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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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마음에서 난다

 

본문: 시편 107:1-9; 누가복음 12:13-21

설교: 김준영 전도사 (2022.7.31. 성령강림 후 제8)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15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12:13-21, 새번역)

 

- 평화의 인사

 

자비로우신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온 교우와 함께하시길 빕니다. 절기상으로는 대서를 지나 입추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하늘도 더웠는지 마른하늘에 소나기를 퍼붓더군요. 40도에 육박한 폭염에 모두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 온도상승이 기후위기의 전조이자 결과인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기 같은 실질적인 삶의 전환의 움직임은 미진합니다. 창조주를 믿고, 이 땅의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부터 환경을 돌보고,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태도를 연습해야겠습니다.

 

- 곳간에서 인심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의 뜻을 아시는지요? 의식주 형편이 어느 정도 풍족해야 다른 이들을 도울 넉넉함이 생긴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내가 먼저 넉넉해야 다른 이들의 필요와 결핍을 볼 너그러움이 생기는 것은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먹고 살만큼의 형편도 아닌데 누군가를 돕는 일은 오지랖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누고 도울 순간에 선뜻 손을 내밀기보다 주저하며 그 순간을 지나칩니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도움의 손길까지도 뿌리쳐야 하는 기로에 놓일 때가 종종 있지요.

 

그런데 이 넉넉함", “여유"라는 단어가 절대적 가치입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들은 상대적인 표현입니다. 저마다의 넉넉함", “여유"의 정도가 다르지요. 가령 목사님 가정과 제가 3kg 쌀 한 포대씩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수량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혼자 사는 제게 이 쌀 한 포대는 충분합니다. 어쩌면 과분합니다. 매 끼니 쌀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먹으니 먹어도 얼마나 먹을까요. 하루에 한 끼씩 먹는다고 해도 한 달 정도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가정에는 네 식구가 살고 있으니 3kg 쌀 한 포대가 있다고 집에 쌀이 넉넉히 있다.”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똑같은 양을 가지고 있더라도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내가 가진 소유의 가치는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쌀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이런 상대적 가치 판단 요소는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질문해봅니다. “인심어디에서 나는 것일까요?

 

-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들

 

오늘 누가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 전반부에는 예수님께 자신과 형제 사이의 유산 문제를 판결해달라고 찾아온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후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랍비는 법적 문제를 판단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남자는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랍비로 생각했기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랍비 예수에게 이 유산 문제를 판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무리한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후술될 이유로 그 요청을 거절하시기도 했지만, 먼저는 이 사람이 질문한 타이밍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누가복음 124절부터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를 보려고 모인 수만 명의 사람과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오롯이 예수 본인의 삶에 잇대어 비유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인자”, 그러니까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자신의 삶에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구주라 시인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시인한다는 말씀, 그러니까 예수님의 삶 전체를 진지하게 "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로 결단한 이들에게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던 맥락에서 눈치 없이 자신의 유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온 이를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예수님이 판결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되묻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_ 12:14, 새번역

 

예수님의 길에 참여하는 일이 곧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고 누리는 일임을 줄곧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내 소유의 문제와 생명을 결부시키는 데 집중하는 이에게 복음은 쇠귀에 경 읽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만 명이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모였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 모인 이는 지극히 소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칩니다.

 

- 인심은 곳간에서 날까?

 

예수님은 자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을 꾸짖기도 하시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알아들을 때까지 그들의 입장과 시선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그런 예수님의 표현법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어 주시며, 평이한 언어로 그들이 복음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우십니다.

 

여전히 자신에게 갇혀 있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보다 내 삶의 부요함이 우선시되는 이들에게 유산 논쟁 다음 소개되는 부유한 농부" 비유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도록 요구합니다.

 

곡식을 쌓아둘 정도인 것을 보면 비유 속 농부는 소작농이 아니라 지주였을 것 같습니다. 풍년이었는지 거둔 곡식을 저장할 곳간을 확장해야 했습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그는 파이어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파이어족이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만들어진 신조어로, 경제적 자립을 확보해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이제 그는 더 이상 일할 필요도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

 

19절에서 부농이 말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_ 12:19, 새번역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분명 농부를 성실하게 밭을 일구었습니다. 게으름 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데 주님은 이런 부농의 태도를 꾸짖으십니다. 자신은 수고로운 노동을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가 여러 해 동안 쌓아둔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순간에도 근근이 삶을 연명하는 사람도 있고, 그가 이룬 부가 오롯이 그의 수고로만 이뤄진 것이 아닐 테기에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으로 소외된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의 안전과 안락에만 머물고 자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_ 12:20-21, 새번역

 

여기서 말씀이 주목하는 지점은 부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그 부를 이루기까지의 수고를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 부를 쌓아올리며 미처 감지하지 못한 마음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지요.

 

- 나의 풍성함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동체

 

우리 교회 헌장 3, 4항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3. 이 교회는 주체 의식을 지니고 예배, 친교, 교육 및 선교에 창의적으로 참여하는 "하느님의 백성" 곧 평신도를 주축으로 한다.

4. 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사랑의 생활을 실현하기 위하여 회원 간의 인격적 사귐을 강조한다.

 

지난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모인 후원금을 떠올려봅니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십시일반하니 아침부터 저녁, 간식까지 모자람 없이 맛있는 식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돈이 남아 지난주에도 아이들은 케이크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누구하나 강요하는 사람 없이 주체적으로 서로의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서로에게 돕는 존재들이 되었던 경험은 교회 공동체에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로의 사귐이 단순한 인적 교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까지 그 소중한 나눔을 가져가는 이들을 통해 교회는 세워져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두 사람을 꾸짖으신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자신의 필요해 의해 판결을 요청하고, 제 아무리 곳간을 모자람 없이 채운다고 한들,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고자 하셨던 지점은 바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잠언의 말씀을 떠올려봅시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_ 4:23, 새번역

 

마음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 마음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초대하시는 복음의 삶역시 마음으로 반응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들, 저마다의 마음이 요지부동이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돈이 이 시대의 만능신, 절대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우리를 기만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깨어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진지하게 예수님의 길에 참여하고자 애쓰는 입장을 분명히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모인 우리는 그 물질만능주의가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신실하고 선한 참 생명"을 맛보길 원하며 모인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실 되게 교회의 창의적인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결단했다면,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우리 생활양식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이라면 이 문제에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단순하지만 명료한 사실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곳간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곳간의 키를 쥐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함을 가진 자만이 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견결히 붙드는 사람이라야만 나의 부요함을 서로의 풍요로 나누는 사람들로 세워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가 서로의 풍요를 위해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서로의 삶에 스며들길 기도합니다. 서로가 느슨하지만 건강하게 삶을 나눌 때, 세상은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교회가 복음으로서 그 마음을 이 세상에 나눌 때, 세상을 풍성히 하는 우리 교회는 빛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의 비유는 이런 당부로 맺어집니다.

 

28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_ 12:28-31, 새번역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 말씀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이 자본의 힘이 더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벼락부자뿐만 아니라 벼락 거지"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막대한 투자 자본의 힘 앞에서 노동의 가치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집도 주거 기능 보다 투자 가치로 그 효용이 판단되고 있는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말씀이 이 세상에서 무의미하게 들려올 때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기를 당부하시고 그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무엇이 넉넉한 삶일까요? 무엇이 넘치는 삶일까요? 무엇이 영원한 삶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여전히 인심이 곳간에서 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언 11장의 지혜를 나누며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24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25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 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26 곡식을 저장하여 두기만 하는 사람은 백성에게 저주를 받고, 그것을 내어 파는 사람에게는 복이 돌아온다.27 좋은 일을 애써 찾으면 은총을 받지만, 나쁜 일을 애써 추구하면 나쁜 것을 되받는다.28 자기의 재산만을 믿는 사람은 넘어지지만, 의인은 푸른 나뭇잎처럼 번성한다.(11:24-28, 새번역)

 

주님을 믿기에 이 시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여러분, 주님의 마음을 품어 살아갑시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2:78)의 마음을 품는 이들은 이제 주님을 닮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곳간으로 마음의 넉넉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곳간이 이 세상에서 작다거나 없어도 마음을 전하지 못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곳간의 크기와 거기 채워진 물질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으로 서로를 풍요롭게, 풍성하게 북돋우는, 생명의 증인으로 한 주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빛임 드러내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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