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주님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본문: 열왕기상 3:3-14; 요한복음 6:51-58

설교: 홍정호 목사 (2021.8.15. 성령강림 후 제12, 광복기념주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서로 논란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것은 너희의 조상이 먹고서도 죽은 그런 것과는 같지 아니하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절 열두 번째 주일입니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한여름 무더위의 기세는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어서 더위가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더위를 떠나보내는 우리 마음이 시원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기상관측 이래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기후변화가 심각해짐에 따라서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이 언제든 다시 창궐할 수 있다는 소식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한 국가 간 협약이나 규제를 통해 거시적인 정책과 담론을 펼쳐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 일상에서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시대는,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귀한 시대입니다.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그래 봐야 나만 손해라는 학습된 무기력이 신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17:20) 하셨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낳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개인의 노력은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말씀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살기 좋은 세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살아간 앞선 이들이 일군 터전을 오늘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일상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겨자씨 한 알만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진지하게 우리 삶에 받아들여 믿음으로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2.

 

오늘이 광복기념주일인데, 서두에 기후변화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궁금한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기후변화라는 우리 시대의 도전 앞에서 나의 작은 행동이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분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요? 그냥 살던 대로 살아갑니다. 세상의 흐름을 몸을 맡긴 채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 살아갑니다. 그런다고 해도 크게 손가락질을 받을 일은 아닐 겁니다.

 

일제 강점기 하 많은 지식인들이 반일에서 친일로 돌아선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조국 광복에 대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그저 겨자씨 한 알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식민지배의 흐름을 돌이키기에는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 미약하다는 사실에 고뇌하고 절망하다, 결국 식민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가 지금 누리는 좋은 세상,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여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우리의 오늘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시대에 등대와 같이 빛을 비춘 이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을 통해 사랑과 진리와 자유의 빛으로 세상을 밝힌 이들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온 인류에게 닥친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서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단순히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열매 맺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 신앙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 현세와 내세에 이르러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런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며 세상을 살아갈 근거를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데 한 세상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야지, 왜 불편을 감수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현세에 이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약속하신 축복이 성취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비약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믿음이 조국의 광복을 가져왔고, 나라의 발전을 이끈 기독교의 힘이며, 앞으로 우리 후대들에게 잘 전달되어 더욱 많은 결실을 맺어야 할 우리 신앙의 문화적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광복기념주일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맺은 결실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후대가 기억하도록 전달하며, 우리 시대의 위기 앞에서 복음으로 새길을 나설 것을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3.

 

예수님은 오늘 복음 말씀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하시면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또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하시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하셨습니다. 살과 피를 먹는다니, 이 말씀을 처음 듣고, 문자적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끔찍한 상상을 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요한복음의 신학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신 사람, 그러니까 주님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고 그분과 하나 된 사람은 영생을 얻게 된다는, 요한신학의 정수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 그분과 하나가 된다고 하지만, 하나 됨의 양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아(無我)의 지경에 이르러, 나도 없고, 세상도 없고, 하나님도 없어지는 차원에 이르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주님을 내 안에 모심으로 주체의 융합과 공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일전에 저는 어느 토론 자리에 나가서 기독교와 불교의 공통점을 주장하는 이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는 제 의견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토론 내용이 책으로도 출판이 되었는데, 대략 이런 주장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모두 자기 비움을 말합니다. 불교는 ()’ 사상이 있고, 기독교는 케노시스(kenosis)’ 사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비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를 비우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나를 비운 자리를 성령으로 채우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령으로 채울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세상도 없고 하나님도 없어지는 차원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힘은, 성령의 충만함에 있습니다. 나를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는 충만함이 기독교 신앙의 힘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다는 이 믿음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사랑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왜 종교적으로 무교와 불교와 유교의 두터운 문화적 토대가 있었던 조선이 개신교 선교와 함께 개신교에 그 자리들을 모두 내주게 되었나 하는 질문에 대해서, 개신교가 가진 사랑의 실천력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개신교 선교가 이루어질 19세기 후반의 무교는 자기의 부와 안위를 추구하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했습니다. 불교는 세상의 고통당하는 이들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은 채 깨달음을 추구하는 탈속적 내면 종교가 되어있었습니다. 유고는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채 공평과 정의를 바라는 백성들의 아픔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는 달랐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가 존귀한 존재이며, 죄인 된 이들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신교는 사랑을 말했고,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복음이 약속하는 자유와 평등, 공평과 정의를 말했고, 사랑으로 이를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가 무교와 불교와 유교의 뿌리 깊은 종교 문화를 가진 조선에서 최단시간 안에,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룬 밑거름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파급력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의 실천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에 오늘 광복을 맞이한 우리의 조국, 오늘의 교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4.

 

이렇듯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한 분을 소개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주기철 목사님과 더불어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이자 순교자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 나병원 애양교회에서 나병환자들을 섬기는 전도사로 사역하시다가 신사참배를 거부로 한 차례 옥고를 치루셨고, 석방된 후에도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치다 종신형을 받고 재수감 되셨습니다. 그러다 해방을 맞아 석방이 되신 후에는 다시 애양원으로 돌아가 나병환자를 돌보는 일을 지속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손양원 목사님은, 일생일대의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194810월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 손동인과 손동신을 좌익세력의 총살로 잃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을 잃은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 안재선을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하며 적극적인 구명 활동을 펼치셨고, 그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목사님은, 이념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그를 회개시키시려고 그런 선택을 하셨다 합니다. 좌우의 대립으로 사람들의 눈이 먼 시대에 복음으로 눈 뜨게 하는 일에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주님 안에 계시고, 주님이 목사님 안에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훗날 공개된 목사님의 생애 마지막 설교는 충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실제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인가? 첫째로, ()자는 입 구()와 마음 심()을 요지부동하도록 한데 못질해 놓은 글자입니다. 즉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음에서 움직여 행실로 합치되는 것이 충성입니다. 감사와 회개와 찬송과 기도가 합치되어야 할 것이요, 가족이나 친우를 권하는 말과 자기의 생활이 합치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합치지 못할진대 어찌 충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손양원 공식 사이트, 순교적 생애, 손양원 설교-생애 마지막 설교, http://sonyangwon.net/3187324c732e4f5fa6d6462b2998716b#)

 

와 마음 을 요지부동하도록 한데 못질해 놓은 글자가 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잠든 우리 영혼을 깨웁니다. 말과 마음이 따로 놀지 못하도록 못질해 놓는 것, 십자가 복음 앞에서 말과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이렇듯 충성하는 믿음이 있으셨기에 손양원 목사님은 이념에 눈이 먼 세대 가운데에서도 복음의 사랑으로 새날을 열어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답사를 대신한 목사님의 말씀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했으니 감사.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으니 감사.  

셋째, 3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감사.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께 감사.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부모님이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손양원 공식 사이트, 순교적 생애, 손양원의 답사-아들 장례식 , http://sonyangwon.net/3187324c732e4f5fa6d6462b2998716b#)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 말과 마음이 하나 되어 그분께 충성하는 사람의 길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한 주간도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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