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2856 댓글 4
`인생의 항해`

이 계준목사

성경 말씀:출애굽기 2:11-15
에베소 4:22-24

지난 18일 순 종식씨 일가족 등 21명이 작은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하여 인천항에 무사히 도착한 기사를 저희들이 다 읽었습니다. 그는 6. 25때 인민군에 강제로 징병 당해 나이 70세가 될 때까지 북한에서 살면서 고향에 돌아가 묻혀야 하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꿈을 이르기 위해 남쪽의 동생들의 생존 여부도 확인하고 2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탈북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선박 기관장인 이씨를 바람을 쏘이자고 유인하여 가족들과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그 다음 이씨를 묶어 놓고 이미 선원으로 훈련받은 아들이 배를 운전하여 무사히 탈북 하여 그들이 원하는 남쪽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인생은 마치 이와 같은 항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가 지금 있는 곳을 떠나서 위기를 무릅쓰고 자기가 꿈꾸는 목적지를 향하여 일엽편주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항해를 이 시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을 반성해 볼까 생각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일생과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록한 책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세상에 태어나서 몇 달 동안 숨겨 살다가 바로의 압박 아래 더 이상 애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그의 어머니가 아기를 바구니에 넣어 강물 위에 띠웁니다. 여기서부터 모세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항해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바로의 딸에게 발견되었고 애급 왕궁의 생활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이야기가 모세의 일대기를 모방하고 있다고 하는데 예수도 그 인생을 고향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헤롯이 유대인의 메시아가 탄생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두 살 이하의 어린 아이는 모두 살해하라는 명령 때문에 부모와 함께 애급으로 도피행각을 했습니다.
모세나 예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의이던 또는 타의이던 간에 지금 있는 곳에 머물 수 없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신체적으로 날마다 자라야하고, 심리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 적응도 잘 해야 하며, 더욱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과정과 교육 그리고 사회생활 속에서 성장하고 변하고 적응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 그 사람은 장애가 있거나 문제가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거나 또는 취직하면 무조건 부모의 집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록 대학이나 직장이 부모의 집과 근거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기숙사나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항해를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출항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위한 가장 좋은 인생 교육은 집을 떠나 여행을 시키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어지고 안전한 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 생소한 이방지대에 가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경험이 인간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평생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하는데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주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이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둘인 동시에 하나라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마치 교회 사랑처럼 생각하고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이라면 가정이나 사회의 책임을 모두 제쳐두고 시간, 돈, 정력을 투자합니다. 이런 신앙인은 하느님 사랑이란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이란 진리의 핵심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하느님 사랑이란 자기의 요구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산타 크로스가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갖다 주리라고 믿고 있는 어린 아이의 심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인은 자기중심의 신앙에서 자기 부정의 신앙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어제 어떤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대학병원의 원장이 훌륭한 기독교인인데 보직에서 해임되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이의 추측에 의하면 그분은 교회 일이나 선교활동이라면 병원 일을 모두 접어두고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아마 그것이 해직의 이유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을 자기가 맡은 직분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는 성숙한 신앙으로 발전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기자는 말하기를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완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우리가 하느님을 모실 수 있고 그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명쾌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사랑이란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시지도 못하고 사랑의 열매도 거두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인생 항해는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 놓았다고 믿는 바로 그 신앙의 상아탑에서 내려와 아브라함처럼 갈 곳을 알지 못하는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날마다 노를 저어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애급 왕 바로의 궁전에서 황태자의 자리를 차지하며 호사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급 왕실의 교육과 부귀영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이스라엘 민족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애급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되어 애급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황태자에서 목동이란 천한 일꾼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30세까지 가정을 돌본 다음 공생활로 들어갑니다. 그는 처음부처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모함, 제자들의 무지와 배신, 민중의 저주와 십자가의 죽음 등 온갖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의 항해에는 우리가 바라는 행복과 기쁨도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시련과 고통과 위험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원하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의 바다에는 예상치 않았던 폭풍우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파도도 밀려오는 것입니다.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어린 시절 형제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처음부터 나쁜 패가 들어오자 패를 내동댕이치며 다시 하자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 때 그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 모두 카드를 테이블 위에 놓아라. 그리고 특히 아이젠하워, 너는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 카드놀이는 너희들이 살아야 할 인생과 꼭 같은 것이다. 카드놀이에서는 나쁜 패가 들어오면 바꿔달라고 하지만 인생을 살아갈 때 어렵거나 역경을 당해도 피해갈 수가 없다. 그 위기를 잘 넘겨야 인생의 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좋은 패건, 나쁜 패건 들어오는 대로 가지고 놀아라. 인생의 패란 항상 좋은 것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 것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에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마산 어느 대학의 교목으로 2년 전에 부임하여 일을 잘 하고 있었는데 그가 소식이 없어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는 첫마디에 저 학교에 사표를 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이유를 물으니 학교에 부정이 있어서 자기가 교목으로써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학장과 갈등하던 중에 사표를 내었더니 수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지만 서울에 오면 연락하여 만나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제자는 학생 때도 의분심이 강한 젊은이였는데 미국에 유학하여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말썽 많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귀국하여 대학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또 대학교회 목회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장로님은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겸손하시고 훌륭하신 분이라고 하였고 주위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부정에 눈감을 수가 없어 사표를 냈다고 하니 일면 장하기도 하고 또한 그 장래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소문으로는 그가 학교 당국이 교수를 해직시키는 일에 항의하였기 때문에 당국과 갈등을 일으키고 드디어 사직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과 양심을 간직하고 인생을 항해할 때 우리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일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당하고 손해를 입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천막 수리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며 갖은 고생과 핍박과 투옥을 당하며 끝까지 선교하고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 항로란 우리에게 찾아오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이웃의 삶과 생명을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한 인간으로써 자기중심, 자기 사랑이란 유아기적 단계에서 떠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 되는 거룩하고도 신비스런 영원한 항구를 향해 인생의 닻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모세는 애급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칠 때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민족 사랑이 발동해서 살인을 하게 되고 자기의 생명을 구하려고 왕궁을 포기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세가 항해할 목적지를 그 마음속에 이미 정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출애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집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 하느님 나라 선포를 위한 준비를 하고 말씀을 전하고 민중의 요청에 헌신적으로 응하면서 인기와 존경 속에 살아갔으나, 자기가 십자가의 고난이 지게 될 때에 확신을 가지고 질수 있을 것인가? 그 문제에 대하여는 자신이 없었으므로 그는 많은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인생 항해를 통해 도달해야할 항구를 마련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인류의 구원이었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할아버지 댁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여름철에 땀을 흘리며 먼 길을 하루 종일 걸어서 해가 석양에 질 때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손자를 본 할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너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손자는 대답하기를 심부름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슨 심부름이냐고 묻자 아이는 한참 후에 말하기를 잊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황당한 아이를 보고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나는 평생 동안 왜 사는지 모르는 목적 없는 인생을 살아 왔는데 네가 하루 종일 목적을 잃고 여기 온 것은 정도는 괜치 않다고 위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향해 가는 항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체적인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입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4에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은유적인 표현을 현대 말로 바꾸면 자기답지 않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다운 자기를 찾으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기답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하느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겸손하게, 진지하게, 희생적으로 자기 목숨까지 바치신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최근에 평생 동안 열심히 벌고 아끼고 저축한 200억 원이란 돈을 대학교육을 위해 조건 없이 헌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돈의 액수보다도 그들의 인생 항해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항해는 물질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실성과 희생에 최고의 목표와 가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그들은 삶을 통하여 실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는 순풍도 만나고 돌풍도 만나며 항로대로 안전하게 가는 때도 있는가 하면 항로를 벗어나 좌초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 인생 항해의 출발 동기가 순수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확실한 믿음으로 성실하게 항해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포구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가나안 복지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항해하는 존재들입니다. 좋은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우리가 지금 있는 상아탑에서 내려와서 보이지 않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영원히 달려가는 참된 성도가 되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 나는 누구 편인가?(1월 셋째 주) shinbanpo 2003.01.19 2743
45 누가 새 역사의 주인인가?(2003년 신년예배) shinbanpo 2003.01.06 2738
44 우리의 날을 세는 지혜(12월 마지막 주) shinbanpo 2002.12.31 2688
43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성탄주일) shinbanpo 2002.12.23 2427
42 사람이 되신 하느님(12월 셋째주) shinbanpo 2002.12.15 2801
41 로고스와 파토스(12월 둘째 주) shinbanpo 2002.12.10 3038
40 누구에게 메시아는 오는가? (12월 첫째 주) [2] shinbanpo 2002.12.01 2633
39 믿을만한 사람(11월 마지막 주) shinbanpo 2002.11.25 2703
38 삶의 원리(11월 셋째 주) shinbanpo 2002.11.17 2429
37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11월 둘째 주) shinbanpo 2002.11.10 2909
36 부르심과 선택하심 (11월 첫째 주) shinbanpo 2002.11.03 2519
35 썩지 않을 월계관 (10월 마지막 주) shinbanpo 2002.10.27 2630
34 상처입은 치유자(10월 셋째 주) shinbanpo 2002.10.21 2795
33 기쁨이 넘치는 삶(10월 둘째 주) [2] shinbanpo 2002.10.13 2696
32 감사의 향기(10월 첫째 주, 추수감사절) shinbanpo 2002.10.06 2857
31 참으로 사는 길(9월 마지막 주) shinbanpo 2002.10.03 2162
30 지혜를 구하는 사람(9월 넷째 주) shinbanpo 2002.09.22 2908
29 사랑의 자유(9월 셋째주) shinbanpo 2002.09.16 2782
28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9월 둘째주일) [2] shinbanpo 2002.09.08 2744
27 하느님의 심판 (9월 첫째 주) [2] shinbanpo 2002.09.02 276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6 37 38 39 40 41 42 43 44 ... 45 Next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