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박 대선감독

성경말씀:욥기19:25,
하박국2:4

예언자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 언제나 반문하는 대표로 나와서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하박국1:13)
라고 외쳤습니다.
그가 발한 질문은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의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神觀을 가진 백성들이 발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 당시의 종교사상은 賞善罰惡외에는 알지 못하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면 벌을 받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해 주신다는 사상이 支配하던 세상이었기 때문에 하박국은 현실 사회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회의를 하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義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사람들이 악인들과 같이 고난을 받도록 내버려두시느냐고 하는 문제였고 또한 욥기의 문제도 同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욥은 東方에서 제일 가는 의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가장 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동방에서 제일 가는 재벌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그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10남매의 자녀가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전부를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자기의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와 조각을 가지고 가려운 몸을 긁고 있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가 그 광경을 보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까지 했습니다.
그의 物質的 精神的 肉體的인 苦痛은 심각했습니다.
욥기는 단테의 神曲, Milton의 실락원, Goethe의 Faust와 비길 수 있는 명작이며 욥기의 主題는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哲學을 하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욥기를 읽
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창세기에 천지창조의 기록이 있습니다.
1장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우리나라의 형편을 생각해봅시다. 바로 천지창조 전의 상황과 똑 같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바로 오늘날의 한국의 형편과 같습니다. 혼돈 세계입니다.
우리나라는 50일도 못되어서 새 대통령을 뽑게 되어있습니다. 정치하는 국회의사당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정치를 하는지 싸움을 하는지 건전한 의회 정치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욕지거리와 싸움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연속극 야인시대를 보고 있는데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보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결투하는 것을 보지않은 것이 교육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회도 그런 연속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저질인가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 두 달 동안 지나가는 것을 심히 걱정스럽게 전망이 됩니다.
정치인들은 이민가겠다고 하고 많은 시민들도 그런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도 둘이 미국에 이십여년동안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데 간혹 전화로 나에게 미국으로 와서 사시도록 하자고 권면하고는 합니다.
한국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너희는 거기서 잘 살아라.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해 오고 있습니다.
해방 후 몇 달 동안 흥분과 기쁨 때문에 평온했으나 몇 달이 지나니 어수선한 공기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못살겠다면서 서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평양에서 한 큰 교회에 이 종현이라는 장로가 있었는데 기업가이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그는 이곳은 자기가 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재산과 사업을 정리해서 서울로 왔습니다. 서울에서는 그를 환영하고 상공부장관 자리를 주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전차를 타러 나갔습니다.
장관이라도 그 당시에는 車가 없었고 전차를 타고 다닐 때였습니다. 전차를 타기위해서 안전지대에서 기다리다가 술에 취한 사람이 차를 안전지대로 몰아서 그 장관은 죽었습니다. 그가 평양은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안전지대인 서울로 와서 또 절대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는 안전지대에서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곳이든 安全地帶란 없습니다.

요사이같이 나라 사정이 혼돈 상태일 때는 걱정스러운 때도 많이 있습니다.
核이 문제가 되어 미국,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가 불안해 하고 있다. 히로시마(廣島)에 原子爆彈이 떨어져 일본이 항복하고 수십 만 명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보다도 더 강력한 핵이 생겼다니 불안하고 또 생화학 무기도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많은 인명 피해가 있겠습니까?
테러범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서 미국의 심장부인 N.Y.의 World Trade Center를 공격해서 수 많은 시민을 살해했다니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Russia에서는 인질문제로 가스탄으로 수많은 인질과 체첸 반군을 살해했다고 하니 독일이 아우스비치에 600만 유태인을 가스로 학살한 것도 생각을 하게 합니다. 거기 가서 그 현상을 보았는데 실로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박국이 말한대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왜 잠잠하시나이까”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북한은 세계 각국에서 제네바로 와서 平和會議를 하면서 핵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서류에 sign을 해놓고 그것을 위반하고 비밀리에 원자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백성들은 먹지 못하고 굶어죽는 상황에서 돈을 오직 핵무기 제조에만 사용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밀로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어 온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무기를 제거하라, 그리고 난 연후에 대화를 하자고 하고
북한은 미국에 대해 먼저 不可侵條約을 하면 核을 제거하겠다고 하니 미국은 no해서 지금 양국 모두가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우리는 아주 危機에 놓여있습니다.

하박국이 제시하는 문제는 모든 철학적인 세계관 또는 종교적인 세계관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하박국은 모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는 했으나 여호와를 믿는 신앙은 단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하기만 하면 그가 가지고있는 문제에 대해서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光明은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였습니다. 사람이 할 것은 의를 추구하는 일 밖에는 없다는 확신을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의의 최후 승리를 믿는 말씀은 비록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위대한 生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렇게 고상한 생을 살게 만들어준 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1:17)이었습니다.

나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메시아곡 거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내 주는 살아 계시니’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욥기19:2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욥이 이세상에 사는 사람치고는 가장 무서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욥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무서운 고통가운데서 부르짖은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 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신앙 고백을 하고 있고 그는 그 확신으로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이라는 땅에서 혼돈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낙담도 말고 비관하지도 말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마음의 平安을 갖고 이 시대를 살아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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