 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목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그 양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리떼로부터 양들을 보호해 주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목자가 있으면 그 양은 무리와 더불어 살고, 없으면 죽음으로 내몰려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 없는 양을 찾아 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 아래 이끌어 와야 할 사명이 주님의 교회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전도가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인 이유입니다.

둘째는, 다른 목자의 양인 경우입니다. 다른 목자의 인도 아래 있는 양인 경우에도,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른 주인이 예수님처럼 선한 목자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다른 목자가 선한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라면 어떨까요? 목자 없는 양이냐, 삯꾼 아래 있는 양이냐, 어떤 경우가 더 나쁠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대비되는 가짜 목자, ‘삯꾼이 나옵니다(10:11-15).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말씀하셨습니다. 삯꾼은 자기가 받을 몫만을 생각하지, 양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주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 낮이나 밤이나 함께하시며 당신의 양들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이신 그분의 품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생명의 기쁨을 충만히 누립니다.

 

4.

 

그러면 선한 목자와 삯꾼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끝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목자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목자는 아닙니다. 삯꾼과 선한 목자는 하는 일이 비슷해 보이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어쩌면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겉으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때 길거리에서 가짜 휘발류를 만들어서 팔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그런데 어디서 들은 얘기입니다만, 가짜 휘발류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뭔 줄 아시나요? 저는 물인 줄 알았는데, 물이 아니랍니다. 진짜 휘발류랍니다. 가짜 휘발류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진짜 휘발류랍니다. 기막힌 얘깁니다. 그래서 눈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답니다. 말을 들어서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속이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말을 잘 하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구분할까요? 그 휘발류를 넣고 차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면 압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무엇인 줄 아는 것처럼, 그 기름을 넣고 차가 어떻게 되느냐를 보고서야 그 휘발류가 가짜 휘발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짜 휘발류 넣자마자 차가 갑자기 멈춰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안 살 테니, 가짜를 넣어도 얼마간 가진 잘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싸다고 계속 쓰다 보면 중요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서 차가 서 버려서 큰 사고가 나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을 구분하는 것도 가짜 휘발류를 구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삯꾼에 가장 만이 들어있는 모습이 진짜 목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그런 가짜가 아닌가, 겉으로는 신실한 신자요 좋은 그리스도인 같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기도하지 않고 모든 일들을 내 뜻대로만 해결하는 삯꾼 같은 신자가 아닌지를 돌아보고 돌이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 그분이 선한 목자이심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10:37-38)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신 일, 당신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통해 그분이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길도 주님의 길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말이 아니라 행실로, 지금 하고 있는 선한 일들을 통해 세상은 우리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하나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그래서 그분을 따르기에 주저함 없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하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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