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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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의 성전

시편 118:22-24, 에베소서 2:11-22

이계준 목사 (2021.4.25. 교회창립 39주년 기념주일)

 

오늘 우리는 교회창립 39주년을 맞이하여 하느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21세기를 지향하며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와 세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외적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교회가 계속 발전해 온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교우 여러분들의 헌신의 결과인 줄로 믿고 감사드립니다.

 

올해 창립 주일을 지키는 소감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예배와 함께 우리가 존경하던 김수경 장로께서 영원한 나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와 친교를 온라인으로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김 장로님과 영적 온라인으로 친교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 주신 하느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우들에게 교회의 본질에 대해 매우 긴요한 원리를 전하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이 창립 주일과 함께 뉴노멀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어떤 함의가 있는지 같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220절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퉁잇돌이 되시고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성전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성전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말하면서 성전의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기초는 카리스마 곧 영적 은사를 받은 사도와 예언자들이며 이 모퉁잇돌과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 우리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교회란 말 대신에 성전이라고 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 ekklesia의 본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지만 우리는 흔히 제도나 조직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전이란 모세의 법궤와 하느님이 계시는 지성소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뜻하는 데 바울은 우리가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자각한 거룩한 존재라는 상징적 표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전은 그리스도이신 머릿돌, 사도와 예언자들의 기초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자각한 백성, 이 세 가지 요소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크리스천은 성전의 머릿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이 드러낸 하느님의 구원을 주축으로 삼고 이에 대한 사도와 예언자들의 증언을 따르는 거룩한 무리라는 것입니다.

 

지난 39년을 회고할 때 우리 교회는 위에서 말씀드린 성전의 세 가지 원리를 충족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믿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전의 모퉁이돌과 기초를 망각함으로써 성전을 손상시키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초석과 사도와 예언자들의 증거를 바탕으로 하여 21세기를 위한 복음 선교를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성전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하느님의 은혜와 우리 교회 개척자들의 공헌이라고 믿습니다. 개척한다는 것은 최전방에서 적군과 싸우는 것과 같이 자기의 존재와 소유까지 바치는 헌신적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자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성전임을 자각했기 때문에 자기희생을 통해 우리 공동체를 모퉁잇돌과 증언 위에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교회의 실정을 눈여겨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감사하였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개척자들의 뒤를 따라 하느님의 성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인해 영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 작은 공동체가 순항한다는 것은 교우 한분 한분이 모두 튼실한 하느님의 성전으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개척정신의 유산이 계속 유지되고 성장하므로 개인의 성전과 함께 공동체의 성전이 완전에 이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

 

221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자라서 성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성전을 살아있는 유기체로써 영적 관계와 진화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친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므로 사람을 한자로 人間 곧 사람은 사람 사이라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대인 철학자 M. 부버도 ”Between Man and Man“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지우신 것도 인간의 관계성을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우리 크리스천이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제도적 교회에 목을 매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 안에서 교제할 때 거룩한 모습 곧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바울은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고전 3:6-7)고 했습니다.

 

미국의 영성 신학자 R. 로어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진화하도록 창조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물들이 줄곧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발전시키며 더 잘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생명체 안에 영적 기() 새 사람으로 진화하는 잠재력을 주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동안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와 친교에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혼의 맑은 샘에서 솟아오르는 기도는 이웃의 고통과 나라의 위기에 대한 애절한 간구이었고 교우들 간의 친교는 실로 순수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영근 열매와 같았습니다. 피차 이해와 관용, 위로와 격려는 영적으로 성숙한 인격의 극히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어른인 부모가 자기희생을 통해 가정을 꾸리듯이 여러분은 하느님의 가정인 신앙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성전이 된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를 사회-역사 속에서 구현하는 하느님의 성전으로 진일보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이시고 사랑과 정의는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사랑이 개인적 가치라면 정의는 사회적 가치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느님의 정의가 불의한 세력에 의해 훼손되어 도덕적 혼란과 민생의 위협이 초래되었습니다. 이제 정의와 공정이 회복되고 상식과 윤리가 살아나서 우리 사회가 하느님 나라로 변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222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서 하느님이 성령으로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개인적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이것을 공유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이란 영적으로 각성된 성도들의 집단적 실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독자적 인격이지만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이라고 할 때 개별적인 영적 존재는 영적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하나 되고 융합됨으로써 보다 온전한 성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집이 설계도에 따라 수백 종류의 자재가 서로 연결되어 제 모습을 드러내듯 하느님의 성전도 성도 각자의 특성과 잠재력의 합작으로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성전의 공동체 개념은 개인주의 혹은 개체주의가 편만한 현대사회에서는 일종의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빈부와 계층의 괴리로 인해 붕괴되는 현대사회는 개체주의와 해체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변하지 않는 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공동체 회복의 불씨인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한 기자와의 대담에서 오늘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에서 육체만 보존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고 영혼을 보존하는 것은 도외시하고 있다. 따라서 영혼이 병들어 우울증이 많아지고 독신 젊은이들의 자살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현상과는 달리 우리 교우들은 강인한 주체성에도 불구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기 영적으로 더 똘똘해질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얽히고 뭉치면서 서로 버팀목이 됨으로써 보다 온전한 성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하느님의 현존의식이 심화되고 헌신의 열정이 상승함으로써 하느님의 성전 완성을 위해 힘쓰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크리스천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동시에 우리가 뭉쳐서 성전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며 각자의 십작가를 지고 결승점에 이를 때까지 겸손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의 순례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개척에 참여한 목회자로서 우리가 바라던 교회 상을 어느 정도 이루었는지 성찰하면서 때로는 만족하고 때로는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하느님의 은총과 교우 여러분의 헌신으로 우리가 각기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모두의 합작으로 건설하는 하느님의 공동체 성전이 완성을 향해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보고 안도와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여러분의 신실함과 헌신이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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