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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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기는 믿음

 

본문: 창세기 3:1-7; 마태복음 4:1-11

설교: 홍정호 목사 (2017.3.12. 사순절 제1)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하였다.”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을 명하실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하였다.”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였다.” 이 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절 이전 주일을 뺀 40일을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절로 보냅니다. 올해 부활절은 416일입니다. 매년 부활절 날짜가 다른 이유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지난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직후 일요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로부터 점차 분리해 나온 그리스도교는 니케아 공의회를 기점으로 유대교의 유월절을 지키던 관습을 폐지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그리스도교의 축일로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기도와 금식과 자선은 사순절 기간 동안 특히 강조되어 온 교회의 실천 덕목들입니다. 이 세 가지 실천은 영혼의 유익을 위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기도와 금식과 자선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하며 하느님과의 내밀한 사귐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건강한 분들은 주중 하루를 택해 한 끼 금식을 실천하십시오. 교회는 전통적으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할 것을 권면해 왔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금요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일로 지킬 것을 권면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선을 실천하십시오. 금식과 금육을 통해 절약된 돈을 모아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직접 돕거나 교회를 통해 전달하십시오. 기도와 금식과 자선의 목적은 율법주의적인 경건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소외된 이웃에게 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사순절 첫 주일을 맞이하면서 먼저 경건한 삶으로 우리 영혼을 돌보고,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귀한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에 들어가시면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거기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광야는 광장과 대비되는 장소입니다. 광장이 다른 이들에게 자기를 내보이는 장소라면, 광야는 자기를 내보일 이웃이 없는 장소, 시선과 관심을 온통 하느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이 주님을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주님도 혹시 갈등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평범한 목수로 살면서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낙으로 삼아 그렇게 늙어가는 삶에 대한 미련을 주님도 여전히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사십일 밤낮이 흘렀을 때에 시험하는 자 악마가 주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자기에게 집중하며 기도하는 광야에서 악마는 바로 그 자기의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4:3b)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4:6a)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4:9) 주님께서 하느님께 붙들린 삶으로 자기존재를 탈바꿈하시기 위해 사십일 밤낮을 금식하며 기도하시던 그곳에서 악마 역시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자기의 모습을 제시하며 주님을 유혹합니다.

 

악마가 그렇게 되어보라고 유혹한 자기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여러분,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게 유혹이 되는 건가요?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나도 먹고 남도 나눠 주면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럴 능력이 없어서 문제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야 세상 돌들을 다 빵으로 만들어서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악마는 이 선한 일을 왜 유혹이랍시고 주님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돌은 쓸모없는 존재의 은유입니다. 돌은 지천에 널려 있는 것, 어디에나 있는 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존재의 대명사입니다. 반면에 빵은 가치 있고 귀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에 관한 은유입니다. 그러니까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는 유혹은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라는 유혹인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요? 돌 혹은 돌 같은 인생을 그 자체로는 귀한 것으로 여길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유혹을 거부하셨습니다. 돌을 그냥 돌로 놔두지 못하고, 어떻게든 빵으로 만들어야만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세상에 대한 거부입니다. 좀 더 나아가 볼까요. 사람이면 누구나 존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이지, 꼭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존귀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돌들이 빵이 되길 바라고, 그래서 빵이 되지 못한 돌은 평생을 패배감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하였다.”

 

3.

 

두 번째 유혹은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둘러 가지 말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단번에 큰일을 성취하라는 유혹입니다. 제 말씀을 드려볼까요? 저처럼 목회의 길에 막 접어든 젊은 목사들은 하나 같이 교회 부흥이라는 목표와 씨름합니다. ‘저 목사님이 부임하더니, 다 죽어가던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목사들은 다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짐짓 겸손한 척 한 마디를 내뱉고 싶어 하죠.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정에 익숙해지다 보면 처음에는 진심이었는지 몰라도 점차 하느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 것으로 가져오는 데 익숙해 집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담임목사 취임한 지 만 3년이 거의 되었는데, 주일 출석인원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서 겸손 안 하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저 목사 부임하더니 교회가 부흥했다는 칭찬의 유효기간이 거의 만료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일거에 많은 이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요즘처럼 SNS가 있는 것도 아니니, 스스로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이 더 많이 주님을 찾아와 복음을 듣는다면 그 또한 선한 일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런 길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보다는 곳곳을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을 설득하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박해를 받고 쫓겨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 쉬운 길이 있는데 그 길로 안 가시고, 사람들과 더불어 그 힘든 길을 가셨을까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느리더라도 걸어야 할 한 걸음을 충실히 내딛으며 나아가길 하느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악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단번에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믿음입니다.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어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4.

 

세 번째는 불의한 권세에 복종하면서 여기에서 영광을 누리라는 유혹입니다. 주님께서 이기신 시험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쉬운 시험이 없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오늘 모순으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괴로운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권세에 불복종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의로운 권력은 거리를 두면서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권력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단호히 돌아설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는 파레지아’(parrhēsia)라는 낱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파레지아는 진실을 말할 용기입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말하듯, 혹은 선생님이 제자에게 말하듯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슬러 말하는 용기입니다. 자식이 부모님을 향해, 제자가 선생님을 향해 진실을 말할 용기가 바로 파레지아입니다.

 

그렇게 진실을 말하려면, 어떤 것들을 스스로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쓴 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른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는 벗들도 때로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인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이 마지막 유혹에 더욱 단호히 맞서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였다그러자 악마가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5.

 

돌을 빵으로 만드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라,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삶을 살라, 그리고 불의한 권세와 타협하여 자기 유익을 취하라. 이 세 가지 시험은 우리 시대에 진실한 삶을 찾아 광야로 나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교리적 신조를 옹호한다는 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시험을 이기시고 하느님께 붙들린 삶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올곧게 세우는 것입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보내며, 주님께서 이기고 나아가신 길을 따라 우리도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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