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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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본문: 시편 130:1-8; 마가복음 5:21-43

설교: 홍정호 목사 (2021.6.27. 성령강림 후 제5, 순교자기념주일)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기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바닷가에 계시는데,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 엎드려서 간곡히 청하였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어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여러 의사에게 보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없앴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이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여 들어와서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셨다.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하였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밖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달리다굼!”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하는 말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다섯 번째 주일이며,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순교자기념주일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우리 신앙의 이정표로 세우는 주일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8:34b-35)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삶을 예수님께서는 싫어하시나보다,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8:36)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생명, 곧 목숨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삶만큼 귀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포함한 복음서 이야기의 대부분은, 생명을 귀히 여기시어 치유하시고 살리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을 잘 지키고 가꿔나가는 삶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요, 그분께서 기뻐하실 일 임에 틀림 없습니다.

 

순교자들은 이처럼 귀한 생명 앞에서도 믿음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지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믿음을 택한 분들입니다. 몇몇 교회사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순교자들 대부분이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가볍게 여긴 분들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폭력 앞에서 결국 목숨을 지키기보다 믿음을 지키기로 선택한 분들입니다. 생명사랑이라는 이 강조점이 빠지면, 순교신앙은, 자칫 근본주의 이슬람의 테러리즘처럼 종교적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정당화 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순교자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순교자들의 굳건한 믿음을 본받되,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와 타인의 생명이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사실 또한 기억하시는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3.

 

오늘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와 혈루증 앓던 여인을 치유하신 이야기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 가운데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가 삽입된 형태로 본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두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통점을 살펴보면, 먼저, 열둘이라는 숫자가 눈에 뜨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 소녀였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유대 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에서 열둘은 대체로 온전함, 완전함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비롯해서, 구약과 신약의 여러 곳에는 열둘이라는 숫자가 온전함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열두 기둥을 세웠고(24:4), 여호수아는 요단강에 열두 개의 돌을 쌓았습니다(4:9).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19:28)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열둘이라는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열두 별이 박힌 면류관(12:1), 열두 성문과 열두 천사(21:12), 성벽의 열두 주춧돌과 어린양의 열두 사도(21:14) 등 성경에서 열둘이라는 숫자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하나님 언약의 성취의 계승과 완전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이로의 딸이 열두 살이었고, 혈루증 앓던 여인의 햇수가 열두 해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가의 의도가 담긴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말하자면,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할 때가 되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의 고통의 열두 해는 예수님을 만나서 이제 끝이 났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여인은 새로운 삶을 맞이했습니다. 열두 해 동안 이 여인을 괴롭혔던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더욱이, 하혈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던 사회 문화적 편견 속에서 움추린 삶을 살아와야 했던 이 여인이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의 굴레에서도 해방되는 새날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열두 해의 고통을 끝내고, 이제 예수님을 만나 은총의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어떻습니까? 이 소녀는 더욱 극적으로 새날을 맞이합니다. 이 아이의 시간을 영원히 멈춰버렸던 죽음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열두 살의 짧은 생을 끝으로 부모와 주변인들에게 슬픔을 안겼던 이 소녀의 손을 예수님께서 붙잡아 주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거라!’ 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은, 죽음 가운데 있던 소녀를 생명으로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아이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그리고 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죽음의 깊은 잠에 빠졌던 아이를 새로운 생명으로 불러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고,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면, 죽음의 깊은 잠 가운데에서도 다시 일어나게 될 줄 굳게 믿습니다. 이제 희망이 없다, 이번에도 안 된다, 해 봐야 소용없다, 이런 부정적인 말과 생각들, 그야말로 사망에 이르는 이런 말과 생각들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과 나를 불러일으키시는 손길에 의지하여, 은총의 새날을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요새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경험합니다. 생각지 못했는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저도 열두 해가 되어 그런 게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 여인과 야이로의 딸처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2009년부터 올해로 만 12년째 우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지난 열두 해와는 다른 새로운 은혜를 허락하신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오늘 교회 와서 설교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매주 오시는 노숙인 장홍면 씨가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분도 12년째 만나는 분입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만남의 시간이 채 1분이 되지 않지만, 저는 이분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교인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분이 갑자기 제게 격려의 말을 건네고 갔습니다. “목사님, 하시는 일 잘 되십시오. 잘 되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멘그러지는 못하고, “감사합니다!” 응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짧은 순간에, ‘, 이건, 장홍면 씨가 하는 격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장홍면 씨를 통해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번뜩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말씀도 말씀이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씀을 대하느냐 역시 말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4.

 

성경에는 죽은 사람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생명을 되찾는 이야기가 몇 차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왕상 17:8-24). 또한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살린 이야기(왕하 4:31-37)도 있습니다. 복음서에도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세 명을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의 사르밧 과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이야기(7:11-1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11:38-44), 그리고 오늘 본문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이 이야기들이 모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한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불러일으키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암시가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모두 믿음으로 일어난 새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고 해도, 그 역사를 맞이하는 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새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이를 교리적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모든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 그리고 구원의 은총에 응답하는 신자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면 열두 해의 고통의 사라질 것이라고 굳게 믿어 당신을 찾아 온 여인을 향하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딸의 사망 소식 앞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야이로를 향하여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 믿음은 은총의 새날을 여는 매개이자 촉매제가 됩니다.

 

몇 해 전 우리 지방회에서 여는 부흥회에 참석하였는데, 강사 목사님의 기도를 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강사 목사님의 기도를 그때 저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 되는 일도 되게 해 주시고, 되는 일은 더 잘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셨는데, 너무 기복적인 기도 아닌가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부터 이렇게 똑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안 되는 일도 되게 해 주시고, 되는 일은 더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 떼 쓰자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넘어 내 뜻을 앞세우자는 말씀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으로 구할 것이라면,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고, 될 줄로 믿고 나아가자,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은총 가운데 좋은 결실을 맺게 해 주세요. 안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열매 맺게 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되고 있는 일은, 더 큰 은혜로 열매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길 권면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 온 이 여인과, 야이로 역시 믿음으로 주님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열두 해를 지나 새날을 맞이했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제의 일과 오늘의 일로 내일 일어날 일을 예단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바른 복음의 길 위에 있다면,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은총의 새날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도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깨어나고,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손결에 힘을 얻어 믿음의 새날을 열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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