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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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넘치는 삶 `

이 계준 목사

시편 16:9-11, 빌립보 4:10-14

희랍철학을 집대성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행복을 찾아다닌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도 됩니다. 동물은 배만 부르고 성적 충동만 충족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형이하학적 만족으로는 행복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심리적, 사회적, 정신적 행복이 모두 차고 넘칠 때 비로써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100% 행복한 인간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완성할 수는 없다는 인간의 한계상황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먹을 자유가 있으나 선악과는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한 행복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행과 갈등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특히 개인적 불만과 사회적 불안이 심하면 할수록 행복추구의 욕망이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1991년 18개국을 대상으로 가치관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18개국 중에서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에는 제일 낮았고 인생에 대한 허무감에서는 제일 높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토록 행복을 찾아 동분서주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원규 박사는 이런 부정적인 가관의 원인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정신적 무질서 곧 아노미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의 길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한 마디로 말하면 그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시편 기자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찰 수 있고 바울처럼 스스로 자족하면서 어떤 삶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만족한다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 특별히 가을이 가져다주는 계절의 축복과 관련하여 행복과 기쁨에 넘치는 삶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흐의 음악 사계절처럼 자연의 사계절도 모두 아름답고 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 중에서도 가을이 우리의 삶을 위해 주는 메시지는 매우 풍성하고 의미가 깊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가을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함께 맛볼까 합니다.

1. 가을은 우리에게 높고 맑은 하늘을 가져옵니다. 여름의 지루한 장마와 폭서 그리고 유난히 파괴력을 가지고 왔던 수차례의 태풍이 언젠가 다녀갔고 지금 가을은 우리에게 높고 맑은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시의 공해도 여전히 탁하지만 가울 바람 때문인지 딴 계절에 비하여 감소된 느낌입니다.
높은 하늘은 낮은 땅의 것만을 바라보며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높은 세계 곧 신앙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찾아보라고 하는 하느님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땅의 것으로 만족하고 기쁨을 찾으려고 하면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세상이 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란 그릇이 무한대하여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만족과 기쁨은 높은 하늘이 말해주는 높은 이상과 고매한 정신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4:7-8에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도 떠나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2000년 전 원시시대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그 구절 위에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란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경건한 사람은 자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에베소서 4:15에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높이 올라가야 할 곳은 만물의 정상인 그리스도의 높이까지 인데 거기서 고고한 삶의 기쁨을 만끽하라는 것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은 깨끗한 마음, 맑은 양심을 지녀야 참 기쁨이 찾아온다는 하느님의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 5:8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볼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이 가을 하늘처럼 맑은 사람은 하느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보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기뻐하고 만족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름 장마철에 가을의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듯이 우리 마음이 세상의 욕망과 탐욕의 매연이 가득한 곳에서는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맑고 수정처럼 투명해야 굴절되거나 흐리지 않은 하느님의 영상이 우리에게 비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처럼 우리의 욕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는 몸 가벼운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하느님이 계신 높은 보좌에까지 날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2년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위해 하느님이 베푸신 희년이라고 말해서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근대 역사, 사회, 교회를 위해 수많은 선각자들이 태어난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용도 목사, 김재준 목사, 한경직 목사, 함석헌 선생, 청담 스님, 육완순 열사, 박 에스더 선생 등은 우리 사회를 오늘 있게 하고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분들에게서 한결같이 발견하는 것은 그들의 생각과 역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가을 하늘처럼 높고 맑은 인격과 삶의 소유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리고 이 선각자들처럼 고결한 신앙과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가 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삶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2. 가을은 모든 자연이 자기의 아름다운 색깔을 저마다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지금 설악산은 단풍이 그 절정을 넘어 남쪽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단풍을 사랑하고 경탄을 자아내는 것은 높은 산의 초목들이 제각기 특색 있는 색깔로 단장하고 아름다움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생상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의 거대한 풍경화를 이르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자연은 무수한 초목들이 자기의 개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모두가 서로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일구어 하나의 자연으로 돌아가므로 우리 인간에게 기쁨과 감격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2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통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일이 남에게 덕이 되게 하십시오.” 이것은 교회 안에 모인 교우들이 받은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제각기 다른 능력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요하면서도 서로 시기나 질투로 하지 말고 덕스럽게 곧 은혜스럽게 행동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정, 사회, 교회 등의 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다양한 관계를 이르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이 향상될수록 모든 사람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기능은 전문화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극히 선택적이 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때때로 주관이 뚜렷한 것은 좋으나 지나치게 튀어나기 때문에 그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돌출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의 심리는 어떤 모로나 자기 우월의식이라는 superiority complex를 만족시켜야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집단에서 자기의 위치나 역할을 무시하고 돋보이려는 사람 때문에 공동체의 조화가 파괴되고 그 결과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구성원에게까지 행복보다는 불행을, 기쁨보다는 슬픔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에는 나무와 꽃들과 새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무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대로 살아가면 행복하지요.” 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 인간들은 왜 불행하고 괴롭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자 꽃 하나가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길을 버리고 인간들이 만든 길을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까?” 그 때 노래를 부르던 새가 말했습니다. “無所有 - 욕심을 버리면 되지요. 숲 속에는 욕심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면 그것이 행복이 된답니다.”
가을의 대자연은 각기 자기의 고유한 색깔로 주체성을 선명하게 나타내면서도 이웃들과 더불어 조화를 일구어서 우주적 파노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모든 만물이 서로 색깔이 다르지 않다면 가을의 자연은 아름다움과 조화의 극치를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의 삶의 색깔, 특성,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면 이웃과 연대하고 협력하고 조화를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각기 다른 개성과 생각과 능력을 주신 것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협력과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고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가을은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안겨줍니다. 금년에는 여러 차례 태풍의 피해 때문에 가을의 열매가 많이 감소되리라고 예측했는데 의외로 맛있는 과일이 많이 열러 우리를 즐겁게 해주니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가을이란 계절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귀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가을이 없고 열매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불가능하고 아무런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을은 우리에게 실로 값진 계절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가을이 열매를 맺어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건강하게 연장시켜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마치 열매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믿음은 미신이나 철학이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또한 그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도 하셨습니다. 열매나무는 무조건 열매를 맺어야 하고 나아가서 맛 좋고 향기로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22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우리 신앙인이 맺어야할 인격의 열매들입니다. 우리는 이 열매들을 생활 속에서 만들고 영글게 하고 이웃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자연의 열매는 자기 열매를 스스로 먹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위해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이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이웃의 삶을 위해 제공되어야 하고 그 때 참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열매를 맺을 때 주님께서는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워 “착하고 진실한 종아,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고 칭찬하시고 영원한 하느님 나라 잔치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난 금요일에 YWCA가 주최하는 박 에스더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 예배에서 설교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저는 그 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분에 관한 자료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으면서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박 에스더 선생님은 2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하와이에 이민 갔고 거기서 대학원 교육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짧은 기간의 교사생활과 미국 YWCA에서 20년 봉직한 다음 김환란 박사의 초청으로 1946년에 아무 연고도 없는 조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을 한국YWCA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분은 회장도, 총무도 아닌 고문 격으로 있으면서 오늘의 그 기관이 설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미군정 시대에 적산 부동산인 명동의 땅을 인수하고 지도자를 배출하고 6.25당시 국제적 원조를 받아오는 등 큰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겸손하고 친절하고 사랑하며 항상 미소를 지우며 소박하게 살아갔습니다. 지금 5,60대 Y의 지도자들은 모두 박 에스더 선생의 신앙의 열매를 먹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또한 Y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실화는 한 신앙인이 훌륭한 믿음의 열매를 맺을 때 얼마나 놀라운 파급 효과를 걷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생이란 시간의 계절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순서적으로 오고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사계절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낭만적인 봄, 무덥고 장마와 태풍이 몰아치는 여름, 가장 이상적인 가을 그리고 모든 만물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이 인생의 복합적인 계절 가운데 살아갈 때 항상 가을처럼 살아가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떤 계절에 매혹되어 머물거나 또는 공포로 떨고 도피를 일삼을 것이 아니라 일년 열두 달, 아니 일평생, 높고 맑은 하늘처럼, 자기의 독특한 색깔을 뿜어내면서도 모든 피조물들과 조화하고 그리고 아름답고 영근 열매를 많이 맺는 가을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 곧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이 넘치는 삶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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