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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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시대




창세기 33:1-11; 마태복음 5:21-26


2009. 8. 23. 신반포교회 손원영목사


1. 


올해는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이 참 많은 해인 것 같습니다. 특히 가까운 분들, 또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참 많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연초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했습니다. 추위에도 수 많은 추모인파들이 명동성당에 모셔진 추기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길게 줄지어 늘어섰던 것이 엊그제 갖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선문답 같은 말을 남기고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 일 전에는 저의 선생님이신 김찬국 교수님께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 구약학을 가르쳐주신 분인데,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 “저에게는 김도 있도, 찬도 있고, 국도 있습니다. 밥만 있으면 이제 다 있습니다” 라고 유머스럽게 인사하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특히 김찬국 교수님은 이계준 목사님과 같이 연대 교수로 계실 때 해직되어서 옥살이를 하셨는데, 그 때 사모님께 팬티 고무줄에 깨알같이 쓴 편지를 써서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또 몇 일 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또 서거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 것이지만, 이렇게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던 분들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것 같아 새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를 지지하던 그렇지 않던 그를 빼놓고서 우리는 결코 한국현대사에 대해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만큼 그 분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도 이제 역사 저 너머로 넘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새삼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고 잘 사는 인생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우리 속담에 삼인행이면 필유아사언, 그러니까 “세사람이 함께 걸어갈 때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되는 분이 한 분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분이든 혹은 반대하는 분이든 그 분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인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저는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화해’(reconciliation)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분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많은 삶의 모습 중에서 저에게 감동을 준 것은 바로 그의 죽음을 앞두고 이루어진 일련의 화해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생각하기를, 그렇게 화해하면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혹 누군가를 서운하게 한 일이 있으면 죽기 전에 용서를 빌고, 또 화해하고 죽어야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김대중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평생의 동지요 라이벌관계였던 김영삼 대통령이 그에게 문병 갔습니다. 사실 최근까지 김대중 씨를 제일 미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김영삼 씨 아니었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YS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15년 넘게 한결 같이 그 두 분은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김영삼 씨의 일방적인 공격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씨를 그렇게 미워하던 김영삼 씨가 김대중 씨를 찾아가서 화해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당신이 DJ를 방문한 것이 화해의 메시지로 읽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이해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가슴에 찡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김대중 대통령의 병실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문을 하였습니다. 사실 김대중 씨에게 있어서 전두환 씨는 정말로 원수와 같은 존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잘 알듯이, 김대중 씨는 바로 전두환 씨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았고 고문과 모진 풍파를 다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씨를 방문한 뒤에 소회를 밝히는 전두환 씨의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아마도 전두환 씨만큼 미움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독재자와 부정축재자라는 악명이 지금까지 그를 따라 다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증언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역대 대통령 중에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가장 많이 10번 이상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갔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청와대에 가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매우 소상히 소개받을 수 있었고, 또 나올 때는 좋은 선물도 건네받았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화해의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사형언도를 내린 사람을 가장 많이 청와대에 초청해서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그의 의견을 경청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어서 아마도 가장 큰 적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었을 것입니다. 기록에 보니까, 김대중과 박정희가 서로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단 5분 동안 이루어진 한차례의 만남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968년 어느 날 국회의원들과 함께 청와대에 가서 말입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후 2000 년대 초 어느 해 인가 한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습니다. “자신은 처음에 박정희 대통령은 차갑게 냉정하고 엄격한 분으로만 생각했는데, 정작 그분을 만나보니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박대통령에 대한 인상을 밝히면서 환하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고, 자신의 임기 중에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런 후, 박근혜 씨가 김대중 씨를 찾아와서,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모습, 그리고 박대통령이 재임하는 중에 김대중 씨에게 고통을 주었던 일을 아버지 대신 사과하는 모습, 지금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김대중 대통령이 죽음을 얼마 앞둔 시점에 쓴 일기에서, “인생은 아릅답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계속 발전합니다.”라고 적었다고 하는데, 정말 화해와 용서가 있는 인생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3. 

오늘 본문인 창세기 33장의 이야기는 성경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해와 용서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본래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형 에서에게 늘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과 그 형 에서는 본래 쌍둥이였는데, 그 둘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서로 경쟁하며 싸우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형 에서는 ‘털’이 많다는 의미에서 에서이고, 야곱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형에게 지지 않으려고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의미에서 야곱입니다. 그만큼 형 에서는 털이 많고 그래서 남자답고 씩씩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에게 늘 불만이 많고, 얼울하고 그래서 어쩌면 열등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팥죽 한 그릇에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산 뒤, 그 죄책감과 또 형의 분노를 피해 밧단아람이라는 삼촌 라반의 집으로 몸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형을 피한 해가 거의 15년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혼을 해서 많은 자녀를 얻었고, 재산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인생은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야곱이 그랬습니다.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갈취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의 재산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의 자녀들이 무슨 행복이 되겠습니까? 혼자만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죄의식과 인생의 허무감을 그는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재 가장 밑바닥에서 흐르는 죄의식을 해결하지 않는 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타향에서 그냥 죽는다면, 죽어도 결코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하게 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형에게 맞아죽는 한이 있어도, 형에게 찾아가서 용서를 빌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고향으로 향해 갑니다. 그리고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면서 형을 만날 용기를 얻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아내는 이야기가 창세기 32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창세기 33장은 그렇게 고대하던 형을 드디어 만나는 장면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으로 형을 만나는지 오늘 성경은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장면을 한번 그려봅시다. 33장 1-3절입니다. 형 에서가 장정 400명의 개인군대를 거느리고 저 멀리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을 맞이하려고 할 때, 혹시 형의 군대가 자신들을 해치지는 않을까 그렇게 여전히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두명의 몸종과 그들에게서 난 자녀들을 재미있게 줄을 세우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부인인 라헬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을 맨 뒤에 위치시킵니다. 아마 유사시에 가장 빨리 도망갈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두 번째로 사랑했던 레아와 그 자녀들을 라헬 다음에 위치시키고, 자신의 몸종에게서 난 자녀들을 가장 앞 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맨 앞줄에 서서 형에게 가면서, 일곱 번이나 절을 하면서 형에게 나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야곱이 형을 만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용서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렇게 형에게 나아갔던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화해에 이르는 길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 보복 받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하는 마음,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히 가족에게 혹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빨리 도망갈 수 있도록 뒤에 서게 하는 배려의 마음이 묘하게 얼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김대중 씨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특별히 김대중 씨와 개인적인 적대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 김대중 씨의 병실을 찾고 또 문상을 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얼굴 속에서 무언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보복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러면서도 한쪽 구석에 타오르는 화해에 대한 열망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우리 중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데 미워하는 마음을 그치고, 이제 화해하고 싶으나, 화해를 위해 찾아갔을 때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야곱처럼 사랑하는 가족들,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장 안전하게 배려하여 가장 안전한 곳으로 먼저 위치시켜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다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마음으로 맨 앞줄에 선 야곱처럼, 그렇게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용기 있게 나아가되, 가장 겸손한 방법으로 절을 일곱 번이라도 하면서 그렇게 겸손하게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방식입니다. 죄를 용서받는 방식입니다.

  여러분, 우리시대의 비극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살아가는 시대가 된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하면, 참 사람 냄새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기독교인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깨끗이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 그런 자가 진짜 기독교인이라고 믿습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죄를 땅 속에 그냥 감춘 자가 아니라 당당히 용서를 구하는 그런 용기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장면을 상상해 보십시다. 둘째장면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동생 야곱을 맞이하는 에서의 모습입니다. 에서는 자신에게 절을 하면서 다가오는 야곱을 바라봤습니다. 15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던 동생이 지금 자신에게 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하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바라보자 가슴이 뭉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마냥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곱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엉엉 웁니다. 그리고 야곱과 함께 온 사람들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형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마음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그런 형제애에 대한 그리움을 그는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계속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동생에 대한 배신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보낸 수많은 날들이 머리 속으로 스쳐지나갔을 것이고, 동생에게 속아 넘어간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탄하면서 수많은 눈물을 흘렸던 지난 날들이 또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작 동생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그 역시 두려운 마음으로, 복잡한 마음 그대로 동생 야곱을 맞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만약을 대비해 400명이나 되는 장정을 데리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겸손히 용서를 구하면서 절을 하며 다가오는 동생을 보자 형의 마음은 갑자기 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갖고 있던 미워하는 마음이 홀연히 아침 안개 걷히든 사라지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말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자 동생이 그렇게 측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에서는 장정들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체면도 다 내어던지고, 동생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야곱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웁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이야기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그렇게 에서는 야곱을 용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화해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쌍방적인 사건입니다. 화해는 한사람만 좋은 마음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용서받고 형과 화해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형 에서가 갖고 있었던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DJ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데는 아마도 자신을 찾아온 적대자를 용서하고 그와 화해했다는 점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에게 용서받기 위해, 화해하기위해 나가오는 이가 있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어 둡시다. 에서처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왜 내 장자권을 훔쳤느냐고 따지지 않고 그냥 그가 그대로 야곱을 껴안았듯이, 그렇게 그냥 그대로 받아줍시다. 그것이 화해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시대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용서받고 화해하고자 다가가는 이가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다가가는 자를 그대로 받아주는 넓은 마음, 넓은 가슴을 가진 자가 적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란 누굴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사람은 진짜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 진짜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를 그대로 넓은 가슴으로 받아주는 자입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이요, 돌아온 탕자 둘째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아버지와 같은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정말로 그런 인간미 풍기는 그런 존재들이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끝으로 야곱과 에서가 그렇게 부둥켜 안고 화해할 때, 야곱은 위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 합니다.”(창33:10) 그렇습니다. 화해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까? 아니면 땅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구하는 자를 용서해 줄 때, 그래서 그렇게 화해의 사건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바로 그 한 복판에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잘못을 대해 겸손히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화해하십시오. 그리고 그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는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화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동이 화해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이 화해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대만이 화해하고 있고, 백인과 흑인이 화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유독 한국만 화해의 시대에 동참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남과 북이 화해하지 못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고,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원수로 대합니다. 바라기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전환점으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화해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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