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주님이 바치신 기도

 

본문: 시편 97:1-12; 요한복음 17:20-26

설교: 홍정호 목사 (2022.5.29. 부활절 제7, 승천주일)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아버지를 알았으며, 이 사람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부활절 마지막 주일이자, 주님의 승천주일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1:14)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은, 요한복음 1628절의 말씀처럼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오셨고, 이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16:7)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14:16) 말씀하셨습니다.

 

승천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주님 승천에 관한 말씀을 이 시대에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신학생 시절, 주님의 승천에 관한 신학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학은 단지 이해로만 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쉬운 신학은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만, 어려운 신학 중에서도 주님의 승천에 관한 신학은, 특히 까다롭고 난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마 성경을 말씀으로 읽지 않고, 과학책 읽듯이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입니다. 과학자만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 일상 전체가 합리성을 바탕으로, 이성적 판단과 행동이라는 문화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는 과학적 사고의 세계가 아니라, 이야기 세계입니다.

 

2.

 

성경은 과학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이야기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과학책과 달리,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의 가설을 뒤엎는 새로운 이론이 출현했다고 해서 폐기되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낯선 세계와 만날수록,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경험과 지식의 체계를 뒤흔드는 새로운 세계를 더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이야기가 지닌 힘은 점점 더 커집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는 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익어갑니다. 특히, 오래 지속되는 이야기,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계승되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단절된 시간을 연결하고,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이 이야기가 지닌 힘입니다.

 

주님의 승천에 관한 말씀 역시 이야기입니다. 신학생 시절에는 제 안목이 없어 뒤늦게 발견하게 된 진실입니다. 혹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니, 가치가 떨어지는 얘기처럼 들리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대학의 유발 하라리 교수가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같은 책을 통해 해서 유명해 진 얘기가 있습니다. 유약한 인간이 힘센 다른 종들을 꺾고, 지구의 주인노릇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만이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종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도 군집생활을 합니다. 인간처럼 사회를 구성해서 살아갑니다. 그 사회에는 우두머리도 있고, 세력 간 다툼도 벌입니다. 인간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 영장류와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없는 이야기가, 인간에게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힘은 인간에게만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 너머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 걸 본 인간은, 그 장면을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산 너머 호랑이가 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그쪽으로 가지 않아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은 위험을 이야기를 통해 미리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인간처럼 사회를 구성해 살아간다 한들 인간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죠. 말하자면, 이야기가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또 하나 말씀을 드려볼까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 다른 장소, 다른 문화, 다른 세대에 속한 사람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 함께 공부하고 있는 구약의 오경과 같은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떠돌이 나그네로 흩어져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오경의 이야기였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태초의 하나님 이야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노아와 홍수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 요셉과 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모세를 불러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이야기 등등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향을 떠나 유랑하던 그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경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이어갔고, 이야기를 통해 미래를 열어갔습니다.

 

이처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 그것도 성경의 말씀처럼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갖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종교는, 두말 할 것 없는 오래된 이야기의 보물창고입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지혜의 보고이고, 이 땅을 먼저 살다간 이들이 남긴 인생의 지도와 나침반과 같은 모든 인류를 위한 귀중한 유산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가끔 성경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 없다고 말한다거나,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종교의 중요성이 사라질 거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면 저는 속으로 눈 뜬 장님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지닌 힘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낙원을 떠나 에덴의 동쪽을 떠도는 도시의 삶이 심화될수록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3.

 

저는 이야기가 지닌 이런 힘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주일성수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라는 교회의 전통을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말씀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리곤 합니다. ‘주일성수는 물론 신앙적 차원의 얘기지만, 단지 신앙적 차원에 국한된 얘기만은 아닙니다. 저는 자녀들에게도 주일만큼은 반드시 성수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목사 가정이니 그렇겠거니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이들에게 일평생 지속할 수 있는 강력한 루틴 하나를 심어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인생 전체에 걸쳐서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만큼 강력한 루틴은 주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하는 무언가가 단 한 가지라도 있는 사람은, 그 루틴을 바탕으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갑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잠시 흔들리지만, 이내 중심을 잡습니다. 이것이 주일성수의 힘입니다. 달리 말하면, 루틴이 그를 붙잡는 것이죠. 습관의 힘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좋은 루틴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학교를 가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도 만나고, 놀러도 가지만, 그것은 한때의 일이거나, 길어도 한 세대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주일성수만큼 평생에 걸쳐서,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지속되는 강력한 루틴이 되지는 못 합니다.

 

주일성수를 통해 무얼 할까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통해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교회에서 자라는 아이들, 신앙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가운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저는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대에 걸친 이야기, 자기 가족의 문화와는 다른 문화적 다양성의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일평생 지속되는 강력한 루틴의 힘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반석 위에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을 그야말로 성수하는 것이 신앙의 힘을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계승된 이야기에 동떨어진 세대를 연결시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하는 말씀을 연중 내내 들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와 나침반을 손에 쥐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야기가 지닌 힘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의 힘입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지적처럼, 인간이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았다면, 인간은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는 유일한 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 기억하시지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20:28)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주님의 승천, 그리고 주님의 재림 이야기 모두,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를 소중히 여기고, 믿습니다. 오래 전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주님의 승천에 관한 신학을, 저는 이야기로 다시 만났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오신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올라가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말씀하신 그 약속을 믿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보혜사 성령을 통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제 주변 사람들과 계속해서 나눌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4.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떠나시기 전 바치신 기도의 내용입니다. 짧게 몇 가지만 나누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절부터 6절에 해당하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바치신 기도입니다. 둘째는, 6절에서 19절에 걸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20절에서 26절에 걸친 교회를 위한 기도, 장래에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가운데 오늘의 본문은, 마지막 20절에서 26절에 해당하는 기도,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지만,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본문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들 앞에서 거룩함을 뽐내며 기도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서, 외딴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7장은 제자들 앞에서 바치신 기도라는 점에서 귀중한 본문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내용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주님이 바치신 기도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17:21b) 하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이 믿음 안에서 하나 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믿음이 바탕이 될 때, 우리도 하나님 사랑에 힘입어 다른 이들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약하다면, 교회도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복음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로 혼탁해지고 흔들리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이런 곳이 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둘째는,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17:24) 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은, 세상의 영광과는 다른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십자가가 영광인가요? 겉으로 보기에 십자가은 영광이라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고난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받아들이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난이 있다면, 담담히, 그리고 담대히 맞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작은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손톱만한 피해도 입지 않고 살려다 보니 세상살이가 힘들어졌습니다. 다툴 일은 다퉈야 하지만, 받아들일 건 또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교회가 십자가를 거부하면, 주님의 영광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영광을 받아들임으로, 교회가 주님의 뜻을 펼치는 주님이 거룩한 몸이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은,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으며, 앞으로도 알리겠습니다.”(17:26a) 하신 기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이며, 또한 다짐입니다. 이름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시겠다는 다짐은, 하나님의 본질을 세상이 알게 하시겠다는 다짐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시겠다고 기도하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고 덧붙여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곧 오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주님께서 펼치신 복음, 곧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복음의 말씀을 계속해서 알게 하시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교회를 위해 세 가지 기도를, 첫째는, 교회에 믿음을 주시기를, 둘째는, 교회가 십자가 영광을 받게 하시기를, 그리고 셋째는, 교회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모든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주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이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시기를 믿고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바치신 기도를 들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절 마지막 주일, 주님의 승천주일을 맞이하며, 하늘에 오르시어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주님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충만하시길 빕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과 기쁨이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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