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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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삶’

이 계준 목사

성경말씀: 시편19:1-14
마태복음: 6:25-34

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모든 만물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로 자처하기도 하고, 스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여 자기홀로 살아 갈 수 있는 절대자인 듯이 망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나 또는 유아독존의 가능성이 약간은 있지만, 모두가 진실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는 자연 안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에 의존하면서, 그리고 특히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8-19세기에 서구의 기술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여 물질문명을 만들면서 자연을 남용하고 파괴하므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심지어는 원수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자연을 무시하고 파괴하면 할수록 자연도 인간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8:18-25절의 말씀처럼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고통을 당하며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피조물을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섭리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연에 와서 자연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기회를 찾아보기로 합시다.

시편 19:1절의 말씀에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의 특징은 하느님의 창조적 능력과 오묘함을 아무런 수정도 가감도 없이 그대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창세기1장에 기록된 창조이야기는 하느님의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하루의 일을 마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보기에 좋았다.”하셨습니다.
자연의 모든 만물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바로 자기들이 지움 받은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이 각기 자기의 고유한 색깔과 모습, 그리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유감없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각양각색의 자기모습을 통하여 제각기 남다른 특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 우주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그려 내는 것입니다.
킬머의 詩 “나무들”은 하느님의 창조와 자연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詩를 정녕 볼 수 없으리
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에 굶주린 입술을 대고 서 있는 나무
하루 종일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나무
여름이면 자신의 머리카락 속에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나무
그 가슴 위로는 눈이 내리고 비하고도 정답게 사는 나무
나 같은 바보도 시를 짓지만 나무를 만드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자연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히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시편의 다윗의 노래처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그를 하느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다”(시8:4a, 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품위와 가치가 얼마나 높다는 사실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도 자연과 같이, 아니 그보다도 더욱 자기의 존재와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마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인간성을 표현하는 말로 human nature 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자연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입니다. 즉 인간도 모든 자연처럼 nature에 속하는 것으로 자연이 하느님께 찬양과 존귀를 돌리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예수님의 존재와 삶 전체가 하느님의 참 본성과 진리를 그대로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특별한 말이나 행동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 철야 금식기도 등 종교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몫을 다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을 보십시오. 그들은 인간들처럼 야단법석을 떨지도 않고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과 하나 될 때 즉, 우리 자신의 자연, 하느님이 주신 성품을 되찾고 그것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9일 부여에 있는 임마누엘 수양관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원장인 표병구 목사가 중증 장애인 몇 명을 구한 다음 불 속에 다시 뛰어 들었다가 숨졌습니다. 일간지에서는 “당신은 진정한 목자입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실로 요즘 보기 드문 목사입니다.
저마다 권위적이고 대접받기를 바라는 풍토 속에서 살신성인 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존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표 목사는 자기의 본성 곧 하느님의 형상을 되찾으므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연이 단순하다는 말은 정직하다, 또는 솔직하다는 뜻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자연이란 자기가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살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다지 복잡하지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싹이 돋고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신록을 자랑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가을에는 오곡백과와 현란한 단풍을 자랑하고, 그리고 겨울이 오면 휴식과 단잠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자연은 자연법에 따라 순응하면서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에는 억지나 무리나 속임수 같은 것은 없습니다.
E.프롬이 말한 것과 같이 자연은 존재하는 것뿐이고 있으므로 만족하고 삶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지 무엇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솟구쳐서 싸우고 빼앗고 죽이는 작태는 없는 것입니다.
한 달 전에 도봉산에 올라갔다가 처음으로 놀라운 자연의 이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한 그루의 소나무가 수십 년 동안 서풍만 맞아서 가지가 북쪽으로 휘면서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동행한 화가 김 영덕선생은 설명하기를 바람에 순응하므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연은 단순하게 존재하면서 아름다운 예술적인 삶을 영위하므로 고상함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우리 인간도 한없이 단순하고 또 단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空手來空手去’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살 때 生老病死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삶은 자연처럼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극히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반항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극히 자연적인 것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을 속이고 아부를 하고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동원하게 되니까 자연히 삶이 복잡하고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사회 전체가 이러한 도덕적 질병에 걸려 총체적인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우리 스스로가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법정스님은 단순한 삶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다. 나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내 삶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산길을 지나가다가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나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가 있다. 그 꽃을 통해서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다.”
이 말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단순해지면 질수록 우리는 자연의 본질 곧 하느님의 형상에로 다가간다는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무는 늙어 갈수록 고목이 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꽃들은 시들어 갈수록 더욱 진한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가장 자기다워 지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다음 곧, 우리의 자연을 회복하기 위해 믿음으로 생각과 마음을 단순화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간은 유구한 역사를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자신, 자기 씨족, 자기 민족 등만이 살아남아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고 그토록 잔인한 일을 쉬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에는 그런 전쟁 따위는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데는 사람들 보다 앞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계에도 약육강식과 같은 행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지나친 욕망은 없고 어느 정도 만족하면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이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낙엽과 고목은 땅에 묻혀 비료가 되고 동물들은 먹이 사슬을 통해 자기 종족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습니다. 그리고 자연은 특히 인간에게 삶 전체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緣起)곧 모든 사물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를 인간보다는 자연이 먼저 깨달은 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환경 및 생태계의 위기에 직면하여 자연과 보다 가까워지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의 자세를 확립해야 될 듯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지탱하는 모든 것을 공급하는 자연을 우리의 소비의 대상이나 파괴할 현상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함께 지음 받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상생해야할 이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聖 프랜시스는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거리를 지나갈 때 그의 어깨 위에 새들이 앉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을 형제자매로 생각하면서 유명한 시를 지었습니다.

'당신께 찬양을 돌리나이다.'

聖 프랜시스

지극히 높고 전능하고 선하신 주님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으로 인하여
당신께 모든 찬양을 돌리나이다.
그리고 낮을 가져다주는 나의 형제인 태양
그는 얼마나 아름답고
그의 광채는 또 얼마나 빛나는지요!
그는 지극히 높으신 당신을 닮았나이다.
자매인 달과 별들로 인하여
당신께 모든 찬양을 돌리나이다.
밝고 귀하고 흠없이 맑은 달과 별을
당신께선 하늘에 지으셨나이다.
형제인 바람과 공기
그리고 맑게 개거나 폭풍우 몰아치는
모든 날씨로 인하여
당신께 찬양을 돌리나이다.
자매인 물
그리도 쓸모가 있고 겸손하며
소중하고 순결한 물로 인하여
당신께 찬양을 돌리나이다.
형제인 불
이 불로써 밤을 밝히시는
당신께 모든 찬양을 돌리나이다.
그는 얼마나 아름답고 명랑하며
권능과 힘으로 충만한지요.
자매이며 어머니인 땅
그녀의 주권 안에서 우리를 먹이며
온갖 색깔의 꽃들과 약초가 달린
다양한 열매를 맺는 땅으로 인하여
당신께 모든 찬양을 돌리나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과 함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것과 하나이요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청산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위해 최선을 다 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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