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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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본문: 이사야 40:21-31; 마가복음 1:29-39

설교: 홍정호 목사 (2021.2.7. 주현 후 제5)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정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온 동네 사람이 문 앞에 모여 들었다. 그는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주현 후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병든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최초의 병자이자,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한 여인에 관한 말씀을 통해 복음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마가는, 예수님 일행이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과 안드레의 으로 갔다고 전합니다.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가시기 전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형식적이고 메마른 문자해석과는 다른,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때에 회당에 있었던 악한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악령을 쫓아내심으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권위있는 새로운 가르침”(1:27)으로 여겼습니다.

 

회당에서 있었던 일을 전한 후 마가는 예수님 일행이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고 전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일행이란, 예수님과 동행한 두 형제를 말합니다. 제자로 부르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입니다. 네 사람 모두 갈릴리 바닷가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고 살던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들과 함께, 당신의 첫 제자가 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

 

여기에서 잠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마가가 전하는 예수님 일행의 동선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셔서 집으로 가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회당과 집이 이분법적으로 대립되는 장소는 아니겠습니다만, 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예수님의 사역을 암시하는 면이 있습니다. 회당에는 누가 있습니까? 가르치고 통치하는 선생들이 있습니다. 회당장과 율법학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권위 있는 이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회당에 모여 말씀과 규범을 익히고, 삶에 적용했습니다. 집에서 나와서 학교에 가야 배우고, 집에서 나와서 교회에 가야 배우는 것처럼, 삶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장소는 회당이었지 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님 일행의 첫 행보를 거꾸로 그려냈습니다. 예수님은 집에서 회당으로향하시지 않고, “회당에서 집으로향하셨습니다. 회당은 예수님께서 잠시 거치신 곳이었고, 그나마도 갈등과 불화, 논쟁의 장소로 소개될 뿐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는 치유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주로 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라는 친숙한 일상의 공간을,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삼으신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서 이란 오늘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 이야기와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처럼 주변의 친숙한 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님은, ‘회당이라는 구별된 장소만이 아닌 동네와 같은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의 공간을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낯선 장소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에서 집으로향하신 예수님의 동선은 이렇듯 일상에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드러냅니다.

 

3.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심방(尋訪)하신 집은, 당신이 제자로 부르신 시몬과 안드레의 집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보아도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다는 내용을 동일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이 병이 어떤 병이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곧장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1:31) 하는 짧은 내용만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서 주석은 베드로 장모가 앓았던 열병이 고열이 동반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이 아니었겠는가 추측하지만, 누구도 이 열병이 정확히 어떤 병이었는지를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이 병의 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남겨두었습니다. 그것은 열병으로 누워있었다(κατέκειτο πυρέσσουσα)”라고 기록된 문장에 사용된 동사 κατκειμαι3인칭 미완료 시제인 κατέκειτο’ ‘누워 있었다라는 의미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열병으로 인해 베드로의 장모는 계속 누워있었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열병을 뜻하는 낱말 역시 불이 나다라는 의미의 πυρέσσω라는 동사의 분사형인 πυρεσσουσα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인즉, 마가는 베드로 장모의 병명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이 여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이 여인은, 열불이 나서 누워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왜 열불이 나서 누워있었을까요? 예수님은 많은 이들의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질병의 치료된 이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이 질병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사회적 고통으로부터 치유되었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합니다. 질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특정한 사회의 맥락과 질병은 상관성을 갖습니다. 예컨대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보다는 성인병이나 정신적 질환이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치료하시면서, 그 질병을 유발시킨 사회적 고통도 함께 치유하셨고, 그렇기에 에수님의 치료 행위는 몸과 마음의 질병을 동시에 치료하시는 전인적인 치유였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육체적인 질병보다 마음의 병이 원인이 되어 누워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져누운 상태입니다. 이 열병이란 일종의 화병입니다. 왜 이런 추측이 가능할까요? 이 여인이 예수님을 따라나선 베드로의 장모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갈릴리 어부로 살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도 가족이 먹고살까 말까 한 상황인데, 그물과 배를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다니, 이게 될 말인가요? 여러분의 사위가, 여러분의 아들딸이, 어느 날 잘 다니던 직장을 대책 없이 그만두고, ‘가치를 쫓아 살겠다고 나선다면, 여러분은 이 베드로의 장모처럼 열불이 나서 몸져눕지 않으시겠습니까? 게다가 어느 정도 고생하면 앞날이 기대되는 길도 아니고,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향해 가족을 두고 나서겠다고 할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온갖 생각이 다 들지 않겠습니까? ‘내가 왜 저런 녀석한테 내 딸을 시집보내서하는 분노에서부터, ‘다 못난 내 탓이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고 받아들이려고 하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와 원망과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결국 화병에 몸져누운 상태, 바로 이 상태가 지금 베드로의 장모가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4.

 

그렇게 집을 떠났던 베드로가 예수님 일행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베드로의 장모는 이들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야말로 도 보기 싫었겠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가셨고,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전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신 이후 열병이 떠나기까지의 상황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의 다른 사역에 미루어 짐작에 맡길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베드로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아끼는 딸의 삶과 그 가족의 삶이 온통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신이 그 짐을 온통 떠안고 괴로워지지 않을지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갈릴리의 다른 가정들처럼 그저 어부로서, 아침저녁으로 바닷가를 오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이 여인이 바라던 이상적인 삶의 전부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이러한 소박한 바람은 사위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좌절되었습니다. 생명이 탄생하기에 앞서 산고의 고통을 겪는 여인처럼, 시몬이 베드로로 거듭나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이 여인은 산고와 같은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베드로의 장모는 말로만 듣던 그분의 인격에 감화되었고, 이런 분과 함께라면 염려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서 회당에서 귄위있는 새로운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던 예수님은,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화병에 누워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찾아오셔서, 그 말씀의 권능으로 이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그를 새로운 삶으로 불러세우셨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경험한 이 여인이, 열병이 떠났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일행의 시중을 들었다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조력자가 된 것입니다. 낙심에 빠져 화병에 몸져누워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의 어부, 이 여인의 사위 시몬은, 이제 위대한 사도이자 교회의 든든한 반석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산고를 이기고 얻은 생명처럼, 하나님의 꿈에 동참함으로 낙심을 이기고 희망의 든든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5.

 

마가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전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몬의 장처럼 낙심의 때를 거칩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바람직한삶의 방향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 우리가 바라던 일들이 이탈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 여인의 경우에는, 베드로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아들딸과 더불어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 바람직한삶의 이상이었을 겁니다. 그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이 여인은 절망을 이기지 못했고, 화병으로 앓아 누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가 되는 꿈,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더 큰 을 세우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누구나 가족이 되는 꿈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이 여인이 바라던 삶의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을 주님은 이 여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은 낙심에 빠진 이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절망에 빠진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심으로 영원한 삶의 기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마음의) 병은, 새 생명이 태어나기 전 산모가 겪는 진통과 같은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그의 가족을 부르시고, 이제 베드로의 장모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케 하시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자신이 열병으로 누워있던 그 에서, 그녀는 새로운 삶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습니다. 열병은 떠났고 이제 여인은 예수님을 돕는 일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절망을 새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던 한 길이 닫혔을 때, 다른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요, 그분이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길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낙심을 이기고 주님의 일꾼으로 새롭게 세워진 이 여인처럼, 우리도 주님을 손을 맞잡고 일어섬으로 절망을 이기는 새 삶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와 손 내미시는 예수님께서 손을 맞잡고 일어나, 주님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삼아 살아가는 참 믿음의 사람, 참 믿음의 가정과 교회로 굳건히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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