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나아만과 게하시

 

본문: 열왕기하 5:1-14; 누가복음 10:1-12

설교: 홍정호 목사 (2022.7.3. 성령강림 후 제4)

 

[시리아 왕의 군사령관 나아만 장군은, 왕이 아끼는 큰 인물이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를 시켜 시리아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일이 있었다. 나아만은 강한 용사였는데,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다. 시리아가 군대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갔을 때에, 그 곳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잡아 온 적이 있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소녀가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시리아 왕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온 한 소녀가 한 말을 보고하였다. 시리아 왕은 기꺼이 허락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겠으니, 가 보도록 하시오.” 나아만은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옷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편지를 읽고 낙담하여, 자기의 옷을 찢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될 말인가? 이것은 분명, 공연히 트집을 잡아 싸울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니, 자세히들 알아보도록 하시오.” 이스라엘 왕이 낙담하여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십시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열왕기하 5장의 나아만 장군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교회력 본문은 51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만, 오늘은 본문 이후에 나오는 엘리사 시종 게하시의 이야기와 함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열왕기하 5장은, 나아만과 게하시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한 분이신 야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올바른 삶의 길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관한 교훈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적국인 시리아의 용맹한 장수였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왕이 아끼는 인물이었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강한 용사였습니다. 열왕기하는, “주님께서 그를 시켜 시리아에 구원을 베풀어 주신 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적국의 장수가 거둔 승리를 두고, 하나님께서 그를 시켜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고 말할 정도였다는 사실로부터, 장수로서의 그의 용맹스러움과 인품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시리아 왕과 사람들에게는 물론, 주변국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부러움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던 뛰어난 장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나아만이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열왕기하 5장은, 강한 용사 나아만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시작합니다.

 

본문은 곧이어 뜻밖의 인물 하나를 등장시킵니다. 나아만 아내의 시중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녀입니다. 이 소녀는 나아만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잡아온 아이였습니다. 고대근동의 전쟁 관습에 따르면, 전쟁에서 패한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가곤 했는데,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지금 이 아이가 나아만의 집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스라엘에게는 애통한 일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패배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에서는 종으로 팔려 온 이 소녀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비록 가족을 잃고 먼 곳에 종으로 팔려 왔지만, 하나님은 이 아이를 통해 당신의 일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역시나 훌륭한 장수였습니다. 어린 시종에 불과한 아이가 한 말이었지만, 그는 이 소녀가 한 말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하는 삶의 습관 때문이겠습니다. 승리의 작은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고, 그 가능성을 키워나가 결국 승리에 이르는 장수로서의 오랜 삶의 습관이 이번에도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전쟁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 작은 가능성을 키워나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 왕에게 나아가 소녀가 한 말을 보고하였고,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겠으니 가 보라며, 적국으로의 진입을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 그리고 옷 열 벌”(왕하 5:5)이라는 선물과 더불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시리아 왕의 친서(왕하 5:6)를 가지고, 자신의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왕하 5:9) 이스라엘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자초지정을 알 리 없던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당황했습니다. 용맹한 나아만이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온다니, 그가 아무리 나병에 걸렸다 한들 장수로서의 용맹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의 병을 고쳐달라는 시리아 왕의 친서를 받아 든 여호람은, 이를 빌미로 트집을 잡아 북이스라엘을 쳐들어오려는 시리아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엘리사가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주십시오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그에게 알려 주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나아만은, 왕이 아닌 예언자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2.

 

엘리사는 왕의 친서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군마와 병거를 거느린 채 자기 집 문 앞에 멈춰 선 시리아의 장수 나아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사환을 시켜서, 어떻게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 메시지는,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회복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장면 이후에 다른 언급 없이 곧장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고 전합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하는 경험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은 아프다고 해서 예언자를 찾아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대신 명의로 알려진 선생님을 찾아가죠. 예약도 힘들고, 예약이 되어도 오래 기다려야 겨우 선생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선생님을 만나도 진료시간이 별로 길지 않습니다. 간혹,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묻지도 않고, 차트와 데이터만 보고 수술합시다하고 중대한 결론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사물로 대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아무리 아쉬운 처지에 있다 해도 화가 나기 마련이죠.

 

하물며 나아만은 어땠을까요? 그는 일평생 어디 가서 평생 당해보지 않은 무시를 당한 것입니다. 심지어 그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취급을 당한다면, 그 모욕을 참을 수 있는 장수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화가 난 나아만은, 단지 발길을 돌렸을 뿐입니다. 어떠한 위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11),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여기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단 말인가?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되지 굳이 여기에서 씻어야 하는가?”(12) 다 맞는 말입니다. 나아만의 생각은, 문화적 상식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입니다. 당장에 칼을 뽑아 엘리사를 친다 한들 나아만을 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 나아만의 부하들이 흔들리는 나아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역시 훌륭한 장수는 혼자 잘 싸워서 만들어 지는 게 아닙니다. 훌륭한 장수 곁에는 더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부하들이 있습니다. 여러 전장을 누비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부하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흔들리는 나아만을 설득했습니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위대한 장수 나아만은, 그래서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벗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그것을 벗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 나아만이라는 허명(虛名)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갑옷을 벗고, 요단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얻은 위대한 설교가가 있습니다. 4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St. Johannes Chrysostomus, 347-407)입니다. 그는 이 허명과의 씨름을 신앙의 깊이와 높이를 재어보는 마지막 시험이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물질 소유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허름한 오두막에서 거친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또 어떤 제자들은 세속 권력에도 관심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고, 비천한 일터에서 그저 그런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세속의 욕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덕망 있는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 성품이 다른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바랍니다. 온유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존경받기를 바라는 거지요./ 그래서 누가 자기를 오해하여 헐뜯거나 비난하면 맹렬하게 화를 내는 겁니다. 그들은 부자들이 자기 재물을 지키는 것과 똑같이 사납게 자신의 명망(名望)을 지킵니다. 명망을 포기하는 것에 견주어 재물이나 권력을 포기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입니다.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깊이와 높이를 재어보는 마지막 시험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이현주 역,단순하게 살기, 65-66 자유롭게 인용)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나 자기 생각을 벗어 버렸습니다. 그는, 과거 전쟁에서 거둔 승리의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장수 나아만이라는 허명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을 승리로 이끈 원칙을 돌아보고, 그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은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고, 그 가능성을 키워나가 결국 승리에 이르는 삶의 습관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승리의 결과에 사로잡히는 대신, 승리하는 삶의 원칙을 겸손히 따른 사람의 모범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 를 잃어버린 대신 생명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예수님에게도 기억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427절에서 예수님은,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 만이 고침을 받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이름이라는 허명을 내려놓은 대신 생명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본문 이후에는 이러한 나아만과 정확히 대비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엘리사의 시종이자 제자인 게하시입니다. 나병에서 회복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사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부디, 예언자님의 종인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왕하 5:15) 하고 거듭 청했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받아달라는 나아만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그 많은 선물을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 대신 나아만으로부터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는 고백을 이끌어 냈습니다. 엘리사는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는 그만 재물에 눈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온 금은보화를 하나도 받지 않고 눈앞에서 돌려보낸 엘리사를 보면서, 게하시는 내가 그를 뒤쫓아가서 무엇이든 좀 얻어 와야 하겠다하고 마음을 먹고, 시리아로 돌아가는 나아만의 행렬의 그를 뒤쫓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22절입니다. “별일은 없습니다만, 지금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면서, 방금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언자 수련생 가운데서 두 젊은이가 왔는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엘리사가 하지도 않은 말을, 엘리사가 한 것처럼 꾸며서 나아만에게 말한 것입니다. 은 열 달란트를 가지고 왔으니, 한 달란트 쯤 달라고 하는 것은 티가 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드리다뿐이겠습니까? 두 달란트를 드리겠습니다.” 하고 게하시가 요구한 것의 두 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은 두 달란트를 받아들고 온 게하시는, 돌아와서도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계속했습니다.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냐?”는 엘리사의 물음에 저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습니다하고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나병이 옮아갈 것이고, 네 자손도 영원히 그 병을 앓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정말로 나병에 걸렸습니다.

 

이방인인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자기를 내려놓고 생명을 얻었지만, 예언자 엘리사 곁에 있는 게하시는 생명을 내려놓고 자기욕심을 취했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이르렀지만, 게하시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곁에서도 생명을 잃었습니다. 나아만은, 시종으로 끌려 온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의 미세한 목소리를 통해서도 승리의 가능성 보고 무시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통해 끝내 생명을 얻었습니다. 궁극의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큰 목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당대의 예언자 엘리사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가르침을 날마다 듣고 보며 살았지만, 그는 엘리사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고,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자리를 옮겼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에서 죽음으로 옮겨갔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잇는 후대의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556절 이하의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55:6-7) 하고 선포합니다.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돌이켜 주님을 찾고, 그분께로 돌아오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통해서도 당신의 크고 위대한 일을 말씀하시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가 귀를 기울일 때에만 들리는 말씀입니다.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예언자 곁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게하시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음성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내려놓는 이들에게만, 그리고 들리는 말씀 앞에 순종하고자 할 때에만 들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마치며,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우리의 눈을 뜨고, 귀를 활짝 열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죽음에서 건지신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은총 가운데 구원하시어 새날을 허락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한 주간 이 마음을 품고 살아가며, 주님 은총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성령강림절 네 번째 주일을 보내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14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 (2022.8.7. 성령강림 후 제9주) 홍목사 2022.08.07 13
1013 인심은 마음에서 난다 (2022.7.31. 성령강림 후 제8주) 김준영 2022.07.31 33
1012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2022.7.24. 성령강림 후 제7주) 홍목사 2022.07.24 29
1011 환대하는 삶 (2022.7.18. 성령강림 후 제6주) 홍목사 2022.07.17 35
1010 높은 뜻 위대한 삶 (2022.7.10. 성령강림 후 제5주) 홍목사 2022.07.10 42
» 나아만과 게하시 (2022.7.3. 성령강림 후 제4주) 홍목사 2022.07.03 39
1008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2022.6.26. 성령강림 후 제3주) 홍목사 2022.06.26 60
1007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2022.6.19. 성령강림 후 제2주) 홍목사 2022.06.19 50
1006 경청과 실행 (2022.6.12.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 홍목사 2022.06.12 50
1005 너희와 함께 또 너희 안에 (2022.6.5. 성령강림절) 홍목사 2022.06.05 52
1004 주님이 바치신 기도 (2022.5.29.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홍목사 2022.05.29 37
1003 그 사람은 걸어갔다 (2022.5.22. 부활절 제6주, 웨슬리회심기념주일) 김준영 2022.05.22 50
1002 서로 사랑할 때 (2022.5.15. 부활절 제5주) 홍목사 2022.05.16 50
1001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2022.5.8. 부활절 제4주, 어버이주일) 홍목사 2022.05.08 38
1000 회심과 성화 (2022.5.1. 부활절 제3주) 홍목사 2022.05.01 39
999 주님이 보내실 때에는 (2022.4.24. 부활절 제2주, 교회창립 기념주일) 홍목사 2022.04.25 69
998 부활의 아침 (2022.4.17. 부활절, 부활주일) 홍목사 2022.04.17 45
997 다 이루었다 (2022.4.15. 성금요일) 홍목사 2022.04.16 27
996 나라가 임하시오며 (2022.4.10.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고난주일) 홍목사 2022.04.10 43
995 주님을 위한 잔치 (2022.4.3. 사순절 제5주) 홍목사 2022.04.03 3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