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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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에 세례 요한을 기리며 

 

본문: 이사야 40:1-5, 마가복음 1:1-8 

설교: 이계준 목사 (2021.12.12. 대림절 제3주)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는 대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뜻깊고 보람찬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성서는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일을 하다가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고 전합니다. 이제 우리가 세례 요한의 족적을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현실에서 대림절의 의미와 우리가 취할 자세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1.

 

복음서 기자들은 세례 요한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와 출생을 중요시하여 그것을 서두에 기록한 다음 3장에서야 요한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러나 복음서 가운데 처음 기록된 마가는 이사야를 인용하면서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닦고 광야에서 회계의 세례를 베푸는 요한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는 모두에 요한의 탄생과 부모에 관한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비아 조에 배속된 제사장 사가랴이고 어머니는 아론의 자손으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이라고 합니다.(1:5) 이 부부는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는데 자녀가 없어 하느님께 간구한 결과 아들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이 기록한 세례 요한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지만(1:9)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다‘(1:27) 고 자기를 낮추었으며 더욱이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공포하였습니다.(1:29) 그는 마지막에 헤롯 안디바스가 이복 형제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취한 것을 비난한 죄명으로 참수당하였습니다.(6:17ff)

 

2.

 

복음서들이 세례 요한에 관해 전하는 내용은 그의 활동을 충분히 밝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개인적이고 영적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존재이므로 한 인물의 삶과 업적을 이해하려면 총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성서 기자들은 로마의 폭정하에서 세례 요한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사실대로 기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세기 중반 미국에서 성서학자들이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라는 학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와 함께 세례 요한에 관한 연구를 병행하였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학자 존 크로산은 <예수 Jesus> (한국기독교연구소 발행)라는 저서에서 성서가 말하지 못한 세례 요한의 사상적 및 역사적 배경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1세기 30년대와 60년대 어간에 로마 통치하에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저항운동이 계속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저항운동들 가운데 묵시종말론(apocalypticism) 혹은 천년왕국설(millenialism)이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두 집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통치자를 섬기는 지식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몸과 힘으로 통치자를 섬기는 농민계급이었다는 것입니다.

 

크로산 교수는 세례 요한의 사상적 배경이 바로 이 농민 묵시종말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모세와 여호수아의 모델을 따랐다고 합니다.(p.84) 묵시 종말론의 특징은 어떤 군사적 폭동을 기대하지 않으며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초월적 힘 곧 하느님의 능력이 악을 물리치고 선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늘과 땅이 하나 되고 정의와 선이 충만한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p.83)

 

크로산 교수는 요한의 묵시 종말론적 저항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로마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요세푸스는 요한의 운동이 비폭력적이므로 순수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상 더 사악한 의도를 지녔다면서 암살자 못지않게 나라의 평화를 파괴하였다고 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 지도자와 무리를 혹세무민하는 자들이고 협잡꾼으로 치부하면서 그들은 하느님이 혁명적 변화를 원하신다는 구실로 군중을 선동하여 광적인 행동을 유도하고 하느님이 광야에서 해방의 증거를 보여주신다고 하며 무리를 광야로 이끌고 나갔다고 했습니다.‘(p.84f)

 

크로산 교수의 말을 요약한다면 세례 요한의 활동은 묵시 종말론적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요한은 옛 조상들이 하느님께 반역하므로 이집트와 바벨론의 노예가 된 것 같이 지금 로마의 식민지가 된 것 역시 하느님께 반역한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세례는 인간의 두 가지 죄 곧 인간이 자기 자신과 욕망을 절대시하는 좌와 이스라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망각한 죄를 씻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목적은 세례를 통해 정화된 하느님의 백성이 주체성과 역사의식을 지니고 요단간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느님의 백성의 조직이 확대되고 묵시 종말적 소망이 충만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시는 메시아의 날을 고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한의 운동은 실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어서 헤롯 안티파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으므로 결국 요한을 극형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지금 대림절을 맞이한 우리가 세례 요한의 신앙과 행적을 우리의 사회-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보면서 우리가 깨닫고 살아내야 할 자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오늘날 역사의식을 지닌 신앙인이 성찰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은 개인적이고 영적인 것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연계되고 융합되며 하나 될 때 온전해지고 무르익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삶의 현장을 어떻게 보고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는 지금 권력과 금력에 사로잡힌 노예라고 하면 저만의 독단적인 이해와 판단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세기에 8.15해방과 6.25 전쟁 이후 온 국민이 전력투구하여 역사상 최단 시일에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대국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실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파 정권의 사리사욕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실권과 함께 등장한 좌파 정권의 사회주의 독재체제로의 전환은 안보와 경제, 인권과 민생을 모두 파기하였으며 나랏빚은 1000조를 넘겼습니다. 더욱이 현 정권은 중국 및 북한과 합작하여 인권과 자유가 없는 생지옥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다해 왔습니다. 미국이 없다면 이 나라는 한순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인민공화국으로 바뀔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또한 근자에 미국 한 연구소에 의하면 선진국 17개국 가운데 한국인만이 물질적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2, 3년 사이에 나타난 현상인데 물질이 행복의 조건일 망정 최고의 가치는 될 수 없습니다. 세계 무역 8대국에서 일어난 이런 기현상은 물신주의나 배금주의 더 나가서는 물질의 우상화로서 하느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6:24)

 

따라서 우리는 지금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사회주의 독재와 물신주의라는 두 악마적 세력에 사로잡혀 멸망의 나락에 떨어지기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신앙적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금 주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묻고 고민하고 결단할 때입니다. 우리의 참회는 먼저 스스로 물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인고를 겪어야 합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산 것처럼 허황된 사치와 욕망을 일소하고 수도승처럼 소박하고 검소한 일상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근검절약과 내핍생활은 황금 우상을 타파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자연 및 역사를 섭리하신다는 신앙 위에 굳게 서서 인간의 생명과 자유, 정의로운 사회와 자유민주국가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체면과 이해관계, 불안과 공포를 물리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각자 처한 상황과 능력에 따라 메시아가 지참하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랑과 정의의 길을 닦는 데 신명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북한 공산주의 경험을 통해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는 개인의 인권과 사유재산 및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군사정권하에서 체험한 것은 독재정권은 비폭력 저항운동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디와 M. L. 킹 목사와 함께 3.1운동의 비폭력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기억하면서 인류역사상 하느님 나라에 가장 근접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국가의 존망, 우리의 인권과 자유 그리고 죽고 사는 문제이므로 여야와 좌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정과 우정, 직장과 사회, 남녀노소와 계층을 갈라놓은 마수를 떨쳐내고 사회주의 권력과 물신주의를 배격하므로 나라와 민족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데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림절을 맞이하는 오늘의 세례 요한인 우리의 사명이고 이것이 우리 자손만대가 번영하는 길이며 하느님의 역사적 섭리에 순종하는 신앙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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