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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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추수감사절




신명기16:13-17; 요한복음 2: 1-12


2010. 10. 3. 신반포교회, 손원영 목사




1.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하루는 우리가 잘 아는 고진하 목사님의 시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합장”이란 시입니다.




미리내 성지 부근


실버타운 유무상통 마을에 가면,/


성당입구에 


미륵반가사유상처럼


오른쪽 다리 들어 왼쪽 무릎에 올려놓고


두 발과 두 손에 박힌 못 빼어 한쪽 손에 꼭 움쳐 쥐고


다른 쪽 손으로 턱 괴고


가시면류관 헝렁하게 쓰고 앉아


눈웃음 짓고 있는 목조예수상이 모셔져 있지요./


그 상 옆으로 춤추는 소녀 자태의


꽃 핀 양란 몇 분이


춤 멈추고 고개 뚝 떨구고 있는데,/


한 몸뚱이에 환희와 괴로움이 깃들듯


한 몸뚱이에 붓다와 예수가 동거하는 저 상에서


백발의 노인들은 뭘 읽으며 살아갈까요./


동틀 무렵


새벽미사 막 끝내고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빨라지는 시간./


상(像) 앞을 지나며 아무도 본 척도 않는데


휠체어 바퀴를 힘겹게 굴리며


성당에서 나오던 반신불구의 할머니 한분,


상(像)앞에 휠체어를 세우고 공손히 두 손을 모았지요./


그렇게 합장한 두 손이 춤 멈춘 꽃잎처럼 이뻤어요.


(고진하, <수탁> 중에서)




  시가 하도 재미있어서 인터넷을 뒤져봤습니다. 미리내 성지는 무엇이고, 목조예수상은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산소가 있는 곳인데, 그 성지 내 성당에서 유무상통마을이라는 노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복지관의 신부님이었습니다. 그는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파푸아 뉴기니야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출신의 방상복 신부님이십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흑인모습을 한 예수상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건강문제 때문에 귀국한 뒤 복지관을 운영하면서, 파푸아 뉴기니야에서 본 그 흑인예수상을 자신의 목회에 적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복음을 한국의 전통문화와 접목시켜 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말씀드리면, 그는 위대한 한국그리스도인으로서 두 분을 선정하여 그 분들을 기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분은 동양의 마음으로 기독교를 창조적으로 이해한 유영모 선생님이고, 또 한분은 복음의 정신으로 위대한 군인의 모범이 되신 안중근의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영모 선생님의 동서양 화합의 정신을 본받고자 그의 사진을 사제실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차원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안중근의사 서거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안중근의사를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에서는 겨우 올해 처음으로 안중근의사를 가톨릭신자로 복권시키고 그를 위해 추모미사를 드렸는데, 그는 오래 전부터 안중근을 예비성인이라고 과감하게 부르면서, 그를 기념하여 안중근동상도 만들고 또 ‘안중근바보장학회’라는 장학재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분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린 고진하 시인이 “합장”이란 시에서 언급한 ‘예수목조상’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품으로 꼽히는 미륵반가사유상처럼 오른쪽 다리 들어 왼쪽 무릎에 올려놓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두 발과 두 손에 박았던 못을 빼어 한쪽 손에 꼭 움쳐 쥐고, 다른 쪽 손으로 턱 괴고, 가시면류관 헝렁하게 쓰고 앉아 눈웃음 짓고 있는 목조예수상! 바로 그것을 예배당에 모셔 놓은 것입니다. 참으로 멋진 예술품이요, 멋진 성당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한국문화의 옷을 입고 미리내성지 내 한 복지관에서 선포되는 복음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러한 복음이야기는 그 복지관뿐만 아니고 다양한 곳에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추석 명절에 즈음하여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도 바로 한국문화와 복음의 만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치 유무상통마을이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의 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듯이, 오늘 우리 교회는 추석명절에 즈음하여, 한국문화와 기독교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추석을 우리는 어떻게 창조적으로 하나님 신앙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추석의 기원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1년 전쯤, 그러니까 신라 제3대왕 유리이사금 9년에 왕명으로 서울 6부에 있는 길쌈하는 부녀자를 왕궁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편으로 나누어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시합을 시켰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 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고,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추석의 기원은 한마을 여인들의 노동과 놀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추석을 기독교적 명절로 승화하려고 할 때, 교회가 앞장서서 이런 축제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못해 지내는 축제가 아니라, 정말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온 동네가 한바탕 놀이를 하는 그런 축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예배 후에 한바탕놀이로서, 우리의 전통놀이인 윳놀이를 함께 할 생각입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살펴볼 것은 추석의 기원이 달에 대한 민간신앙에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농사를 짓는데 달의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달의 변화에 따라서 씨를 뿌렸고, 또 수확을 했습니다. 따라서 한해 중 가장 달이 밝은 날, 그 날을 택해서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짓는데 크게 도움을 준 달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따라서 추석은 일종의 제천행사로서, 한국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해 농사 진 것 중 첫 수확물을 하늘에게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추석을 기독교적 명절로 승화하려고 할 때, 추석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성서에서 보여주는 유대인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인데, 날짜도 음력8월 15일로써 우리 추석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한국의 교회들이 이 전통에 따라서 추수감사절을 11월 말에 지키는 미국식 추수감사절 대신에 한국의 전통 추수감사절인 추석에 즈음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복음과 한국문화와의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이러한 운동은 한국교회에 더욱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로 생각해 볼 것은 추석에 드리는 차례입니다. 이것은 두가지 종교적 전통이 종합된 것인데, 우선 차례는 불교에서 시작된 전통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날 큰 솥에 차를 끓여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스님들과 신도들이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불이(不二)사상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것이 민간으로 내려와서는 차 대신 술로 차례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종교적 전통은 유교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종교가 된 이래로 그 차례는 이제 조상에 대한 감사의 제사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래서 추석날은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은 뒤 조상에 바침으로써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날로 삼고, 조상의 묘를 살피는 전통으로 이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추석을 기독교적 명절을 승화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불교나 유교에서처럼 똑같은 형태의 차례를 드릴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정성껏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특히 가능하다면, 성만찬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한 해 농사지은 것으로 만들어진 떡과 포도주로 성만찬을 준비해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추수감사절예배를 늘 이렇게 성만찬예배로 드립니다. 특히 올해는 햇쌀로 빚은 송편을 성만찬 떡으로 해서, 포도주와 함께 성만찬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어진 소출물들을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추석은 말 그대로 축제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추석명절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서적 관점에서, 하나님 신앙 안에서 그것을 추수감사절로 재해석해서 우리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결코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한국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3. 


오늘 요한복음 2장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행한 첫 번째 기적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가나의 혼인잔치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추수감사절 축제일을 맞이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두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본문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축제의 삶을 살도록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축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들 때, 언제나 ‘천국잔치’로 설명하면서, 누구든지 다 참여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눅14: 15ff.; 마22:1-10)


  그런데 그 천국잔치에는 술이 있고, 노래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어울림이 있고, 행복이 있고, 웃음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기독교는 지금까지 이런 축제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사상에 대해 소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이해하더라도 종종 어둡고, 슬프고, 괴로운 모습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야합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인생은 진정으로 슬픔과 괴로움의 인생 만이었는지, 아니면 기쁨의 인생이었는지 말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예수의 삶은 비록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삶이었을지언정,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즐거움과 사랑이 넘치는 삶이었다고 믿습니다. 비록 십자가 일지언정 그는 그것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행복으로 여겨 기꺼이 그것을 졌던 분이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왜 예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필 초상집이 아니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자신의 소명을 시작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삶을 이해하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첫 단추가 중요한 것입니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웠느냐에 따라 나머지 단추가 끼워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첫 단추를 축제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모여서 매주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축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축하하는 축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갖는 것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 첫 단추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종교는 축제의 종교입니다. 슬픔의 종교가 아니고 환희의 종교요 기쁨의 종교입니다. 마치 결혼식이 남녀가 하나가 되는 것을 축하하는 잔치이듯이, 예수의 종교는 우리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축하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웃음이 있고, 축제가 있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노래가 있는 삶의 한 복판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이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축제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따라서 우리는 추석을 추수감사의 축제로 새롭게 승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 하나님과 이웃, 가족과 내가 하나가 되는 축제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축제답게 즐겁고 신나게 우리의 삶을 나누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잔치집에 술이 없으면 얼마나 허전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잔치집에 술이 떨어졌고, 예수께서 술이 떨어지자 손수 술을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도 예수처럼 술을 만들자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정신, 아니 예수의 정신이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바뀌는 ‘변화’(metanoia)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물과 같은 존재에서 포도주 같은 존재로 변화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아무런 맛이 없는 물과 같은 존재에서, 정말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향기를 주는 포도주 같은 존재로 거듭나도록 촉구하는 것이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이제 명백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는데도,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향기나는 포도주와 같은 존재로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은 것입니다. 이기적인 존재에서 이타적인 존재로, 마음속에 원망과 미움이 가득한 존재에서 사랑과 용서가 가득한 존재로, 그리고 절망과 한숨이 가득한 존재에서 희망과 용기로 충만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바로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헤어졌던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함께 즐거워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 더 좋은 사람으로, 더 훌륭한 인격적인 존재로, 더 성숙한 존재로,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존재로, 그렇게 변화되었음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추수감사절에는 우리만 즐거워하는 날이 아니라, 신명기에 나오는 초막절의 전통에 따라서, 레위족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즐거워했던 것처럼,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약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신16:14)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정말로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우리의 생각과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더욱 바뀌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새로 내온 포도주를 맛보면서, 어쩌면 뒤로 갈수록 더 맛좋은 술이 나오느냐고 경탄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추수감사절로 인해 더욱 진국이 되고, 더 아름답게 되고, 더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게 되고,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는 그런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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