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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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판결                     

             

본문: 마가 15:1-15, 에베소서 6:10-20 

설교: 신반포교회 이계준 목사 (2017.3.19.)


(이 설교문은 원문을 수정 가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둔 사순절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므로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란 비극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탄핵 인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비가 언론과 전자매체를 통해 날마다 쏟아지고 있으므로 헌재의 판결은 종결되었으나 그 판결에 대한 심판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헌법학자나 정치인이 아니므로 한 국민으로서, 목사와 신학도로서 이 사건을 빌라도의 판결에 비추어보고 나타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제자는 저를 박사모라고 비난하였으나 저는 나사모곧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김일성 독재치하의 5, 미국생활 7-8, 군사정권에 의한 해직 5년 등 80여년의 인생을 체험과 지식과 양심을 근거로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후손에게 부끄럼 없는 삶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1.


신약성서 네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에 대한 유대지도자들의 고발과 빌라도의 판결은 그 내용에 있어서 모두 같은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복음서들은 유대 지도자들 곧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끌고 가서 그를 고소하여 사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마가와 마태만이 예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을 사흘 만에 짓겠다.’(14:58; 26:61)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 하신 말씀으로 유대교 법에는 저촉되겠지만 로마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법에 저촉되는 증거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였다.’(23:2)는 것과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가르치며 백성을 선동하였다.’(23:5)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납세에 관해 물을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지 세금을 바치지 말라 거나 로마권력에 대항하도록 민중을 선동한 일이 없으므로 이것은 거짓 증거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고발한 것 가운데 문제될 만 한 것은 그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대목입니다. 빌라도는 왕이라고 고발당한 것을 확인하려고 예수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라고 묻습니다. 공관복음서들은 예수의 응답을 조금씩 달리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만이 나는 진리를 증언하는 왕이라고 색다르게 대답합니다.(15:62, 26:64, 22:70, 18:37) 

  

실상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한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왕은 황제 카이사르 한 사람뿐인데 예수가 스스로 왕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인이라 유대 지도자들의 강요와 민중의 반란을 염려하여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순결의 표시로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2.


현대 성서학자들은 유대 지도자들과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심각하게 갈등했기 때문에 복음서들이 예수와 유대 지도자들 특히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관계가 사실보다 더 껄끄럽게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고발의 내용이나 빌라도의 판결에 신빙성 문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초기 일반 역사가들에 의하면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로마권력에 고발하였고 그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로마정권의 정치범 사형 틀이므로 예수는 로마정권을 하느님 나라로 변혁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다.”고 고발한 것은 하느님 나라 운동의 주동자임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보다는 오히려 반() 유대교적이란 것이 더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로마정권에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보기에 왕이라는 예수는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었습니다. 항간의 소문이나 잡혀온 예수의 모습을 볼 때 초라하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고발을 허위와 날조와 선동으로 확인했으나 정치적 야욕 때문에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3.


지난 310일 오전 11시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시청하면서 빌라도의 예수 판결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판결문 자체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이고 일회적이라고 주장해도 그 안에 포함된 허위와 날조, 위선과 선동 등 폐기물 때문에 설득력이 없어 보였습니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인용은 조직화된 종북 좌파 집단들의 장기간 기획된 음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단들은 이명박 대통령 때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란 허위로 나라를 혼란에 빠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제정,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결정, 통진당 해체 등 국가안보와 외교적 성과가 좌파세력의 목적에 배치되자 온 갓 허위와 날조를 동원하여 정권탈취에 총력을 기우린 것입니다. 그 목적은 오직 종북 및 친북 정부를 수립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하며 궁극적으로는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국가적 음모를 탄핵 1순위인 국회의 합법화와 소추, 특검의 뒷바라지, 언론의 바람몰이, 헌재의 인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이란 중대한 국가적 사안을 독재국가도 아닌 민주국가에서 그렇게 단 기간 내 일사불란하게 만장일치로 매듭지운 것은 부차적 요인도 있겠지만 철저히 기획된 흉계에 대해 법적 세례를 준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의 사적 및 공적 과실이 있을 수 있고 죄가 있으면 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영국의 액톤 경은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대소의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유독 박 대통령만이 탄핵되었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저촉되지만 그 저의가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BC 5세기 그리스 아테네 법정은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사형 선고하였고 독배로 그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죄목은 풍기 문란과 국가보안법 위반, 청년들에게 불온한 사상 주입과 신성 모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성기를 맞이한 그리스에는 두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주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아테네가 엘리트주의의 스파르타에게 계속 패하자 소크라테스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서 파행되는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를 주장하자 법정은 그를 사형에 처한 것입니다. 헌재의 판결은 아테네 법정처럼 민주주의를 빙자한 우민정치나 폭민정치를 정당화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아 심히 안타깝습니다.


빌라도의 판결과 예수의 처형은 로마정권이나 유대교에게 일시적 승리를 안겨주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로마정권과 유대교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제 끝장났다고 믿었던 예수의 종교는 그 세력이 날로 증폭하여 결국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변환시키고 세계적 종교가 되었으나 유대교는 민족종교란 울타리에 갇혀버렸습니다

 

4.


탄핵은 결과적으로 불행한 쌍둥이 서자를 출산시켰습니다. 국민이나 정치인 모두가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쏟는 가운데 좌파는 정권을 손에 잡은 듯 경거망동하고 우파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망연자실하느라 이 엄청난 불행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코앞에 닥친 국가 존폐의 위기를 직시한다 해도 문제 해결의 묘책이 없어 보입니다.


첫째 위기는 6.25전쟁 전후 낡은 이념 갈등의 연속으로써 486운동권 중심인 종북 좌파의 정권장악이 가시화되어가고 종국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적화통일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 정지작업은 이미 우리 사회의 직장마다 사회주의독재의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소수의 보수주의자들은 설자리를 잃었다는 현실에서 확연히 들어납니다.


둘째 위기는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입니다. 미국은 김정은의 ICBM을 통한 불 작란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북한이 미국을 갖고 논다.”고 불쾌한 기분을 나타냈고 한국에 온 미 국무장관 틸러슨은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핵폭탄을 투하한 미국은 자국을 위협하는 어떤 적도 가차 없이 섬멸하는 무서운 국가라는 것이 저의 인식입니다

 

어떤 군사 전문가는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의 시점은 좌파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이라고 예단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을 바라지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은 전무해 보이고 더욱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암담한 사실입니다. 미국의 선제공격은 1-2시간 내 끝난다고 하지만 우리의 희생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렇듯 위급하고 가공할 사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하며 외면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벌써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 있는 국민이나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국가의 정책이나 결단에 직접 참여할 책임은 없지만 결국 국가의 명운은 국민의 정신무장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민족과 나라를 극진히 사랑하는 전통과 신앙을 이어받은 1.000만의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헌신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크리스천이었고 기미년 독립선언 33인 중 15명이 개신교 성직자였으며 3.1운동 참가자와 희생자 대부분이 크리스천이었고 6.25전후 방공투쟁과 국가재건에 이바지한 것도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신앙인의 선택은 무엇일까 묵상하는 중에 에베소서의 본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감옥에서 교우들에게 복음의 군대로써 세상의 악마들과 싸울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입니다. 적은 인간이 아니라 통치자들, 권세자들, 불의한 지도자들, 하늘의 악한 영(이념)입니다. 이 적들과 싸우려면 하느님의 갑옷으로 완전 무장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곧 진리의 허리띠와 정의의 가슴막이,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하느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 등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역설적으로 싸울 군인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들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바울의 권고가 우리를 말씀으로 무장하고 적그리스도와 싸울 군인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싸움은 우리 개인과 가정은 물론 탁월한 민족과 찬란한 문화 및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존망을 결판하는 일대접전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제1조건은 군대의 수효나 첨단무기가 아니라 국민의 정신력이라고 역사는 증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오직 나라사랑과 인류 평화의 복음을 들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적그리스도를 몰아내고 하느님께 승리의 찬송을 힘차게 부르는 날까지 피 끓는 기도와 전력투구의 헌신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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