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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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문"
이 계준 목사

시편 23:1-6
요한 복음 10:7-10

요즘 소위 게이트사건이라는 것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모든 게이트는 청와대로 통한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원래 게이트라는 말은 미국의 워싱턴DC에 워터게이트라는 빌딩이 있는데, 그 빌딩에 반대당의 정보를 얻으려 닉슨 대통령이 도청장치를 했는데, 그 사실을 극구 부인을 하다, 진실이 밝혀져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불행을 맞이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이 게이트란 말은 권력과 관계된 부정 부패를 가르키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이트, 문이라는 말은 집이나 혹은 나라의 상징을 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파트에 많이 살고 있어서 문이 없지만 는, 서구의 개인 주택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문이 많이 있고, 그 집을 많이 부각시키고, 또 문패가 잘 걸려있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파리의 개선문이라든지 페이징의 천안문이라든지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또는 서울의 사대문 그 사회와 나라의 상징을, 여러 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이라는 말은 가문, 명문, 독문 이라든지 어디에 입문한다든지 이런 말을 앞에 붙여서 사람의 사회적인 신분에 관계되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이렇게 말씀할 때 시편 108편20절에 이것이 `야훼의 문 의인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는 구절을 연상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목축문화의 표현으로써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 뜻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예수 님은 양들이 목장으로 출입하는 문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 님을 거쳐서만 하나님의 목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10장 1장에서 양들은 이문을 통하여 양 우리에 들어가지만, 도둑과 강도는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딴 곳으로 넘어 들어간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문은 넓은 문이 아니라 그가 말씀하신 대로 틀림없이 좁은 문일 것입니다.
일단 양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은 어떠한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의문을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 밖에는 양을 잡아 팔려 하는, 생명을 해치려는 도둑과 강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도둑이나 강도는 예수 님에 대한 반대 세력이나 당시에 교회를 유혹하는 이단, 혹은 핍박하는 권력을 말할 수 있다고 성서학자들은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목장에 일단 들어서면 안전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양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이리가 끼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우리 안에서는 예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시편23편4절의 말씀처럼 `언제나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비록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 곁에 항상 계시오니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는 안전감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양인 우리 인간은 항상 예수의 문안에 머물기를 싫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목장 밖의 세계를 동경하고 목장 밖의 다른 넓은 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런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세 가지 유혹, 곧 물질, 명예, 권세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할 뿐만 아니고, 사실상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그러한 현실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유혹을 이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세속의 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은 모든 삶과 생명이 보장되는 안전 지대가 있다고 믿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들이 이러한 의식구조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안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대로 대통령이 자기가 가장 신임한 부하에게 시해를 당하고, 우리가 믿고 맡기는 은행직원들이 고객예금을 수십 억씩 착복을 하고, 또 우리가 탄 자동차와 비행기가 언제 어느 때 사고를 당할지 예상할 수 없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에게 언제배신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믿던 미국의 심장부가 테러의 대상이 되었고, 지구 온난화에 의해 기후 변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떠한 재해를 가져올는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그것이 가정이든 사회이든 나라이든 ,안전지대는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가정이 여행 중에 강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여행중 샌디에고 근처 어느 캠프장에서 천막을 치고 밤을 지내는데, 총을 든 강도들이 달려들어 소유물을 다 내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그 남편의 머리에 시편23편의 말씀, `원수 앞에 상을 베푸시고`라는 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원수들 앞에서 참으로 정찬을 차려 주리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또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기타도 내어놓으면서, 이 기타를 가지고 가십시오 참으로 좋은 기타입니다. 그리고 기타를 주기 전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관타나메라를 아주 멋지게 불렀습니다. 한 절 부른 후에 도둑들에게 같이 부르자고 했더니 또 도둑들이 같이 불렀다 합니다. 그러자 마음이 기뻐지고 평화가 마음에 들어오더랍니다. 도둑인 인디안 들은 백인들에게 너무나 착취 만을 당해 강도질이외에는 살길이 없다고 도둑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이 사람들에게 재물을 다 주는 것은 지금까지 백인들이 착취하는 것을 돌려주는 것이고, 부의 재분배다 이렇게 편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얼마동안 노래를 같이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그들은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안전지대가 어디에 있느냐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안전지대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의 문안에는 좋은 풀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23편 첫머리에서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운 것이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치도다`고 노래를 했습니다.
요한 복음 66장35절에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빵을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대답하시기를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양들이 먹고 자랄 풀밭이 따로 있는 것처럼 묘사했지만, 요한 복음의 기자는 예수 자신이 좋은 풀이고 영원한 양식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의 말씀과 삶과 죽음과 부활이 곧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에는 고기 먹는 날이 곧 생일이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위로 형님과 누나들이 넷이 죽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저의 아버지가 평양에서 나문박 교회라고 하는 제법 부유한 동네에서 목회 한 덕에 저는 살아남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육류 소비량이 늘면서, 이에 따르는 질병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채식주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와 코카콜라가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크식품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육신의 음식이 좋고 나쁜 것이 있듯이 우리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음식에도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음식이 우리의 사회생활과 정신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크게 영양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영적 양식 곧, 좋은 풀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그 사랑, 이와 같은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되는 것이고, 하늘로부터 주시는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떳떳하게 기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유혹이나 갈등이나 죽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지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풀을 먹고 살 때 육신적, 정신적으로나, 개인적, 가정적으로 건강할 수 있고 성숙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불량식품 영양가가 없는 식품, 독소가 들어 있는 풀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탐욕과 음모와 질투 무책임과 사기와 다툼과 등 이런 것들이 다 불량식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불량식품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마약, 도박, 성 혹은 사행심을 자극하는 복권 같은 것, 참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량식품은 우리자신과 가정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회의 정신적, 윤리적 근거를 무너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각성된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풀을 먹고 건강한지, 아니면 세속적인 풀만 먹고 삶의 위기에 빠져 있는지 늘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풀을 선택하여 먹고 씹고 그것을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와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님의 목장에서 스스로 뜯어먹어야 되고, 소화를 시켜야합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뜯어 먹이거나 소화까지 시켜 주시는 일 까지는 절대로 하시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로 예수의 문안에는 생명의 풍성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서 풍성하게 하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원수 앞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한평생 은총에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의 집에 거 하리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목장 안에는 약동하는 삶이 있을 뿐 만 아니고, 그 삶이 무진장으로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목장은 도둑이나 강도들로부터 안전할 뿐더러 생명의 양식이 있어서 그 환경과 음식은 삶의 근원이 되는 동시에 주님에게는 진리와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더 높여주기도 합니다.
나는 요즈음 과거의 바빴던 생활을 반성하고 보고는 합니다. 눈코 뜰 사이도 없이 분망 했던 생활이 과연 생명의 풍성함을 맛 본 때인가? 이렇게 한번 반성해 봅니다.
할 일이 많고 바쁘면 풍성한 삶이 라고 믿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알맹이가 없고 얼이 빠진 생활 영원한 의미나 목표가 없는 나날이 아니였던가 자문자답해 보는 것입니다.
집안의 가재도구들을 살펴보면 없어도 살아가는데 조금도 지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있음으로서 공간만 더 차지하게 되어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것과 꼭 같은 것이 우리의 바쁜 나날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DNA개발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삶의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결단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그 다음에 나머지는 책임을 지는 그런 일 마음을 비우고 서로 나누어 먹음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 이해와 협력과 정의를 통해서 오는 평화, 이것이 나 자신과 모든 이웃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없는 호화스러운 삶이라는 것은 곧 말라죽을 들꽃의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미국의 거부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3세가 되었을 때, 혼자서 서기도 힘든 허약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을 벌어야한다는 강박관념, 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일주일 동안 먹는 음식이라고는 우유 몇 잔과 과자 몇 개 뿐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98세까지 살게되었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가? 돈을 한참 벌 때는 운동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도 없이 그냥 돈만 벌었습니다. 돈을 벌면 행복하고 돈을 못 벌면 불행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까? 부하직원이 배신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나고만 것입니다. 주치의가 당신이 이제 살려면은 돈과 생명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생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의 생활이 180도 달라졌는데, 아침마다 꽃에 물을 주고 가꾸고 쉬는 시간에는 음악감상을 하고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돈을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아니고 이 돈이라는 것이 인간을 위하여 어떻게 쓰면 가장 요긴하게, 중요하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고 페니실린 개발을 위해 투자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에게는 학비를, 다른 나라 젊은이들을 위해 인도주의적인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참 돈벌이에 열중해 있을 때는 불면증으로 고생했었는데, 돈을 쓰기 시작해서 부터는 그 다음날이 그리워졌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을 때에는 온갖 죄악에도 가책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그가 아낌없이 나누어 줄 때에는 나쁜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항상 선한 생각만 나고 미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입니다. 록펠러가 투자한 것은 돈이었지만 사랑을 함께 하여 투자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것을 통하여 삶의 풍요로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으로 들어오면 안전하고 좋은 풀이 많이 있고, 삶이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문으로 들어 갈 것입니까? 우리는 게이트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청와대로 향하는 게이트냐? 예수를 향하는 게이트냐?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가 결정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책임에 속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는 모든 세속적인 게이트를 버리고, 예수 사건의 게이트로 들어가려고 하는 결정, 이것이 가장 축복된 양의 선택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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