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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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교회로!       
     
신반포감리교회 이계준 목사(2009.11.20)
본문: 마가 6:45-52, 에베소서 4:7-13     

1.  들어가는 말
   오늘의 말씀은 설교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당명과제와 미래에 관한 저의 생각과 함께 일종의 제안이라고 해서 좋겠습니다.  이것이 오늘 예배 후 여러분들이 당회준비를 위해 참여할 토론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주간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손 목사님이 당회를 위한 토론을 제안하셔서 저는 준비하던 설교를 중단하고 이 원고를 급히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은 쓰기 위해 은준관 박사가 경영하는 실천신학대학원이 지난여름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펴낸 논문집 “한국교회, 하나님 나라 그루터기”란 책에 기재된 글을 몇 편 읽었습니다.  그 논문들은 국내외 신학자들과 신학적으로 훈련된 목회자들이 오늘 서구 및 한국교회가 당면한 위기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매우 귀중한 글들이고 저는 거기서 유익한 새로운 정보와 생각의 실마리를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자료들 가운데서 오늘 우리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해결책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암시와 제안들을 선별하여 이 글을 작성하는데 도움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국내외 교회에서 논의되고 문제시되고 있는 개관적인 사안 및 의견들과 함께 우리 교회에 대한 저의 주관적 생각과 평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급조된 글이기 때문에 조악하고 결함도 있겠으나 여러분들이 이 글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시고 평소에 지녔던 생각을 첨가하므로 생산적인 토론이 진행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토론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의 공동적인 관심사가 확인되고 함께 고민함으로써 우리 교회의 긴급한 현안을 직시하고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먼저 우리의 생각과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Hortford 신학대학원 교수인 제임스 니만 박사의 “작은 교회에 대한 새로운 교회”란 논문에 나타난 교회의 세 가지 정체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이해와 토론의 길잡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니만 교수가 말하는 교회의 첫 번째 정체성은 특정한 장소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교회라는 그리스어인 에클레시아는 하느님의 부름 받은 백성이란 뜻입니다.  이 백성은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부름 받은 백성인 동시에 부름 받은 지역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공원에 세워진 기념탑처럼 그 지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실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두 번째 정체성은 자기 나름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위해 부름 받은 교회가 세속성을 떠나서 자기의 성서적 및 신학적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란 곧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느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위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 Mission of God)로써 인류의 자유, 정의, 평화를 위한 헌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교회 즉 평신도는 주어진 환경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침묵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의 정체성은 기호(sign)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신학적 목소리를 내면 반드시 교회의 활동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기호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할 때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는 결정적인 매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3.  저는 니만 교수가 말하는 위의 세 가지 교회 정체성에다 우리 교회의 현실을 비추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우리 교회와 분당이란 지역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교회가 분당으로 옮겨온 이후 이 지역에 사는 교인이 등록한 경우도 없고  또한 우리 교회가 이 지역을 위해 하는 활동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포동에서 이곳에 이전한 직후 지역조사와 함께 지역선교를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곧 시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지역문제와 관련해서는 본래 우리 교회가 무관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에 강조점을 두고 시작되었지만 지역 선교보다는 폭넓은 선교 즉 농촌, 빈민촌, 환경, 장애인, 문화 등 시급하고 일반 교회가 관심 없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개포동에서 지역적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우리의 한계와 사안의 선별로 인해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분당에 온 이후 우리는 선교에 관한 한 정체성 상실에 빠진 것 같습니다.  지역 및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논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교회 자체의 유지와 개인적 신앙생활에 집착되어 있는 것 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비판하는 대형교회의 현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배타적 인본주의”란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의 풍조가 하느님의 목적보다는 인간의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특수한 목소리에 대한 것인데 이것에 관한 한 우리교회는 초지일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 여 년간 평신도 신학강좌와 설교를 통하여 현대신학사상과 한국적 신학을 소개함으로써 여타 교회에서는 감히 접할 수 없는 진취적 신앙이해와 함께 우리의 토착적이고 창조적인 예배행위를 통해 차원 높은 교회생활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교회는 장담하건대 세계의 유일한 존재라고 해서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현대 및 토착 신학을 강조해 온 궁극적인 목적은 평신도들로 하여금 자기 신앙을 바로 이해하고 21세기 동료 인간들에게 제 목소리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 개인의 판단으로는 이러한 목적이 1세대에서는 십분 성취되었고 2세대에서도 상당히 발전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분당으로 옮겨온 다음 우리의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참여하는 분들이 증가하였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각자가 가정, 사회, 직장 등 주어진 환경과 활동에서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자기의 확신을 말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힘겹고 벅찬 과제로써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내와 희생과 헌신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우리는 이론신학보다는 실천신학에 좀 더 강조점을 두었으면 합니다.
    셋째는 우리 교회가 하느님을 나타내는 기호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부족하였다고 말해서 좋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사명을 다 하면 지역 주민이 자율적으로 교회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에는 지역주민으로 동록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기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본래 우리 교회는 교회성장보다는 폭넓은 선교에 집중하였습니다.  따라서 난지도, 양동 맹인 촌, 강화를 비롯한 농촌, 문화신학회, 한일기독교문인 세미나, 기독교 출판 그리고 인재양성 등에 주력하였고 그 공헌은 높이 사야 한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선교분야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므로 기호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출발점이었던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4.  희망의 교회로!
    우선 우리 교회가 “희망의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요소를 지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요소를 개발하고 적극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가. 부정적인 요인 가운데 첫째는 교회의 제도 혹은 직제에 관한 논의를 지양하는 것입니다.  여러 편의 논문에 제도나 직제를 문제시하는 글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현재 이 문제에 걸려 있는 교회는 우리가 유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의 일치가 없을 때는 기존의 법을 따르는 것이 상례이므로 감리교 헌법에 준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조직에는 제도와 직제가 있고 그것은 조직의 존재와 봉사를 위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장점을 살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상 제도 없는 교회가 등장한 일이 있었습니다.  케이커교와 일본의 무교회주의인데 지금 그것들은 거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해방 후 서울의 향린교회가 유일하게 평신도들(안병무, 장하구, 곽상수 등)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기장교회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제도 없는 교회는 제도 없는 가정, 회사 또는 군대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직책을 수반하고 직책은 책임을 요청합니다.  그 책임을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감당하는 회원이 많을수록 그 조직은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둘째는 “평신도중심”이라는 개념을 대소하자는 것입니다.  수표교교회의 김고광 목사는 “성직자중심에서 회중중심으로 목회전환”이라는 글에서 지금 세계교회의 추세는 “성직자중심”에서 “회중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철저한 사제중심의 조직입니다.  그러나 모든 신부가 짧은 기간 동안 목회한 후 다른 교회로 이동하기 때문에 신부가 교회의 주인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교회는 사목평의회가 재정, 행정 및 프로그램까지 맡고 있다고 합니다. 
    김 목사는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현실이 한국교회의 “목회자중심”에서 오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모델은 교역자와 평신도의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바람직하고 지금 우리 교회가 이 모델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장기간 체류하는 개신교회에서 평신도 운영위원회가 성례집행 이외의 모든 책임을 감당하려면 신학, 목회 및 행정의 차원에서 상당한 훈련과 책임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김고광 목사의 글에 대해 논찬한 일산산성교회의 윤원영 목사는 새로운 대안을 제사합니다.   “목회자중심”이나 “평신도중심”이라는 말은 권력의 집중현상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용어로는 부적합하므로 “예수중심”이라는 말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평신도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면 교회문제는 자연히 해결되고 발전한다면서 자기가 교회를 개척하고 크게 발전시킨 체험을 간증하였습니다.  저도 평소에 “하느님의 선교”를 논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이란 말을 여러 차례 하였다고 기억되는데 참으로 건설적인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  이제 우리가 “희망의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측면을 지양하는 동시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측면을 개발해야 될 줄로 압니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모두 힘겨운 일이고 우리의 결단과 헌신을 요구하는 사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교회의 전통을 전수하여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새 시대의 요청을 직시하고 이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교회는 새로운 비전을 갖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비전을 꿈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처음 개척할 때 21세기에 합당한 참신한 작은 교회 모델을 만들자고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토착화, 평신도 신학 및 선교 지향성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에는 재정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육에 30%, 선교에 30%, 교회유지에 40% 등으로 예산을 편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예산 부족으로 선교를 위해 10%를 책정하고 해마다 5% 인상하여 드디어 30%에 도달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비전이 있으면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의 생명인 새로운 비전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희망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해마다 작은 교회가 3.000개 정도 문을 닫고 대형교회는 교인의 수평이동으로 현상유지도 하고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 가톨릭교회는 70%의 교인증가를 이루었는데 개신교가 이렇게 정체 내지 감소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시는 바와 같이 군사정권하에서 가톨릭교회가 반정부 운동과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더욱이 김수환 추기경이란 영적 존재가 어두운 사회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경석 목사(서울조선족교회)는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을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한국교회가 1920년대는 민족운동에, 그리고  1970년대는 군사정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서 투쟁하고 희생하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 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 목사는 오늘 교회가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회가 새로운 희망을 보여야 하는데 2천 년 대를 위한 희망은 곧 “선진화”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 생태, 도덕 및 정의의 선진화 그리고 조선족, 탈북자, 세입자 및 재개발 등을 돌보고 돕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교회가 희망을 주지 않는 한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운동권 출신으로 교회발전의 사회적 요인만 강조하고 전도의 요인은 도외시하지만 교회가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민족과 사회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려면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지 알고 이에 응하기 위해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자기희생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경석 목사는 교회가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나눔과 기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낙후지역과 가난한 자를 돕고 있습니다.  지금 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교역자가 3.000명이고 많은 주민, 점포, 기업, 교회 등이 모금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매주 도시락을 500개 또는 1천개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5.  나가는 말
    우리는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가 여기에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 교회의 교인인지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목회자중심이거나 성장 중심의 교회로 출발하였다면 대형교회가 되었거나 아니면 문 닫는 작은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작으면서도 문 닫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필경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의 섭리가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순례자들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일정한 기간에 삶을 이어가다가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순례가 한시적이지만 우리는 순간마다 그것을 의미로 채워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신반포 공동체에 가담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란 인생철학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이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인생을 올인 하는 신앙과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의 토론이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을 깊이 성찰하고 우리교회의 정체성을 밝히고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시한 사안들과 여러분들의 평소의 견해가 잘 조화를 이루어 “희망의 교회!”로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역사적이고 혁신적인 사건은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 그리고 진실한 하느님의 백성의 인격적 결단과 헌신에 달려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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