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누구에게 메시아는 오는가?`

이계준 목사


성경말씀:이사야 11:1-4,
누가 2:26-38

오늘은 교회력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고대하는 첫째 주일로서 대림절 또는 강탄절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Advent라고 합니다. 모든 백화점과 상가는 돈벌이를 위한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상징으로 이미 화려한 장식으로 단장하였고 바쁘던 거리도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계절에 우리에게 생각되는 인물 가운데 마리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를 세상에 오시게 하는 이 여인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도 마리아가 요셉의 약혼녀라는 것과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벳의 친척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녀에 관한 정보의 전부이다. 여기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마리아는 가난한 집의 딸이기 때문에 목수와 약혼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아기 예수를 여관의 마구간에서 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추녀는 아닐지 몰라도 미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특히 동양에서 미인들은 주로 부잣집의 며느리나 소실 또는 후궁이나 궁녀로 낙점되기 일 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가난하고 미인이 아닌 마리아가 일약 메시아의 어머니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녀에 관하여 누가복음 1:28-38에 기록된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대화를 보거나 1:46-56에 나타난 마리아의 찬가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현숙하고 총명하며 경건한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신화적 존재로 미화되고 추앙받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런 신화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세계, 환상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마리아는 성모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에 이르는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존중시하는 소위 마리아론을 발전시켜서 하느님 아버지의 남성적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마리아의 어머니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종교적 정서승화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남미의 가톨릭 교인들은 마리아를 우상시하는 마리아승배 신앙 때문에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폴 틸리히 교수는 개신교 신관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모두 남성명사로 되어 있고 부드러운 여성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성은 인간의 고향이어서 인간은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감정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와서 개신교 신학자들이 성령론을 여성적으로 발전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마리아론을 따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마리아를 잃어버린 개신교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모색하는 노력의 결과 “미인 콘테스트”를 발전시켰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2000년 전의 유대 땅은 남성지배 사회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돈, 지식, 권력, 명예 등 이 모든 것은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오시는 길은 남성이나 세속적인 요소들을 거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여성을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비밀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의 누가복음 본문에서 마리아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메시아를 모시게 되었는지 찾아봄으로서 우리에게도 메시아가 오시도록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1. 메시아는 놀라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누가복음 1:28-29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 그 인사말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물론 그 인사말의 내용은 메시아 탄생을 알리는 메시지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천사를 통해 보내신 소식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힐 정도로 놀랍니다. 아마도 그녀가 놀란 이유는 자기는 지금 요셉이라는 남성과 약혼하고 결혼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정숙한 여성인데 자기가 아기를 잉태하리라는 전갈을 받게 될 때 무섭고 떨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다면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자기와 같이 비천한 여인을 거룩한 도구로 선택하신 것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황송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하간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를 듣고 그녀가 정숙한 미혼 여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에 몹시 놀란 것입니다.
어떤 종교학자는 말하기를 종교는 놀래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연적인 사물이나 정신적 현상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고 신비하게 느끼며 마음의 동요와 당황 그리고 두려운 경험을 가질 때 범상하지 않은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은 어떤 계시나 신비스런 경험에 놀라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경종 소리나 폭탄 소리나 물가폭등 소식 또는 테러 소식 같은 외적 충격에 너무나 자주 놀란 나머지 놀람에 마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약 1개월 전에 북한의 핵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미국의 매제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묻기를 “형님, 괜찮으세요?”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 동안 너무나 자주 쇽크를 먹어서 부섭지도 놀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의 생활환경은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새로운 체험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합니다. 우리가 신비한 체험을 하고 놀라기에는 너무나 바쁘고 하늘의 계시가 끼어들 여백이 전혀 없는 심리적, 정신작 공간에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계속 메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거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또는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간에 특별한 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비함과 놀라움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 한 가운데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곤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험악한 세상에서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날마다 양떼를 몰고 미디안 광야로 나아가서 양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곳은 매우 익숙한 들판이었습니다. 항상 같은 산과 들과 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익숙한 곳에서 과거에 보지 못하였던 타지 않는 불길이 피어오르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는 두려움과 놀램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급시키는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종종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여러 번 읽었던 말씀인데 한 순간 새롭고 충격적인 말씀으로 닥아 와서 내 마음과 생각을 온통 뒤집어 놓고 새로이 정리시켜 줍니다. 놀라움의 경험 속에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대서양 한 복판에서 폭풍우를 만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두려움을 잊고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더욱 놀랐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메시아 곧 구세주가 자기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영국으로 돌아가 위대한 감리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신비한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에게 메시아는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2. 메시아는 순결한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누가복음 1:31-34에 천사 가브리엘이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고 말하였을 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처녀란 순결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메시아를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과 같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격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 빌립이 나다나엘을 자기 선생에게 소개하려고 다려 올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하복음 1:43-51)고 하였습니다. 거짓이 없고 깨끗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하느님이 항상 같이 하시는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즘 선거의 막바지로 올라가면서 때 묻지 않은 사람을 찾느라고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정치판에는 하도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 갈 기대나 희망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에게서는 선하고 유익한 것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국내외 뉴스가 전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이 무한대로 발급한 신용 카드가 무책임하게 사용된 나머지 신용불량자가 230만 명에 달하고 체납 액수도 수백 조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량사회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아무런 책임의식 없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우선 돈 쓰고 보자는 사람들의 소치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무계획적인 정부와 경제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왜곡된 소비문화도 그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개인과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 무책임, 타락 속에서 미래에 대한 어떤 구원의 약속이나 희망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개인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비록 마리아처럼 째지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존경의 대상이 될 조건을 하나도 가춘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 순수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것이 있기만 하다면 바로 거기에 구원의 하느님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작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질 때 무려 3000명이란 귀한 생명이 한 순간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 3000명 중 300명은 사람을 구하려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다가 희생된 경찰관과 소방대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는 순수한 마음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요즘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장차 자라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경찰관이나 소방대원이 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성실함을 인정하고 실천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사람들과 사회는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구원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3. 메시아는 복종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누가복음 1:38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가 하느님의 능력으로 잉태되리라는 말을 할 때 그녀는 대답하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미혼여성으로서 잉태에 대한 수치감과 사회의 비방을 모두 접어두고 오직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녀는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정의 앞에 복종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고 마땅한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손실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의 능력의 한도 안에서 잘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진리와 정의 안에 나 개인과 인간 공동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동양예의지국이라고 하고 삼강오륜을 행동규범으로 삼는다고 떠들던 때가 몇 일전 같은데 어느새 그 전통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무례와 억지와 추태만이 날뛰고 있습니다. 남에게 결례되는지, 불편을 끼치는지, 이것이 원칙이나 법이나 인륜에 어긋나는 것인지 전혀 생각이나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오늘 우리의 풍토인 듯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옳고 원칙적이라고 할지라고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거나 학생이 선생의 가르침에 복종하거나 젊은이가 어른들에게 순응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세상이 된 것입니다. 허심탄회하고 겸허한 마음 자세가 우리에게서 떠날 때 우리를 참으로 자유하게 하는 진리와 정의는 우리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스탠리 존스 박사가 하루는 고대 문명국의 하나였던 바벨론 왕국의 폐허를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옛날의 찬란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여기저기에 산재한 폐허만이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스 박사는 폐허가 된 벌판에서 곱게 피어 있는 한 송이 들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존스 박사는 그 이름 없는 들꽃에 접근하여 그 아름다움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들꽃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너무나 약해서 내 손으로 문질러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저 막강했던 바벨론 왕국도 오래 전에 멸망하여 자취를 감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살아 있으니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 이 작은 들꽃은 미소를 지우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만 내 자신 안에 씌어진 하느님의 법에 복종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겸허하게 복종할 때 메시아는 우리를 구원하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대림절 첫 주일을 맞이하여 메시아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학벌도 없고 별로 예쁘지도 않지만 메시아가 오시는 거룩한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것은 먼저 하느님의 섭리와 선택에 따른 것이겠지만 하느님 앞에서의 마리아의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계시를 들을 때 놀랐고 그녀는 순결하였으며 그리고 그녀는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므로 인류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충분조건을 구비하였던 것입니다. 이 거룩한 계절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므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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