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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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본문: 열왕기하 2:6-14; 누가복음 9:51-62

설교: 홍정호 목사 (2022.6.26. 성령강림 후 제3)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이 길을 떠나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만나는 복음의 말씀은, 누가복음 9장에 나오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관한 교훈입니다.

 

1.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여정에 주목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활동과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여정으로 구분되는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여정의 첫 번째 이야기라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이렇게 예수님 일행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면서, 누가복음의 새로운 막이 열립니다.

 

누가가 펼쳐가는 이야기의 새로운 막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의 동네에서 배척당하시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에 예수님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배척과 고난을 당하시는데, 오늘 본문은 이후에 일어날 이와 같은 일들을 미리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의 역할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시작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동네에서 배척을 당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의 동네에서 배척을 당하신 이야기로 시작되는 새 막은 사뭇 충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랜 멸시와 적대적 관계가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단지 사마리아 사람의 동네에서 배척을 당하시는 게 아니라, ‘심지어사마리아 사람의 동네에서도 배척을 당하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사마리아 사람에게까지!

 

2.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7세기(722년경)에 북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패망한 이후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생겨난 사람들입니다. 혈족을 중시하던 전통사회에서, 그것도 가족을 언약의 중요한 매개로 여겨 온 유대사회에서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생겨난 혼혈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멸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웠고, 유대인들의 오경이 아닌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유대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 성전경전모두를 유대인들과 다른 자신들만의 체계로 발전시키면서 유대인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사람들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했지만, 유대인들을 싫어하기는 사마리아 사람들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953절입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라는 말은, 예수님 일행이 유월절을 지내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은 그리심 산에 있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었을 겁니다.

 

아무튼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굳이 사마리아 사람의 마을에 가시려고 하시나, 불편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동네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데, 그 불편한 마음에 기름을 붓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 일행의 방문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54) 하고 화를 내며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화낸 이유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원수도 사랑하라 하셔서 어떻게 좀 잘 해 보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이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원수 사랑이고 뭐고 그 다음부터는 마음에 남아 있는 상대에 대한 작은 측은지심마저도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시험을 당하지 않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자존심이 완전히 상했습니다. ‘심지어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다니! 다 태워버리자는 야고보와 요한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그들 마음이 꼭 우리 마음 같아서 이내 씁쓸해집니다.

 

3.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돌아서서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아무 말 없이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 참 멋진 분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아주 쿨내나는분이죠. 상대방이 내 호의를 거절해도 개의치 않고, 당신의 갈 길을 가시는 분입니다. 반면에 제자들은 올가미에 걸렸습니다. 상대에 대한 혐오에 발목이 잡혀서 갈 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넓은 품으로 당신의 갈 길을 가십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의 친절한 소개로 강사 김창옥 씨 강연을 들었습니다. 김창옥 씨 강연 중에 한 가지 인상 깊은 말이 있었는데, 상대방의 무례한 일로 화가 나거나 할 때면 두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그러라 그래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화를 내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나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죠. 그 사람은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면을 봐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을 수가 있으니까, 그런 뜨악한 말이나 행동을 잘 생각해 보면 그 안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보물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상대의 모든 말이나 행동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지만, 별 의미가 없는 말이나 행동일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냥 삐뚤어진 사람이거나 선생노릇이 습관이 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럴 때는 그러라 그래하는 태도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마리아 사람처럼 환대와 감사를 받아 마땅한 예수님을 배척하는 이 무례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 야고보와 요한처럼 화를 내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는 넓은 품이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변함없이 계속 그러면 그러라 그래하고 제 갈 길을 가는 초연함이 때로는 다른 한편으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불로 태워버리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사마리아 사람과 싸우다 삶을 소진해버리고, 해가 져버리면 곤란하다는 말씀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51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요?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반응에 발목이 잡혀 마을을 태워버리니 마니 할 한가로움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의 쟁기를 손에 잡으셨고, 그 한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4.

 

물론,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신앙인에게 필요한 용기 있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아주 가끔 있는 일이면 족합니다. 백 가지 중에 아흔 아홉 가지는 그럴 수도 있지’, ‘그러라 그래하는 태도로 살면서 제 갈 길을 가다가, 대의를 위해 정말로 다퉈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미워하는 대신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주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7:6)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을 나눠보시는 건가요, 어떤 사람은 개나 돼지로 보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말씀의 맥락도 오늘 말씀의 맥락과 같습니다. 지금 갈 길이 먼 마당에 복음의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이들과 씨름하고, 다투고, 화를 내고, 회개시켜보겠다고 힘을 다 써버렸다가는 정작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쟁기를 잡았으면, 사랑의 쟁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복음의 한길로, 저 앞에 있는 언약의 성취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일도 손에 쟁기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그 길을 떠나신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따라 살기로 마음을 굳히고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길에서 만나는 대적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말씀 서두에서, 누가는 오늘 본문을 이후에 일어날 이와 같은 일들을 미리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에 맞닥뜨린 그 많은 대적들 사이에서도 그분이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으시고,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뒤를 돌아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으시고 마침내 십자가 사랑을 완성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분이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손에 들린 쟁기는 예루살렘을 향해 있습니다. 그분의 목적지는 사마리아 동네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성전이 있는 그리심 산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분의 목적지입니다. 주님은 그곳을 향해 나아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길을 떠나셨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나가겠다고 마음을 굳히는 것, 저는 이 마음을 품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쟁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한길로 나아가야 할 저와 여러분의 영적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에 온 율법과 예언서이 본뜻이 달려있다고 친히 일러주신 그 말씀의 자리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6:5) 하신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19:18) 하신 이 두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나아갈 영적 예루살렘입니다. 이 영적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 다른 어떤 것도 이 일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교훈입니다.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도,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그 사람에게는 뒤를 돌아보는 시간일 뿐입니다.

 

저는 때때로 복음의 급진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고 놀라는 순간들을 복음의 말씀을 대하며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오늘 우리는 매번 만나던 이 교회력의 말씀의 다른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길을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굳히고 길을 떠나셨기에 그분의 길은 제자들의 길과 달랐습니다. 그 길에서 때때로 배척과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분은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기에 그 모든 배척과 고난을 이겨내시고,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주님의 길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쟁기를 손에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와 함께(with) 살지만, 과거 안에(in) 살지는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저는 이미 길을 떠났고, 여러분도 그 길 가운데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직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이제 마음을 굳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의 한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성령과 함께 우리에게 힘 주시고, 길을 열어주셔서 마침내 주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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