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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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는 사람`

이계준목사

성경말씀:역대하1:7-17
마태7:7-12

우리 현대인들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 살던 사람들에 비하여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단순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또한 다른 면에서 보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의 생활이 매우 편리해진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농사를 지을 때 우리 자신이나 동물의 힘을 빌려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고 산업사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면 취직과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보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갖지 않으면 사회의 요구에 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낙오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고의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전쟁과 같은 경쟁을 거쳐 드디어 승리자의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또한 부귀영화란 보너스까지 있습니다. 아마 이 길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선택하는 모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오늘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최고의 지식을 지녔다고 해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지식을 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있어도 정신적 만족과 마음의 행복은 지식과 돈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생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류계층으로 올라 갈수록 그 수가 적어지고 하류층으로 내려갈수록 그 수가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의 행복이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계적 지식과 이에 따라오는 혜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 곧 지혜라는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솔로몬이 어떤 사람이기에 지혜로운 통치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함께 누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솔로몬의 기억력
솔로몬이 하느님께 번제 천 마리를 드린 날 밤에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무엇을 간구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서 자기 아버지와 자기에게 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왕으로 삼으시고 이제 또한 자기가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게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는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자기의 능력이나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셨고 그것은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라는 하나의 종의 역할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있는 자리와 하는 일이 왜 주어졌는지 분명히 알고 있고 또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지식이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를 도구로 삼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문둥병자 10명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병이 완치된 다음 예수께 돌아와서 그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 사람은 단 한 사람, 그것도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데 남다른 마음을 지니고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도 우리처럼 조상들과 나라를 위해 순직한 사람들을 위해 기념하는 소위 Memorial Day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방문하거나 조상의 묘소를 찾는 일은 극히 적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나 교통사정 등을 고려할 때 우리보다 훨씬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경제나 교통이나 거리에 상관없이 추석이나 명절이 오면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서 차례를 지내며 조상과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고 일가친척들과 사랑의 정을 나눕니다. 우리가 이렇게 은혜를 기억한다는 것은 축복 받은 민족이란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뿌리와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됨의 기본 요소로써 사람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귀중한 보배라고 하겠습니다.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친절”에 관한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 중에 어느 노인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젊은 시절에 몇 달간을 보살펴준 어떤 부부에 대한 이야기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는데 그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고 합니다. 아나운서는 묻기를 그 일이 언제 있었느냐고 하였더니 “75년 전의 일인데 그 동안 그 친절한 부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고 그 노인은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입은 은혜를 7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했다면 그 노인의 삶이 얼마나 훌륭했을까 그리고 하느님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을까 가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은망덕 하는 사람도 많이 보기도하고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조상들의 귀중한 유산과 지금 자기가 소유하고 향유하는 삶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내일의 희망이나 축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는 달리 부모님과 스승과 이웃들은 물론 이 모든 이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하루도 빠짐없이, 평생토록 기억하는 축복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솔로몬은 아버지와 자기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느님을 기억한 다음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 합니다. 그가 지혜를 간구 하는 이유는 자기의 정치력을 강화하거나 누구와 싸워 이기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많은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하는 지혜는 자기의 인간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맡기신 백성을 그의 거룩하신 뜻대로 통치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지혜를 간구하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 다윗 보다 훨씬 선정을 베풀었고 아버지가 뜻을 이르지 못한 예루살렘 성전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지혜를 활용하여 진짜 어린 아이의 어머니를 발견하는 역사적인 재판의 모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학교의 교육을 통하여 지식을 배우고 종교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지혜를 배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습득한 지식은 사회생활 하는데 없어서는 아니 될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지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사회의 높은 고지를 차지하게 되고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지식은 한계가 있어서 과거에는 5년, 10년이면 새 지식을 다시 배워야 했는데 요즘은 지식 발전의 속도가 하도 빨라 심지어 한두 달 내에 바뀌는 것도 있기 때문에 따라 잡기에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자연의 이치처럼 영고성쇠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다릅니다. 지혜는 인간이 발견한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인 동시에 잠언의 말씀처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곳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 고향을 떠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이방 여인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후세에 메시아의 조상이 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 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젊은 학생에게 말하기를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등록비를 도로 찾아오라”고 하였답니다. 요즘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만일 일어나면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할 판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식은 포화상태에 있는 반면에 지혜는 고갈상태에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은 이락이 UN의 핵 사찰 안을 받아드려도 결국 미 의회의 결의를 통하여 이락을 공격하여 초토화하고 후세인 정부를 몰아내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기의 막강한 과학 지식에 근거한 군사력을 과신한 나머지 우방과 적을 설득하고 포용할 지혜를 잃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예가 하느님의 지혜를 간구 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과학 지식을 절대시하고 우상화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고 더 큰 비극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몇 일전 뉴스 시간에 특허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최근 벤처 산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많은 새로운 연구와 제품이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것들이 특허 받은 것이 많아 서로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에 상품 판매도 저조하고 외국 바이어들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지혜가 없으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맛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서 사람에게 짓밟힐 따름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하느님께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제아무리 최신의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대로 나 자신의 신앙생활과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으면 그 모든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솔로몬이 자기에게 맡긴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지혜를 간구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자신과 사회와 교회 그리고 인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3. 하느님은 지혜와 함께 부귀영화도 주심
하느님은 다른 것 보다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감동되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부와 재물과 영화나 원수들의 목숨이나 장수를 구하지 아니하고 내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하니 부와 재물과 영화도 주겠다. 너 같은 왕은 네 앞에도,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만을 구한 솔로몬은 지혜와 합께 부와 재물과 영화는 물론이고 역사상 유일한 왕이란 명예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솔로몬이 하느님에게 부와 재물과 영화를 먼저 구하였다면 하느님은 그에게 이 세상적인 것도, 지혜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지혜 있는 사람만이 세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마이더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가 술에 취해 헤매다가 마이더스 왕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를 정성껏 대접해서 디오니소스에게 보냈습니다. 디오니소스가 고마워서 왕에게 무슨 소원이던지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이더스 왕은 생각 끝에 자기 손이 닿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디오니소스가 그 청을 들어주니 왕은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 그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하인이 가져온 빵에 손을 대니 금으로 변하였고 포도주 잔을 드니 포도주가 금물로 변하였습니다. 그가 만지는 모든 생명체도 금이 되었습니다. 결국 마이더스 왕은 최고의 금 부자가 되었지만 굶주림과 함께 인생도 왕위도 모두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부귀영화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으로 인도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하면 주실 것이다. 찾으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 주신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고 사람에게 참으로 유익이 될 때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이나 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준다면 결국 그것은 좋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파멸로 이끄는 잘못된 부모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에게 간구 할 때 무엇을 구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3:13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를 찾는 사람은 복이 있고, 명철을 얻는 사람은 복이 있다. 참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 보다 낫고, 황금을 얻는 것 보다 더 유익하다. .... 그 오른 손에 장수가 있고 그 왼 손에는 부귀영화가 있다.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모든 길에는 평안이 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세상의 부귀영화와 풍성한 삶을 더하여 주신 것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경험으로 보아 지혜와 부귀영화가 꼭 같이 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높은 학덕을 겸비한 훌륭한 인격자들이 오히려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그 사람을 밖에서 보고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덕을 높이 쌓아올린 사람이라면 비록 그들이 물질적 부와 세상의 명예가 없더라도 그는 자기의 삶을 만족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실상 지혜로운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하느님의 은혜로 믿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그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최고의 기쁨과 평화를 맛보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오늘 주신 생명과 일할 능력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에 대하여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사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솔로몬처럼 하느님으로부터 꼭 같은 지혜와 부귀영화를 받은 축복된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배은망덕이 팽배한 세상에 살면서도 솔로몬처럼 선조로 부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나려주신 하느님의 은덕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간구 할 때 세상의 부귀영화에 앞서 하늘의 지혜를 구하며, 우리에게 주신 삶과 조건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만족하므로 참 기쁨을 향유하는 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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